시스템 리듬 조화의 법칙
출근길에 첫 번째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속도를 조금 높였는데 바로 앞 신호등은 빨간불이다.
잠시 기다렸다 다시 출발하고 다음 교차로에서 또 멈춘다.
도로가 막힌 것도 아니고 자동차가 느린 것도 아니다.
신호등도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초록불은 차를 보내고 빨간불은 차를 멈춘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정확하게 신호가 바뀐다.
각자의 신호등만 보면 아무 문제가 없고 모두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만 길 전체는 제대로 흐르지 않는다.
우리는 시스템의 성능을 높이려 할 때 각각의 구성요소를 더 좋게 만들려고 한다.
자동차를 더 빠르게 만들고 기계를 더 빨리 움직이게 하며 사람의 업무속도를 높인다.
여러 요소가 연결된 시스템에서는 한 부분이 빨라진다고 전체가 빨라지지 않는다.
앞의 기계가 제품을 열 개씩 보내는데 뒤의 기계가 다섯 개밖에 처리하지 못하면 앞의 기계가 빨라질수록 제품은 더 많이 쌓인다.
어느 한쪽의 성능은 좋아졌지만 시스템 전체의 흐름은 오히려 나빠진다.
TRIZ에는 시스템 리듬 조화의 법칙이 있다.
기술시스템은 각 구성요소의 속도와 시간, 움직임의 주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법칙이다.
쉽게 말하면 장단을 맞추는 것이다. 모든 구성요소가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동작이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신호등이 하나만 있을 때는 자기 시간만 지키면 된다. 가까운 거리에 여러 개의 신호등이 놓이면 서로의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 신호등을 통과한 자동차가 다음 교차로에 도착할 무렵 두 번째 신호등도 초록불이 되도록 시간을 맞춘다. 그다음 신호등도 같은 방식으로 연결한다. 운전자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 여러 교차로를 멈추지 않고 통과할 수 있다.
도로를 넓힌 것도 아니고 자동차를 더 빠르게 만든 것도 아니다. 신호등이 켜지고 꺼지는 시간을 서로 맞추었을 뿐이다. 개별 신호등의 성능을 높인 것이 아니라 신호등 사이의 관계를 바꾼 것이다.
시스템의 진화는 구성요소가 더 뛰어나지는 과정만이 아니라 구성요소 사이의 관계가 더 정교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번 맞춘 장단을 계속 사용할 수도 없다.
아침에는 도심으로 들어가는 차량이 많고 저녁에는 반대 방향의 차량이 늘어난다.
주말의 흐름은 평일과 다르다.
비가 오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평소의 신호체계가 정체를 더 키울 수도 있다.
고정된 장단이 언제나 좋은 장단은 아니다.
신호는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고 도로의 차량 수와 대기행렬을 확인해 초록불의 길이를 조절한다.
앞으로는 현재 멈춰 있는 차량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몇 분 뒤 어느 방향에서 차량이 몰려올지도 예상할 수 있다. 버스와 구급차, 보행자와 자전거의 흐름까지 함께 고려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움직이던 신호등은 인접한 신호등과 시간을 맞추기 시작했고 현재 교통량에 따라 자신의 시간을 바꾸기 시작했다.
미래의 신호등은 다가올 흐름을 예측하며 장단을 조절하게 될지도 모른다. 신호등은 더 빨리 바뀌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상황에 맞춰 자신의 시간을 바꾸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율주행이 되면 신호등은 필요할까?
조직에도 신호등이 있다. 영업부서가 큰 주문을 받아온다.
영업부서만 보면 좋은 성과다. 생산부서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납기를 맞출 수 없고 자재가 확보되지 않았다면 생산을 시작할 수도 없다. 제품을 만들었더라도 물류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완성된 제품은 창고에 쌓인다.
각 부서는 자신의 일을 했다. 영업은 주문을 받았고 생산은 제품을 만들었으며 물류는 제품을 운반한다. 서로의 시간이 맞지 않으면 조직 전체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광고도 비슷하다. 마케팅이 성공해 주문이 갑자기 늘었는데 재고와 배송, 고객응대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성공한 광고가 고객 불만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 누군가는 너무 빨리 달리고 누군가는 아직 출발하지 못했다. 문제는 특정 부서가 느리다는 데 있지 않을 수 있다. 서로의 준비상태를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데 있을 수 있다.
조직의 진화는 각 부서가 맡은 일을 끝낸 뒤 다음 부서에 넘기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영업이 주문을 받은 뒤 생산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주문 가능성과 생산능력을 함께 본다.
마케팅을 시작한 뒤 물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과 재고, 배송과 고객대응이 같은 시간을 바라본다. 앞의 부서가 빨리 끝내는 것보다 뒤의 부서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모든 부서가 같은 속도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 영업과 생산, 물류의 일은 서로 다르다. 필요한 시간도 다르다.
자신의 속도만 보지 않고 앞뒤의 흐름을 함께 보아야 한다. 한 부서의 빠른 속도가 다른 부서의 대기와 과부하를 만들지 않을 때 조직 전체가 움직인다.
사람 사이에도 리듬이 있다. 맞는 말이라고 언제나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아직 화가 나 있는데 해결바카라부터 말하면 조언은 간섭으로 들릴 수 있다. 상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하는데 결론부터 재촉하면 대화의 흐름은 어긋난다.
말하는 사람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갔지만 듣는 사람은 아직 이전 감정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무슨 말을 하느냐만큼 언제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맞는 말을 틀린 시간에 하면 틀린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좋은 대화는 한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말하는 시간과 듣는 시간이 맞아야 한다. 서로 같은 속도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상대가 어디쯤 와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기술은 처음에 더 빠르게 움직이려고 한다.
모터의 속도를 높이고 생산량을 늘리며 처리시간을 줄인다. 시스템이 복잡해지면 속도만으로 전체 성능을 높이기 어려워진다. 앞과 뒤가 맞아야 한다. 보내는 시간과 받는 시간이 맞아야 한다.
한 부분의 움직임이 다른 부분의 대기와 과부하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신호등 하나가 초록불이라고 길 전체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부서 하나가 빠르다고 조직 전체가 빨라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말할 준비가 되었다고 상대가 들을 준비까지 된 것도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은 출발점이다. 그다음에는 서로의 시간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잠시 기다리고 누군가는 조금 서두르며, 전체가 멈추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좋은 시스템은 가장 빠른 시스템이 아닐 수 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구성요소가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초록불이 많다고 길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초록불의 수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초록불이 켜지는 것이다.
(초록불이 맞는지 파란불이 맞는지 모르겠다. 파란불이라고 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