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완전성의 법칙
문 앞에 서면 문이 열린다.
손잡이를 찾지 않는다. 문을 밀거나 당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문이 조금 늦게 열리면 당황한다. 한 걸음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가고, 센서가 있을 것 같은 곳에 손을 흔들기도 한다.
문이 사람을 알아보고 열리는 것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문이 처음부터 사람을 알아본 것은 아니다. 예전의 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문 앞으로 갔다. 손잡이를 잡았다. 힘을 주어 문을 열었다. 통과한 뒤에는 다시 문을 닫았다.
문 하나를 이용하기 위해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다.
그렇다면 자동문은 단순히 문에 모터와 센서를 붙인 것일까.
조금 다르게 보면 자동문의 역사는 사람이 수행하던 기능이 하나씩 문 안으로 들어간 과정이다.
TRIZ에는 시스템 완전성의 법칙이 있다.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기술시스템은 대상에 직접 작용하는 도구, 에너지를 전달하는 트랜스미션, 에너지를 공급하는 엔진, 작동을 판단하고 조절하는 제어장치를 갖추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수동문을 이 구조로 보면 흥미로운 점이 드러난다.
문짝은 출입구를 열고 닫는 도구다. 경첩은 사람이 가한 힘을 문짝의 회전운동으로 전달한다.
그렇다면 엔진과 제어장치는 어디에 있을까.
사람에게 있다. 사람의 몸이 문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사람의 눈과 뇌는 문을 언제 열고 닫을지 판단한다.
수동문도 기능은 수행한다.
다만 필요한 구성요소가 문 안에 모두 들어 있지 않다. 사람과 문이 함께 있어야 하나의 완전한 시스템이 된다.
사람은 문을 이용하는 사용자이면서 동시에 문을 움직이는 엔진이고, 문을 통제하는 제어장치였다.
문에 스프링이나 도어클로저가 달리면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은 여전히 문을 열어야 했다.
그러나 통과한 뒤 문을 직접 닫을 필요는 없어졌다. 사람이 문을 열면서 저장된 힘을 이용해 문이 스스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문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이 반복하던 기능 하나를 가져갔다.
사람이 열고 사람이 닫는 문에서 사람이 열지만 문은 스스로 닫는 문으로 변했다.
기술의 진화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 갑자기 등장하는 방식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맡고 있던 일을 시스템이 하나씩 가져가면서도 일어난다.
다음에는 모터가 들어왔다.
사람이 버튼을 누르면 모터가 작동하고, 벨트나 기어와 같은 전달장치가 문짝을 움직였다.
사람은 더 이상 문에 직접 힘을 줄 필요가 없었다.
문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모터가 공급했다.
사람에게 남은 것은 판단과 명령이었다.
문을 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시스템이 문을 열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닫는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엔진의 역할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제어장치의 일부였다.
버튼은 문을 움직일 뿐이다. 언제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는 사람이 판단해야 했다.
사람이 힘을 쓰는 문에서 사람은 명령만 하고 시스템이 힘을 쓰는 문으로 이동했다.
센서가 들어오면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사람의 역할도 줄어들었다.
사람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 센서가 사람의 접근을 감지한다. 제어기는 문을 열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모터에 신호를 보낸다. 사람이 통과하면 문은 다시 닫힌다.
사람이 하던 반복적인 판단의 일부가 시스템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시스템 완전성의 법칙에서는 전달장치와 엔진, 제어장치가 시스템 안에 갖춰지면서 사용자의 개입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한다고 본다.
자동문의 진화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열고 닫는다. → 문이 스스로 닫는다. → 사람이 명령하면 모터가 열고 닫는다. → 센서가 감지하고 시스템이 스스로 열고 닫는다.
문짝의 모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을 작동시키는 시스템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에게 있던 힘과 판단이 하나씩 문 안으로 이동했다.
자동문은 도구와 전달장치, 엔진과 제어장치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발전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문이라는 뜻은 아니다.
시스템 완전성에서 말하는 완전함은 주기능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기본 구조를 갖추었다는 의미에 가깝다.
현재의 자동문도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문 앞을 지나가기만 했는데 열릴 수 있다. 문을 향해 다가가는데도 늦게 반응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접근할 때와 여러 사람이 몰려올 때 비슷한 폭과 속도로 열릴 수도 있다.
앞으로의 자동문은 사람의 존재만 감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 문을 향해 오는지 옆으로 지나가는지를 구분한다.
휠체어나 유모차가 접근하면 더 넓고 오래 문을 연다.
사람의 이동속도와 짐의 크기에 따라 열리는 폭과 시간을 바꾼다.
