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TRIZ로 읽는 세상의 진화

by한유신

커피는 단순해 보인다.

원두가 있고 물이 있다.
원두를 볶고 갈아 물과 만나게 하면 한 잔의 커피가 된다.

우리는 그 커피의 향과 맛을 평가한다.

산미가 좋은지 쓴맛이 강한지 향이 풍부한지 이야기한다.

하지만 커피 한 잔은 카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누군가 커피나무를 심고 열매를 수확했다. 생두는 여러 유통단계를 거쳐 바다를 건너왔다. 다시 볶고 갈고 뜨거운 물과 만나 우리가 마시는 커피가 되었다.

커피를 다 마셨다고 과정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커피박이 남는다. 컵과 뚜껑, 포장재가 남기도 한다.
원두를 볶고 물을 데우는 동안 에너지도 사용된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컵 안만 본다.


커피의 진화는 정말 컵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화면을 넓혀 커피를 본다면

TRIZ에는 멀티스크린씽킹이라는 사고방식이 있다.

하나의 시스템을 현재 모습으로만 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보고, 시스템 안의 하위시스템과 시스템을 둘러싼 상위시스템까지 살펴본다.

커피의 하위시스템에는 원두, 물, 열, 분쇄도, 추출시간과 커피박이 있다.

시스템에는 로스팅, 추출, 포장과 카페 운영이 있다.

상위시스템에는 농장과 노동자, 국제유통, 공정무역, 에너지, 환경정바카라과 폐기물 처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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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화면을 넓히면 한 가지 차이가 보인다.

컵 안의 커피는 빠르게 발전했다.

원두의 산지와 품종을 구분한다. 로스팅 정도를 세분화하고, 분쇄도와 물의 온도, 압력과 시간을 정밀하게 조절한다. 에스프레소, 드립, 콜드브루, 캡슐과 전자동 방식도 이미 충분히 다양하다.

장비와 메뉴, 공간과 브랜드까지 차별화되고 있다.

S커브로 보면 커피의 맛과 추출방식은 상당히 성숙한 단계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컵 밖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커피를 수확한 사람의 노동조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가 지불한 가격이 생산자에게 어떻게 배분되는지도 알기 어렵다. 로스팅과 추출에 에너지가 사용되고, 커피를 마신 뒤에는 커피박과 포장재가 남는다.

컵 안과 컵 밖의 발전속도가 다른 것이다.

이 차이를 세 가지 진화법칙으로 살펴볼 수 있다.


컵 안보다 컵 밖이 먼저 진화할 것이다


시스템 불균일 발전의 법칙

기술시스템의 모든 부분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않는다.

어떤 부분은 빠르게 발전하고, 어떤 부분은 뒤처진다. 그 차이가 커지면 모순이 생기고, 뒤처진 부분을 해결하면서 시스템은 다시 진화한다.

커피에서는 맛과 편의성이 빠르게 발전했다.

더 좋은 원두를 찾고 더 정밀하게 추출하고 더 빠르고 편리하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생산자 보상, 노동조건, 환경정보와 공급망의 투명성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

공정무역은 이러한 불균형을 줄이려는 시도다. 그러나 인증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자에게 얼마나 가치가 돌아가는지, 어떤 노동조건에서 수확되었는지, 산림과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커피는 이렇게 설명되었다.

어느 나라 원두인가. 어떤 품종인가. 어떤 향이 나는가.

앞으로는 다른 질문이 추가될 수 있다.

누가 생산했는가. 어떤 조건에서 수확했는가. 생산자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돌아갔는가. 환경에 어떤 부담을 남겼는가.

컵 안의 맛이 성숙할수록 컵 밖의 신뢰가 새로운 가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커피는 향미를 설명하는 제품에서 생산과정을 설명하는 제품으로 진화할 수 있다.


커피박 제품보다 커피 순환시스템이 필요하다


상위시스템으로의 이동 법칙

커피는 이미 다른 시스템과 결합해 왔다.

우유와 결합했고, 디저트와 결합했다. 카페라는 공간과 결합했고, 업무와 공부, 만남과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커피의 상위시스템은 마시는 경험에서 끝나지 않는다.

커피를 추출한 뒤에는 커피박이 남는다.

커피박으로 비료나 연료, 생활용품과 소재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커피박이 저절로 자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카페마다 분산되어 발생하고 수분이 많다. 이물질이 섞일 수 있고, 오래 보관하면 상태가 달라진다. 수거하고 운반하고 건조하고 가공해야 한다. 가공한 커피박을 실제로 사용할 수요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커피박 문제의 핵심은 새로운 제품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커피박이 배출되는 순간부터 분리하고, 보관하고, 수거하고, 전처리하고,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과정이 연결되어야 한다.

카페 한 곳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여러 카페와 수거업체, 전처리시설과 농업·소재기업이 연결되어야 한다. 정바카라은 커피박을 폐기물로 볼 것인지, 일정한 조건을 갖춘 순환자원으로 볼 것인지 결정한다.

이 단계에서 커피박은 버려지는 부산물이 아니다.

다음 시스템으로 이동하는 원료가 된다.

미래의 커피는 한 잔을 판매하는 시스템에서 원두가 들어오고 커피박이 다시 나가는 흐름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 있다.


가장 맛있는 커피보다 부담이 적은 커피


이상성 증가의 법칙

TRIZ에서 기술시스템은 이상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유용한 기능은 늘어나고, 비용과 유해한 영향은 줄어든다.

지금까지 커피는 유용한 기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이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담을 함께 봐야 한다.

같은 맛을 만드는 데 원두와 물을 얼마나 사용하는가.

물을 데우고 원두를 볶는 데 에너지가 얼마나 필요한가.

컵과 포장, 캡슐과 필터가 얼마나 남는가.

커피박을 재활용하기 위해 다시 얼마나 많은 운반과 가공이 필요한가.

생산과 소비의 편리함이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부담을 전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상적인 커피는 단순히 가장 맛있는 커피가 아니다.

맛과 향은 유지하면서 원두와 물의 손실은 줄어야 한다. 필요한 만큼만 물을 데우고, 로스팅과 장비에서 발생한 열을 다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포장은 줄어들지만 신선도는 유지되고, 커피박은 다음 용도로 이어져야 한다.

포장을 줄이면 신선도가 떨어질 수 있다. 생산자 보상을 높이면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커피박을 재활용하면 폐기물은 줄지만 수거와 가공에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진화가 필요하다.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기능은 유지하면서 다른 화면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더 많은 것을 넣는 커피에서 더 적은 부담으로 같은 만족을 제공하는 커피로 진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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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다음 S커브는 컵 밖에서 시작될 수 있다

지금까지 커피는 컵 안의 맛을 진화시켜 왔다.

더 좋은 원두를 찾고, 로스팅을 세분화하고, 추출시간과 온도, 압력과 분쇄도를 조절했다.

그 결과 커피는 충분히 다양해졌다.

하지만 멀티스크린으로 보면 아직 진화하지 못한 화면이 보인다.

커피를 수확한 사람. 원두가 지나온 공급망. 사용된 물과 에너지. 컵과 포장재. 커피를 추출하고 남은 커피박.

앞으로 좋은 커피는 맛만 좋아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만들었고, 어떤 부담을 남겼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신 뒤 무엇으로 다시 이어지는지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커피 한 잔은 컵이 비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좋은 커피란 무엇일까.

가장 향이 풍부한 커피일까. 가장 편리한 커피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커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