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왜 S자로 진화할까 (S curve)

TRIZ로 읽는 세상의 진화

by한유신

지표로 현재를 읽고, 전략으로 다음을 정하는 법


새로운 기술은 처음부터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제대로 작동하는 것조차 어렵다.
가격은 비싸고, 성능은 불안정하다. 사람들은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잘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상황이 달라진다.

성능이 좋아지고 가격이 내려간다. 생산량이 늘어나고,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처음에는 일부 사람만 사용하던 것이 어느새 누구나 사용하는 제품이 된다.


하지만 성장에는 끝이 있다.

성능을 조금 높이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해진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도 사람들은 예전처럼 놀라지 않는다. 제품의 본질적인 변화보다 디자인, 브랜드, 포장과 같은 차별화가 더 중요해진다.

그러다 더 나은 시스템이 등장하면 기존 기술은 조금씩 자리를 내준다.

이 과정을 그래프로 그리면 알파벳 S와 비슷한 모양이 된다.

그래서 이를 S커브라고 부른다.


S커브는 제품의 일생을 그린 그림일까


S커브는 흔히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탄생한다.
성장한다.
성숙한다.
쇠퇴한다.

틀린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S커브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모든 제품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언젠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굳이 TRIZ가 아니어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TRIZ에서 S커브를 사용하는 목적은 조금 다르다.

S커브는 기술시스템이 현재 진화 곡선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는 분석 도구다. 현재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의 전략을 세우기 위해 사용한다.


그래서 S커브 분석에는 두 가지가 함께 등장한다.

지표와 전략이다.

지표는 현재 위치를 알려준다.

전략은 그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쉽게 말하면, 지표가 진단이라면 전략은 처방이다.


오래된 기술이라고 모두 성숙한 것은 아니다

어떤 제품이 출시된 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성숙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최근 등장한 제품이라고 해서 모두 초기 단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S커브의 위치는 달력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현재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살펴야 한다.


대량생산되고 있는가.

다양한 제품으로 분화되고 있는가.

새로운 시장에 계속 적용되고 있는가.

성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가.

기능보다 디자인이나 브랜드로 차별화하고 있는가.

더 우수한 대체 시스템이 등장하고 있는가.


이런 신호가 바로 지표다.

TRIZ의 S커브 분석은 이러한 지표를 통해 기술시스템이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판단하고, 그 단계에 적합한 발전 방향을 찾는다.


image.png


무엇이 성장하는가

S커브의 가로축에는 일반적으로 시간이 놓인다.

그렇다면 세로축에는 무엇이 놓일까.

단순히 매출이나 판매량만 놓이는 것은 아니다.

TRIZ에서는 흔히 MPV, 즉 가치를 대표하는 핵심 매개변수를 놓는다.

속도가 중요한 시스템이라면 속도가 MPV가 될 수 있다.
저장장치라면 저장용량이 될 수 있다.
운송수단이라면 이동시간이나 수송능력이 될 수 있다.
음식이라면 맛의 만족도, 조리 편의성, 보관기간, 선택의 다양성 등이 후보가 될 수 있다.


여기서 기능과 MPV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기능은 시스템이 무엇을 하는지를 나타낸다.

MPV는 그 기능을 수행하는 시스템에서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판단하는지를 보여준다.


같은 기능을 수행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처음에는 성능이 중요했지만 나중에는 가격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성능과 가격이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면 편의성이나 디자인이 새로운 가치로 떠오를 수도 있다.

따라서 하나의 시스템에 S커브가 하나만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본 성능은 이미 성숙기에 도달했지만 편의성은 성장기에 있을 수 있다. 가격 경쟁력은 한계에 부딪혔지만 개인화는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하고 있을 수도 있다.

S커브 분석 절차에서도 시스템과 주기능, MPV와 작동 원리를 정의한 뒤 하나의 MPV로 분석을 끝내지 않는다. 다른 MPV와 경쟁 시스템에 대해서도 분석을 반복하도록 한다.


그래서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제품은 몇 단계인가? 보다는 이 제품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는 가치는 지금 몇 단계인가? 에 가깝다.


S커브를 한눈에 보면

S커브는 1단계, 전이 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각 단계에는 특징적인 신호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신호에 따라 취해야 할 전략도 달라진다.

전체 구조를 한눈에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S커브 단계별 지표와 전략

image.png


이 표를 볼 때 중요한 것은 단계를 외우는 것이 아니다.

지표와 전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느 단계에서 실행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1단계


태어났지만 아직 살아남지는 못한 단계

1단계는 새로운 시스템의 주기능이 처음으로 구현된 단계다.