실내외 온도 차이가 크다면 필요한 만큼만 열어 에너지 손실을 줄인다.
센서가 사람을 발견하는 수준에서, 상황을 해석하고 적절한 동작을 선택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문은 사람을 통과시키기 위해 열린다. 하지만 문이 열리면 실내와 실외도 함께 연결된다.
여름에는 냉기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뜨거운 공기가 들어온다.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가 빠져나간다. 먼지와 냄새, 벌레도 들어올 수 있다.
자동문은 사람이 편리하게 통과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순간 공간을 분리하는 기능은 약해진다.
문에는 서로 충돌하는 요구가 있다.
사람은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실내외 공기는 가능한 한 섞이지 않아야 한다.
문을 닫아두면 공간은 잘 분리되지만 사람이 지나갈 수 없다.
문을 열면 사람이 지나갈 수 있지만 공간의 분리는 깨진다.
더 빠르게 열고 닫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문짝은 반드시 모든 기능을 혼자 수행해야 할까.
에어커튼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푼다.
문짝을 더 두껍게 만들거나 더 빠르게 닫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아래로 강한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 출입구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든다.
사람은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실내외 공기가 서로 섞이는 것은 줄어든다. 먼지나 벌레의 유입도 일정 부분 막을 수 있다.
자동문 다음에 반드시 에어커튼이 등장한다는 시간적 순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능의 진화 방향으로 보면 의미가 있다.
자동문은 사람이 하던 힘과 판단을 시스템 안으로 가져왔다.
에어커튼은 문짝이 하던 기능 가운데 일부를 다른 물질과 작동 원리에 넘긴다.
자동문은 문짝을 스스로 움직인다. 에어커튼은 움직이는 공기로 경계를 만든다.
물론 에어커튼이 문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문은 공기를 차단하는 것 외에도 보안과 방음, 사생활 보호, 화재와 연기의 확산 방지와 같은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에어커튼은 그중 온도 차이를 유지하고 공기·먼지·벌레의 이동을 줄이는 기능을 나누어 맡는다.
문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문이 수행하던 기능이 서로 다른 요소로 분리된 것이다.
자동문까지의 변화는 시스템 완전성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에게 있던 기능이 기술시스템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에어커튼부터는 질문이 달라진다.
필요한 구성요소를 모두 갖추었다면 그 구성요소가 반드시 지금의 형태로 남아 있어야 할까?
TRIZ의 이상성 증가의 법칙에서는 유용한 기능은 높이고 비용과 유해한 요소는 줄이는 방향으로 기술시스템이 발전한다고 본다. 궁극적으로는 시스템 자체가 거의 보이지 않더라도 필요한 기능이 수행되는 상태를 지향한다.
문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모습이다.
문짝은 보이지 않지만 두 공간은 필요한 만큼 분리된다.
현재의 에어커튼은 팬과 덕트가 필요하고 전력과 소음도 발생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체 문짝만이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중요하다.
물질-장 관점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기존 문은 고체 물질로 통로를 막는다.
에어커튼은 공기라는 물질을 흐르게 만들어 보이지 않는 장벽을 형성한다.
기술시스템은 물질과 장의 관계를 더 완전하고 제어 가능한 형태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문짝의 일부 기능이 공기의 흐름으로 이동한 것도 이러한 진화의 한 방향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사람이 문을 열고 닫았다.
문은 닫는 일을 먼저 가져갔다. 모터가 사람의 힘을 대신했다.
센서와 제어기가 사람의 반복적인 판단을 대신했다.
그리고 에어커튼은 문짝이 수행하던 기능의 일부를 공기 흐름에 맡겼다.
수동문 → 스스로 닫히는 문 → 버튼으로 움직이는 문 → 사람을 감지하는 자동문 → 자동문과 에어커튼의 결합 → 일부 환경에서는 문짝 없이 기능하는 공기의 경계
기술의 진화는 무엇인가를 계속 추가하는 과정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시스템에 필요한 구성요소를 갖춘다.
그다음에는 사람의 기능을 시스템 안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어느 정도 완전해지면, 지금까지 사용하던 요소가 정말 필요한지를 다시 묻는다.
자동문은 사람이 하던 일을 문 안으로 가져온 시스템이다.
에어커튼은 문짝이 하던 일을 다른 방식으로 나누어 맡긴 시스템이다.
가장 진화한 문은 더 빠르게 열리고 닫히는 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은 아무런 불편 없이 지나가지만, 두 공간에 필요한 차이는 계속 유지되는 문일 수 있다.
문은 사람의 손을 떠나면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스템 완전성의 법칙은 시스템은 4가지 구성요소를 갖추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