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은 한 번에 믿고, 칭찬은 세 번 들어야 겨우 믿는다.
강의 중에 자주 쓰는 장치가 하나 있다. 두 사람씩 마주 앉게 하고, 상대에게 칭찬 한 가지와 부탁 한 가지를 말하게 한다. 규칙은 하나다. 구체적으로 말할 것.
그러면 거의 예외 없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 칭찬을 들은 사람은 손을 젓는다.
“아니에요, 제가 뭘요.”
“그건 그냥 제 일이라서 한 건데요.”
“운이 좋았어요.”
그런데 부탁을 들은 사람은 손을 젓지 않는다. 대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사람은 수첩을 꺼내 적는다.
나는 그 장면을 십수 년 지켜보면서 매번 같은 생각을 한다. 좋은 말은 증거를 요구하고, 지적은 증거 없이 통과된다.
한번은 실습이 끝나고 물어봤다. 방금 들은 칭찬을 믿으시냐고. 스물여섯 명 중에 손을 든 사람이 네 명이었다.
그다음에 물었다. 방금 들은 부탁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시냐고. 스물한 명이 손을 들었다.
같은 사람들이, 같은 상대에게, 같은 시간에 들은 말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부정 편향이라고 부른다. 맹수의 기척과 열매의 향기 중 무엇을 먼저 알아채야 살아남았는지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우리 안에는 아직 그 시절의 감지기가 남아 있다. 다만 이제 그 감지기가 반응하는 것은 맹수가 아니라 회의실에서 들은 한 문장이다.
고객센터에서 일할 때, 상담사들의 통화를 듣고 평가표를 채우는 일을 했다. 한 사람의 녹취를 이십 건씩 듣는 날도 있었다.
열여덟 건이 훌륭하고 두 건이 아쉬운 날, 피드백 면담에서 상담사가 기억하는 건 그 두 건이었다. 나는 열여덟 건을 먼저 말했는데도 그랬다.
면담이 끝날 때 그가 물었다.
“제가 많이 부족하죠?”
그날 이후로 순서를 바꿨다. 잘한 것을 말하고, 아쉬운 것을 말하고, 다시 잘한 것으로 돌아가 끝냈다.
마지막에 들은 말이 오래 남는다는 걸 알고 나서 생긴 습관이다. 그렇게 해도 절반쯤은 여전히 아쉬운 두 건만 들고 나갔다.
사람의 마음은 좋은 말을 저장하는 데는 서툴고, 나쁜 말을 보관하는 데는 놀랍도록 성실하다.
이상한 것은 하나 더 있다. 우리는 남의 실수는 그 사람의 성격으로 설명하고, 자기 실수는 상황으로 설명한다.
저 사람이 늦은 건 게으르기 때문이고, 내가 늦은 건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귀인 오류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제조업 강의에서 생산팀과 개발팀을 한 조에 앉히고 서로에게 질문 하나씩을 던지게 했다.
개발팀 과장이 물었다. 왜 도면대로 안 만드시냐고.
생산팀 반장이 답했다.
“도면대로 하면 손이 안 들어가는 자리가 있습니다. 열두 번 말씀드렸는데 도면이 안 바뀌어서, 저희가 방법을 찾은 겁니다.”
그 자리가 조용해졌다. 개발팀 과장은 그 열두 번을 모르고 있었다.
요청은 팀장에게 갔고, 팀장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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