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은 부담스럽고, 승진하지 못하는 건 불안한 세대
90년생.
회사 생활 13년 차.
직함은 실장.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간 건 2013년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꽤 힘들었던 겨울이었다.
100곳 가까운 회사에 지원했다.
서류에서 절반 넘게 떨어지고, 인적성을 겨우 통과해도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
상위 5%의 상경계를 졸업했고 학점도 3점 후반이었다.
나름 정해진 길을 성실하게 걸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취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면접 끝에 두 곳에 최종 합격했고, 대기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정답대로 살아왔고, 드디어 정답에 도착한 줄 알았다.
그 기분은 몇 달 가지 않았다.
2014년의 대기업 경영지원 조직에는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문화가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상사가 퇴근하기 전까지 집에 가기 어려웠다.
보고서의 폰트와 글씨 크기 하나로 몇 번씩 다시 불려갔다.
회식에서 술을 거절하기 어려웠고, 지금이라면 문제 될 만한 성희롱성 농담도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회장이 공개적인 회의에서 팀장에게 심한 욕을 한다는 소문도 들었다.
과장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다 회의록을 쓰기 위해 그 회의에 직접 들어갔고,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매주 이어지는 회식과 접대에서 주량을 훌쩍 넘겨 술을 마셨다.
언제 부를지 몰라 자리를 지키다 방광염까지 걸렸다.
그 시절 나는 팀장과 차부장들을 보며 수도 없이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그런데 시간이 흘렀다.
그랬던 내가, 그리고 내 친구와 동기들이 이제 차장급이 됐다.
누군가는 팀장이 됐고, 누군가는 더 큰 조직을 맡기 시작했다.
한때 회사에서 ‘요즘 애들’ 취급을 받던 90년대생이
이제 누군가를 평가하고, 일을 나누고, 팀의 성과를 바카라임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저 사람처럼 되지는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그 ‘저 사람’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정말 원했던 걸까.
요즘 30대는 예전만큼 승진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다.
승진한다.
관리자가 된다.
임원이 된다.
한때는 이것이 꽤 자연스러운 성공의 경로였다.
하지만 지금의 30대는 꼭 위로 올라가는 것만이 성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봉은 높이고 싶지만 회사에 인생을 바치고 싶지는 않다.”
“성장하고 싶지만 꼭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미 팀장이 된 90년대생들은 다른 사람들일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우리는 승진을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세대에 가깝다.
팀장이 되면 바카라임과 압박이 커져서 싫다.
하지만 팀장이 안 되면 뒤처진 것 같아서 싫다.
팀장이 되면 내 일뿐 아니라 팀원의 실적과 사람 문제까지 바카라임져야 한다.
하지만 동기나 심지어 후배가 먼저 팀장이 되어 그 밑에서 일하는 것도 달갑지 않다.
팀장이 되면 윗사람의 요구도 맞춰야 하고, 조직 정치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연차까지 승진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커리어가 막히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그래서 평가에 신경을 쓴다.
승진 발표도 예의주시한다.
막상 팀장이 되면
“괜히 됐나?” 싶고,
되지 않으면
“내가 문제가 있나?” 싶다.
이 모순은 어디에서 온 걸까.
우리 세대는 꽤 오랫동안 명확한 정답을 보며 자랐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회사에 취업하고,
그 안에서 인정받아 계속 올라가는 것.
적어도 우리가 이십대 때까지는 꽤 현실적인 성공의 경로였다.
회사 밖에서 자기 이름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서른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접할 일도 많지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성공은 회사 안에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팀장이 될 나이가 되자 세상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회사에 인생을 걸지 말라고 한다.
승진보다 자기 삶이 중요하다고 한다.
월급만 믿으면 안 된다고 한다.
꼭 관리자가 되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정답을 따라왔는데, 도착하고 보니 정답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팀장이 되는 것도 불안하고, 되지 않는 것도 불안하다.
되고 싶지는 않은데 뒤처지고 싶지도 않다.
회사가 전부는 아니라면서도 회사의 평가에 흔들린다.
우리는 야망이 없는 세대가 아니다.
어쩌면 아직
새로운 야망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세대
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그 혼란스러운 90년대생들이 하나둘 팀장이 되고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