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사는 사람
AGI가 정말 등장한다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일자리 몇 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온
‘노동의 가치’부터 흔들릴 것이다.
인간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돈을 벌어서 집을 사고,
집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일을 하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가는 구조.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생각하고
쉬지 않고 일하며
거의 모든 지적 노동을 복제하고
필요하다면 실행까지 해주는 존재가 등장한다면,
인간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먼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일하지 않아도 생산은 계속되고,
기업은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고,
국가는 막대한 생산성 증가를 세금으로 거두고,
그것을 국민에게 기본소득이나 복지의 형태로 나누어줄 수도 있다.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된다.
볼 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고,
놀 것도 많고,
AI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서 골라주고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내 취향에 맞는 음악과 영상을 틀어주고
심심할 틈이 없게 해 줄 것이다.
필요하다면
약간의 돈도 지급될 것이다.
기본적인 주거가 제공되고
기본적인 의료가 제공되고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이보다 좋은 세상이 어디 있어?”
그런데 나는
그 지점에서 조금 불편한 생각을 한다.
먹고사는 것이 해결된 인간은
정말 행복할까?
인간은 먹고, 보고, 소비하는 것만으로는
오래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어제보다 나아지고 싶어 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성취감이 필요하고
유능하다는 감각이 필요하고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 삶을 내가 결정하고 있다는 감각.
그것이 사라지면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제공되는데
내가 할 일이 없다.
모든 것이 편리한데
내가 결정할 일이 없다.
원하는 것은 대부분 얻을 수 있는데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어지는 것.
그때 인간은
행복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아주 편안하게
사육되는 것일까.
사육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동물을 생각해 보면
사육은 반드시 고통을 의미하지 않는다.
먹이가 제공되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고,
질병이 생기면 치료받고,
위험한 포식자도 없다.
아주 평온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평온한 삶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에덴동산’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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