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은 싫다면서, 좋은 회사는 여전히 부럽다
“온라인 게임인들 하나도 안 부러움”
“요즘엔 자기 걸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스레드나 블라인드처럼 온라인 게임인들이 모여 있는
SNS와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요즘 이런 말을 자주 만난다.
내 주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료들은 회사 업무보다 재테크에 더 관심이 많고,
공간 임대나 상품 판매를 하고, 블로그와 유튜브를 운영한다.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자기 사업을 시작해 회사를 떠났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린다.
예전에는 높은 연봉이나 빠른 승진, 좋은 고과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요즘은 조금 다르다.
어디에 사는지, 부모에게 물려받을 것이 있는지,
회사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지가 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회사 안에서 얼마나 잘나가느냐보다,
회사 없이도 살 수 있느냐가 능력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됐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13년 동안 온라인 게임인으로 꽤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이런 변화는 낯설다.
그런데 또 아주 이상하지도 않다.
나 역시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부터 온라인 게임생활을 평생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회사에 종속되지 않은 내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회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13년 동안 회사와 산업, 직무를 여러 번 바꿨고 빠르게 승진했다.
연봉도 내가 처음 온라인 게임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까지 올라갔다.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래, 이렇게 열심히 회사에 다닐 줄은 몰랐다.
요즘 회사가 평가절하되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진다.
왜 그럴까.
13년이나 회사에 몸담았으니 이제 와서 내가 살아온 시간을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일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한 번도 회사에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회사가 재미있어서 다닌 것도 아니고, 회사에 특별한 소속감을 느낀 적도 별로 없다.
그저 내가 맡은 일을 잘하고 싶었다.
어제 못하던 일을 오늘 할 수 있게 되는 게 좋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면서 내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재미있었다.
일에서 만난 문제들은 당시에는 지긋지긋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를 꽤 많이 성장시켰다.
내가 혼자였다면 절대 해보지 못했을 일들도 했다.
큰돈을 움직여보고, 수많은 사람과 일해보고,
실패의 바카라임도 져보고, 누군가를 채용하고 평가하고 조직을 이끄는 경험도 했다.
회사라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일했고, 혼자서는 만들지 못했을 결과를 같이 만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회사는 늘 양가적인 존재였다.
죽도록 싫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동시에 꽤 많이 고맙다.
회사를 사랑한 적은 없지만, 회사에서 얻은 것은 분명히 많았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을 마치 용기 없고 능력 없는 사람처럼 이야기하거나,
온라인 게임인의 삶 자체를 한 단계 낮은 선택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가 벌써 젊은 세대를 아니꼽게 바라보는 사람이 된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나 역시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지금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꼭 온라인 게임인이라는 길만 바라보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아이 역시 회사의 직함보다 자기 이름으로 설명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니 나 역시 이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한 건 여기서부터다.
온라인 게임인의 삶은 예전만큼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대기업 공채에는 사람이 몰리고,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의 채용 소식에는 관심이 쏠린다.
누군가 억대 성과급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부러워한다.
퇴사를 꿈꾸면서도 막상 누군가 회사를 나간다고 하면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말도 한다.
회사가 싫다고 하면서 좋은 회사에는 가고 싶다.
회사원이 별것 아니라고 하면서 연봉과 명함에는 여전히 흔들린다.
회사 밖에서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회사에만 의존하는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일은 잘하고 싶다.
좋은 연봉도 받고 싶다.
가능하면 인정도 받고 싶다.
하지만 회사 하나에 내 미래 전체를 맡기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회사에 다니면서 투자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자격증을 따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
회사를 떠나기 위해 준비하면서 동시에 회사 안에서도 살아남으려고 애쓴다.
참 모순적이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온라인 게임인의 가장 솔직한 모습에 가깝다.
회사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회사는 여전히 일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볼 수 있는 강력한 공간이다.
다만 예전처럼 회사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설명해주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개인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회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될까.
정말 회사 밖에서 일하는 방식이 보편화될까.
아니면 언젠가는 한 회사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일과 프로젝트 사이에서 회사를 하나의 선택지로 두는 삶이 더 자연스러워질까.
그때 회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설명하는 ‘소속’이 아니라, 잠시 함께 일하는 ‘플랫폼’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일은 우리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