아이디어가 더 이상 머릿속에만 있지 않고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작동한다는 것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성능이 불안정할 수 있다.

가격이 지나치게 비쌀 수 있다.

필요한 재료나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그 제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단계에서는 많은 변형과 시행착오가 나타난다.

다른 기술시스템에서 구성요소를 가져와 사용하기도 하고, 기존 시스템과 결합해 약점을 보완하기도 한다.

기능을 구현할 가능성은 확인했지만 비용이 수익보다 큰 경우가 많다.


1단계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정말 작동할 수 있는가?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화려한 기능 추가가 아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병목을 찾아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인프라와 자원을 활용하고, 시스템의 단점보다 장점이 두드러지는 시장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살아남기 어려운 물리적, 경제적, 슬롯적 제약도 빠르게 확인해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서 모두 시장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기술이 1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전이 단계


기술보다 시장이 더 무서운 단계

1단계와 2단계 사이에는 전이 단계가 있다.

제품은 거의 완성되었다. 시장에 진입할 준비도 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승자가 정해지지는 않았다.

비슷한 기술을 가진 경쟁자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기술적으로 더 우수한 제품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출시 시점, 가격, 유통망, 법과 규제, 기존 산업의 저항과 같은 작은 차이가 성패를 가른다.

여러 형태의 시스템이 경쟁하지만 결국 일부만 시장에 남는다. 이때부터 MPV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전이 단계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시장이 이 시스템을 받아들일 것인가?

모든 성능이 최고일 필요는 없다.

시장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본 수준은 갖추되, 적어도 하나의 가치만큼은 경쟁 제품보다 명확하게 뛰어나야 한다.

빠르거나, 싸거나, 편리하거나, 정확하거나,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TRIZ에서는 이처럼 시장을 뚫고 들어갈 만큼 월등한 가치를 챔피언 매개변수라고 부른다.

전이 단계에서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오래 기다리는 것보다 적절한 시점에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큰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시스템의 핵심 작동 원리는 유지하는 편이 유리하다.


2단계


빠르게 성장하고 넓게 퍼지는 단계


시장이 시스템을 받아들이면 성장 속도가 달라진다.

투자가 늘어나고 생산량이 증가한다. 생산방식이 효율적으로 바뀌고 가격은 내려간다.

하나의 기술에서 여러 제품이 파생되고, 처음과 전혀 다른 분야에도 적용되기 시작한다.

시스템에 새로운 기능이 더해지기도 한다.

제품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 환경도 그 시스템을 중심으로 바뀐다.

전용 부품, 전용 서비스, 전용 소모품과 관련 인프라가 등장한다. 하나의 제품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2단계는 MPV가 급격히 성장하고 생산 규모와 응용 분야가 함께 확대되는 매우 역동적인 시기다.

2단계의 질문은 얼마나 크게 키울 수 있는가?

이 단계에서는 시스템의 기본 원리를 바꾸기보다 현재의 원리를 최적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성능을 높이고 생산성을 개선한다.

새로운 시장과 적용처를 찾는다. 주변에 새로운 구성요소를 도입해 기능을 확대할 수도 있다.

완벽한 해결바카라만 고집하기보다 약점을 줄이는 현실적인 타협도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장과 혁신은 대부분 이 단계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제품 종류가 늘어난다.

경쟁자가 증가한다.

가격이 내려간다.

새로운 고객이 유입된다.

관련 산업이 함께 성장한다.

하지만 이 속도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3단계


더 노력하지만 덜 좋아지는 단계


어느 순간부터 변화의 속도가 느려진다.

조금 더 좋아지게 만들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해진다.

기능을 하나 개선하면 다른 문제가 커진다.

성능과 가격, 편리함과 안전, 품질과 생산성 사이에서 모순이 늘어난다.

생산량도 더 이상 빠르게 증가하지 않는다.

시스템은 물리적 한계뿐 아니라 경제적, 슬롯적, 법적, 심리적 한계에 부딪힌다.

유용한 기능을 높이기 위해 투입하는 비용과 해로운 요소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3단계 질문: 같은 방식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는가?


이 단계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신호가 나타난다.

제품에 특화된 재료와 자원이 지나치게 많아진다.

디자인이 매우 다양해진다.

핵심 성능보다 미학적 요소나 부가 기능으로 차별화한다.

때로는 주기능과 거의 관계없는 기능까지 추가한다.

제품이 다양하다는 사실만으로 성장기라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단계의 다양화는 새로운 고객과 시장을 열기 위한 확장이다.

