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질문으로부터
나는 무엇으로부터 자유하고 싶은가?
그 오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나는 바로 나의 페르소나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온전한 나로 있고 싶었다. 나를 껍질처럼 뒤덮고 있는 여러 페르소나와 나를 규정하는 슬롯적 언어로부터 자유하고 싶었다. 나는 이를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내가 믿고 느끼는 나의 정체성이 아니었을 뿐, 내가 탈출하기까지 하고 싶었던 대상이었는지는 이제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어떤 계기로 그러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자유하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자유롭게 존재했던 곳은 미국에서였다. 그곳에서는 나의 자아가 다른 언어를 입고, 다른 관계를 형성하고, 다른 내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페르소나가 아니라 껍질이 벗겨져 나온 바나나 속살처럼, 혹은 껍데기를 탈출한 달팽이처럼 내면의 뽀얗고 투명한 나였다. 내가 아니었지만, 옆에 있으면 나의 다른 껍질처럼 붙어있던 가족으로부터의 자유, 그저 내 당시 그대로의 모습과 역량으로만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과의 관계, 물론 그것은 그 당시 내가 학생이었기 때문에 더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거기서 형성된 이후의 페르소나는 좀 더 나의 본질에 가까웠고, 나의 존재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나와 닮지 않은 공간에서 나라고 규정된 나와 닮지 않은 페르소나로 살아야 했다. 이후에도 한국에 돌아올 때마다 나를 뒤덮고 있던 페르소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내 몸 위에 올라붙었다. 나는 그것이 다시 내게 올라 붙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잠시의 탈출구는 한국 내 있던 미국 회사였고, 사무실만 한국에 있었을 뿐 거길 드나들던 사람들과, 언어와, 모든 시스템은 이국적인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역시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였고, 나를 슬롯적 페르소나의 한계로 규정하지 않고 나로서 역량을 펼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퇴근 후 돌아와 머무는 장소와 집은 또한 나의 다른 페르소나로 내가 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어떤 게 나의 모습인지 혼란스러웠고, 하나는 기꺼이 수용하는 나였고, 또 하나는 탈출하고 싶은 나였다 그 둘은 같은 존재였지만, 이질적이고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그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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