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도성 법칙
전구와 결재는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인다.
전구는 빛을 만든다. 결재는 조직이 의사결정을 내리게 한다.
하나는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둘의 진화 방향은 닮았다.
필요한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거치는 단계를 줄여왔다.
전구는 전기가 빛으로 바뀌는 길을 줄였다. 결재는 현장의 사실이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길을 줄이고 있다.
기술은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드는 방향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
이미 가진 에너지가 덜 돌아가고, 덜 손실되며, 필요한 곳에 더 정확하게 도착하도록 진화한다.
인류가 원한 것은 빛이었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처음에는 무언가를 태웠다.
나무를 태웠다. 기름을 태웠다. 초를 태웠다.
촛불에서는 연료의 화학에너지가 열로 바뀌고, 그중 일부가 빛이 된다.
화학에너지 → 열 → 빛
필요한 것은 빛이었지만 빛을 얻으려면 먼저 불을 만들어야 했다.
빛과 함께 열이 발생했다. 연기와 그을음도 생겼다. 빛으로 사용되는 에너지보다 열로 사라지는 에너지가 더 많았다.
백열전구가 등장하면서 불꽃과 연기는 사라졌지만 빛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필라멘트에 전류를 흘린다. 필라멘트가 뜨거워진다. 뜨겁게 달아오른 필라멘트가 빛을 낸다.
전기에너지 → 필라멘트의 열 → 빛
연료 대신 전기를 사용했지만 빛을 얻기 위해 여전히 열이라는 단계를 거쳤다. 백열전구를 켜두면 뜨거워진다. 전구의 주기능은 공간을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백열전구는 빛을 만들기 위해 필요 이상의 열도 함께 만들었다.
LED는 빛을 만드는 원리가 다르다.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반도체에서 빛을 발생시킨다.
LED도 열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원장치와 반도체에서도 손실이 생기고, 발생한 열을 외부로 내보내야 한다. 그러나 백열전구처럼 필라멘트를 높은 온도로 달군 뒤 그 열에서 빛을 얻는 과정은 크게 줄었다.
전기에너지 → 빛
에너지가 필요한 기능에 도달하는 길이 짧아진 것이다.
TRIZ에서는 기술시스템이 에너지의 변환단계와 전달경로를 줄이고, 손실이 적으며 제어하기 쉬운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본다. 이를 에너지 전도성의 법칙이라고 한다.
전구의 진화는 단순히 더 밝아진 과정이 아니다. 빛을 얻기 위해 함께 만들던 불필요한 열을 줄여온 과정이다.
같은 빛을 내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줄어들었다. 수명은 길어졌고, 밝기와 색을 조절하기도 쉬워졌다.
좋은 기술은 에너지를 무조건 많이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다. 필요한 기능에 더 가까운 곳으로 에너지를 보내는 기술이다.
LED의 다음 진화도 단순히 더 밝은 전구를 만드는 데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전력으로 더 많은 빛을 만들 수 있다. 전원장치와 광학부품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변화는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만 필요한 만큼의 빛을 제공하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이 없는 곳의 조명은 줄어든다.
창문으로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면 실내조명이 자동으로 어두워진다.
바카라상에는 필요한 밝기만 제공하고, 사용하지 않는 공간에는 빛을 보내지 않는다.
미국 에너지부도 LED가 현재 가장 에너지 효율적인 조명기술이지만 추가적인 광효율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으며 센서, 밝기 조절, 자연광 활용과 결합하면 조명 시스템 전체의 에너지 사용을 더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단계에서는 전구 하나의 효율보다 공간 전체의 조명 효율이 중요해진다. 더 나아가 전구가 아닌 다른 것이 빛을 낼 수도 있다.
천장이 빛을 낸다. 벽과 창문이 빛을 낸다. 가구와 거울, 자동차의 표면이 필요한 곳에 빛을 제공한다.
전구라는 독립된 물건의 기능이 건물과 공간이라는 더 큰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에너지 전도성의 법칙을 넘어 상위시스템으로의 이동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시스템이 다른 시스템과 결합하고, 충분히 발전하면 그 기능이 더 큰 시스템의 일부로 흡수되는 방향이다.
전구가 방을 밝히는 단계에서 방 자체가 빛을 만드는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용 LED 전구를 기준으로 보면 3단계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LED 전구는 이미 대량생산되고 있다.
가격도 충분히 낮아졌고 밝기와 수명, 색온도와 형태도 다양해졌다. 기본적인 발광 기능보다 디자인, 색상 조절, 스마트폰 연결, 음성 제어와 같은 부가기능이 차별화 요소가 되고 있다.
S커브 3단계에서는 성능을 조금 더 높이는 데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해지고, 디자인과 부가기능을 통한 차별화가 증가한다. 기존 MPV의 성장속도가 느려지면 새로운 MPV나 작동 원리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LED의 진화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LED 전구의 기본적인 발광 기능은 3단계에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위치와 자연광을 감지해 빛을 조절하는 스마트 조명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벽과 천장, 가구와 결합하는 조명은 새로운 S커브의 초기일 수 있다.
하나의 제품 안에서도 서로 다른 가치가 서로 다른 S커브 위에 있는 것이다.
LED 전구의 기존 S커브는 성숙하고 있지만 조명 제어와 공간 통합이라는 새로운 S커브는 성장하고 있다.
조직에도 에너지가 전달되는 길과 비슷한 것이 있다.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이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긴다. 문제를 가장 잘 아는 담당자가 해결안을 만든다. 팀장에게 보고하고, 팀장은 부서장에게 보고한다. 부서장은 내용을 정리해 임원에게 올린다.
