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편히 잠을 잘 수 있을까
아무래도 마음이 편히 놓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멀쩡한 사랑니가 무슨 죄라고 교정으로 힘들게 교합을 맞춰놓은 두 개의 자연치를 뽑고 거기에 하나의 인공 치아인 임플란트를 심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한 지금은 통통하고 튼튼해 보이는 잇몸뼈를 그대로 사라지게 내버려 두는 것도 옳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대로 두었을 경우 언젠가는 사랑니가 앞으로 쓰러지고, 윗 어금니가 다는 아니어도 기형적으로 비스듬히 침몰하는 배처럼 걸쳐져 있게 될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민을 덜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를 수용하기로 했다. 억지로 불안하지 않다고 애를 쓰지 않기로 했다는 의미이다.
시간의 공백을 채우려 유튜브를 종종 틀어놓는데, 알고리듬이 내게 흥미로운 클립을 하나 떠올려주었다. 오래전 치아변색에 대한 논문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같은 저자가 이번엔 임플란트와 교정을 바라보는 통합적 관점에 대해 영상에 나와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다시 그에 대한 자료를 더 검색해 보았는데, 그는 치아교정과 의사이면서도 직접 일반 진료를 한 적도 있고, 사랑니 견인치료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평판이 있을 정도로 전문가였다. 한 마디로 내가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처럼 느껴졌다. 연구자적 모드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임상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치아 빈 공간 뒤로 멀쩡한 사랑니가 있는데, 애초에 처음 교정치과 선생님은 사랑니 견인치료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워서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고 해서 사랑니에는 교정장치를 붙이지 않았다. 나는 동의했다. 그런데 해당 분야에서 권위가 있는 전문가가 있다면 다시 한번 그에게 내 상태에 대해 물어보고 그게 가능한 선택인지 물어보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되돌릴 수 없는 치료를 급히 결정하고 이후에 후회하기보다는 한 번만이라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이를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당장 예약을 하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너무 많은 옵션을 두는 것이 아닌지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살면서 여러 경험으로 인해 내 무의식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계속 대안을 찾는 것은 내가 스스로를 납득할만한 최종의 선택지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내 마음을 따라가기로 했다. 찾다 보면 답은 찾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소위 '병원 쇼핑을 하는 진상환자'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문득 작년 미국에서 알게 된 친구가 쓴 바카라의 내용이 생각이 났다. 미국인 친구도 처음 증상이 발현되었을 때, 여러 병원의 다른 진단들 사이를 오고 갔고, 원하는 진단과 치료법을 찾기 위해 여러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했다고 쓰여 있었다. 또한 그가 병원 내부의 분위기와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의료진의 성향과 긍정적인 말투가 그녀의 크고 작은 결정과 실제 회복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도 자세히 묘사가 되어 있던 게 기억이 났다. 나는 내 몸의 주도권을 쥐고, 내게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는 내 몸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납득 가능한 정보를 찾는 거지, 의료쇼핑을 다니는 진상환자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다.
그녀를 멀리 타국에서 열흘간 있는 동안 알게 되어 바카라까지 받은 것은 우연히 발생한 일이고, 당시에는 나와 상관이 없을 거 같아서 몇 달 동안 페이지를 넘겨보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그 바카라의 내용이 떠오르며 병원에 가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의료현실이나 문화를 넘어, 자신의 신체에 발생한 문제를 맞닥뜨리는 사람들의 여정이라는 점에서 보면, 여러 가지 공통된 부분이 있는 듯했다.
나는 이 불안한 상황들을 조금 여유 있게 받아들이며, 의료진을 만나기 전 매우 정성껏 내가 하고 싶은 질문들을 종이에 기록하고 수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한눈에 내 상황이 보일 수 있도록 인쇄된 사진 기록들을 첨부했다. 집을 떠나는데 마음이 무겁고 괜한 짓을 하는 건가 더 망설여졌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열차가 서소문 고가도로의 붕괴로 운행을 중단한 상황에서도 다행히 내가 예약한 열차만 유일하게 운행을 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병원은 그의 유명세로 인해 예상한 대로 환자들이 많이 대기 중이었고, 여유 있는 지방의 병원에서 볼 수 있는 트렌디한 새 인테리어는 아니었다. 장기 환자의 치료에 바쁜 의료진의 시간을 괜히 뺏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 그렇지만,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진단에 대한 통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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