3단계의 다양화는 이미 포화된 시장 안에서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이기 위한 차별화일 수 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3단계에서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비용을 낮추고, 서비스를 개선하며, 디자인을 향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모순을 해결하고, 작동 원리를 바꾸고,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대체 시스템과 통합하거나 상위시스템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MPV를 찾는 것이다.

기존의 핵심 가치가 성숙기에 도달했다면, 아직 초기 S커브에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 다음 성장곡선을 만들어야 한다.

S커브의 윗부분에 도달했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까지 성장시켜 온 기준만으로는 더 이상 크게 성장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4단계


사라지거나, 일부가 되거나, 다시 태어나는 단계


더 효과적인 새로운 시스템이 빠르게 성장하면 기존 시스템은 밀려나기 시작한다.

또는 상위시스템과 생활환경이 변하면서 기존 기능 자체가 덜 필요해질 수 있다.

그러면 기능과 수익, 생산량이 감소한다.

4단계 질문: 어디에서 살아남거나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4단계에 들어갔다고 해서 시스템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실용적 기능을 잃고 장식이나 취미, 스포츠의 형태로 남기도 한다. 매우 특별한 시장에서만 사용되기도 한다.

또는 독립된 시스템으로 존재하지 않고 더 큰 상위시스템의 구성요소로 흡수되기도 한다.

이 단계의 전략은 아직 남아 있는 경쟁력을 찾는 것이다.

특수한 시장에서 새로운 용도를 발견할 수도 있다. 다른 시스템과 통합하거나 전혀 다른 작동 원리로 전환할 수도 있다.

때로는 사라졌던 기술이 새로운 재료나 환경을 만나 다시 등장한다.

TRIZ에서는 이를 환생이라고 표현한다.

오래된 기술이 언제나 낡은 것은 아니다.

사용할 이유가 사라졌을 뿐, 새로운 상황에서는 다시 가치가 생길 수 있다.


좋은 전략보다 먼저 필요한 것


기업이나 조직은 대개 새로운 전략을 원한다.

기능을 추가하자.

제품 종류를 늘리자.

가격을 낮추자.

디자인을 바꾸자.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자.

그러나 어떤 전략도 모든 단계에서 항상 옳지는 않다.

1단계의 시스템에는 먼저 작동을 방해하는 병목을 제거해야 한다.

전이 단계에서는 완벽함보다 시장 진입 시점과 압도적인 하나의 가치가 중요하다.

2단계에서는 최적화와 확장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미 3단계에 들어간 시스템에 2단계 전략을 반복하면 제품 종류와 비용만 늘어날 수 있다.

4단계에 있는 시스템을 과거의 대중시장으로 되돌리려 하기보다, 특별한 용도나 새로운 상위시스템을 찾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따라서 전략을 고민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지금은 그 전략을 사용해야 하는 단계인가?


좋은 전략과 나쁜 전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단계와 맞는 전략과 맞지 않는 전략이 있을 뿐이다.


하나의 제품 안에는 여러 개의 시간이 흐른다


제품 전체를 하나의 단계로 단정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도 각 가치의 성장 속도는 다르다.


기본 성능은 이미 3단계일 수 있다.

가격 경쟁은 한계에 도달했을 수 있다.

디자인은 계속 세분화되고 있을 수 있다.

개인화는 이제 전이 단계일 수 있다.

환경성과 건강성은 새로운 성장기에 들어설 수도 있다.

따라서 S커브 분석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 작업이 아니다.

어떤 가치는 이미 성숙했고, 어떤 가치는 아직 성장할 여지가 있는지를 구분하는 작업이다.

기존의 S커브가 완만해지고 있다고 해서 시스템 전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새로운 MPV가 발견되면 그곳에서 또 하나의 S커브가 시작된다.


현재의 위치와 미래의 방향


TRIZ에는 S커브 외에도 기술시스템이 일정한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기술시스템 진화법칙이 있다.

시스템 완전성, 에너지 전도성, 리듬 조화, 이상성 증가, 불균일 발전, 상위시스템으로의 이동, 미시계로의 이동, 물질-장 연관성 증가, 역동성 증가 등 아홉 가지 법칙이다.

S커브가 시스템의 현재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라면, 기술시스템 진화법칙은 그 시스템이 앞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에 가깝다.

먼저 지표를 통해 현재 위치를 진단한다.

그다음 그 단계에 맞는 전략을 찾는다.

그리고 진화법칙을 활용해 다음 모습을 예측한다.


이 세 가지가 연결될 때 S커브는 단순한 성장 그래프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는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