수정 의견이 내려오면 문서는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담당자는 내용을 고쳐 다시 올린다.
현장의 문제 → 담당자 → 팀장 → 부서장 → 임원 → 의사결정 → 다시 현장
공간으로는 몇 층에 불과하지만 결론이 현장으로 돌아오는 데 며칠이 걸릴 수 있다.
처음 발견된 문제는 결재선을 통과하면서 여러 번 요약되고 다시 설명된다. 마지막 결재자가 보는 문제는 현장에서 처음 발견한 문제와 조금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
조직에서 가장 긴 길은 거리가 아니라 단계일 때가 있다.
물론 정보와 의사결정은 물리적인 에너지가 아니다. 그러나 필요한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여러 전달과 변환을 거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결재 목적은 도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필요한 의사결정을 빠르고 정확하게 내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재에서 중요한 것은 결재문서의 두께가 아니라 결정 속도와 정확성이다.
결재의 진화는 사람을 거치는 단계를 줄이는 방향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정보가 문서로 변환되는 단계도 줄어든다.
전통적인 보고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현장의 사실 → 담당자의 보고서 → 팀장용 요약 → 부서장용 수정본 → 임원용 발표자료 → 의사결정
같은 정보가 여러 번 다시 작성된다.
보고 대상이 바뀔 때마다 문장이 달라지고 표가 바뀌고 분량이 줄어든다. 처음에는 중요했던 현장의 맥락이 문서가 정돈되는 과정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보고도 짧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긴 보고서는 한 장 보고서가 된다. 설명이 복잡한 제품 문제라면 사진과 영상으로 보여준다.
실제 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불량품이나 시제품을 직접 들고 가서 보여줄 수도 있다. 소음이 문제라면 현장에서 직접 듣는다. 색상이 다르다면 두 제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 현물을 직접 보여주는 것은 보고를 생략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을 문서로 여러 번 바꾸지 않고 결정권자를 사실에 더 가까이 데려가는 것이다.
빛을 얻기 위해 열을 거치는 단계를 줄였듯 사실이 판단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불필요한 변환을 줄이는 것이다.
말로만 보고하면 빠르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러나 말은 기록이 남지 않을 수 있다. 누가 무엇을 보고했고, 어떤 근거로 결정했는지가 나중에 달라질 수도 있다.
따라서 보고서가 사라지는 것이 반드시 진화라고 볼 수는 없다.
더 적절한 방향은 다음과 같다.
결정에 필요한 사실과 증거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결정의 근거와 결과는 짧고 정확하게 기록한다.
보고서는 짧아지지만 정보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설명은 줄어들 수 있지만 판단에 필요한 근거는 더 선명해져야 한다.
정보기술은 보고의 경로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현장의 자료를 담당자가 모아서 표를 만들고 관리자가 다시 요약했다.
경영진은 여러 번 가공된 보고서를 받았다.
이제는 생산량, 재고, 매출과 품질 같은 정보를 여러 사람이 같은 화면에서 볼 수 있다.
현장 정보 → 담당자의 보고 → 관리자의 요약 → 경영진 전달에서
현장 정보 → 공통 데이터로 줄어든다.
보고서를 더 빨리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보고서를 반복해서 작성할 필요를 없애는 것이다.
결재도 다음과 같이 진화할 수 있다.
다단계 결재 → 전결 → 한 장 또는 현물 보고 → 공통 데이터 → 기준에 따른 현장 판단 → 예외 중심 결재
반복적이고 위험이 낮은 일은 미리 정한 기준에 따라 현장에서 결정한다.
여러 부서에 영향을 주거나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만 상위 바카라임자가 검토한다.
모든 일을 결재하는 조직에서 예외적인 일만 결재하는 조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에너지 전달경로를 줄인다고 모든 중간장치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기어는 힘의 크기와 방향을 바꾼다. 변압기는 전압을 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한다.
필요한 기능을 더한다면 중간단계는 가치가 있다.
결재도 마찬가지다.
법과 안전을 확인해야 할 수 있다. 여러 부서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체적인 위험을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
큰 비용이 들거나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에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줄여야 하는 것은 모든 결재단계가 아니다.
새로운 판단과 가치를 더하지 않으면서 시간과 왜곡만 늘리는 단계다.
좋은 조직은 결재가 없는 조직이 아니다.
필요한 결정은 충분히 검토하지만 불필요한 보고와 재작성 때문에 행동이 늦어지지 않는 조직이다.
촛불은 빛을 얻기 위해 연료를 태웠다. 백열전구는 필라멘트를 뜨겁게 만든 뒤 빛을 얻었다.
LED는 열이라는 우회로를 줄였다.
이제 조명은 사람이 있는 곳에 필요한 만큼만 빛을 보내고 전구의 기능을 벽과 천장, 공간 전체로 옮기려 하고 있다.
결재도 비슷하다.
현장의 사실은 여러 사람과 문서를 거쳐 결재권자에게 올라갔다. 이제 결재선은 짧아지고, 보고서는 한 장으로 줄어든다. 때로는 현물과 사진, 영상과 실시간 데이터가 긴 설명을 대신한다.
전구는 전기가 빛에 도달하는 길을 줄이고 있다.
결재는 사실이 판단에 도달하는 길을 줄이고 있다.
전구가 덜 뜨거워지면서 더 밝아졌듯 결재도 덜 돌아가면서 더 빠르고 정확해져야 한다.
언젠가는 전구라는 물건이 보이지 않아도 공간이 밝아질 수 있다.
결재문서가 없어도 필요한 정보와 기준을 통해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빛은 남고 전구는 줄어든다.
결정은 남고 결재의 부담은 줄어든다.
전구도 결재도 아직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