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풀옵션'의 완벽함
다시 방문한 교정 치과 선생님은 여느 때보다 친절하게 나의 질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는 엑스레이상으로 보이는 어금니의 단차는 실제로는 그리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라 했다. 또한 이가 다 맞물리지 않는 부분의 모양이 약간 사선으로 내려올 수는 있으나 다 내려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선택이 아니라 치료와 조정이 필요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나는 윗 어금니가 비스듬히 내려와서 아래 어금니에 살짝 걸쳐 있는 건 용납할 수 없으니 임플란트를 해야 하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어금니와 사랑니 사이의 공간이 좁아 보여서 사랑니의 일부를 삭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래층 일반진료 치과에서는 공간이 충분하며, 사랑니 삭제와 같은 이야기는 한 적이 없어서 가서 다시 확인하면 될 것이었다. 또한 사랑니의 교합은 좋으니 자신 같으면 그대로 두고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했으며, 반대쪽에도 치아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임플란트로 수복을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 위의 치아가 비스듬히 정출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임플란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했고, 한편으로는 왜 교정이 끝난 직후 이런 가능성을 이야기하지 않고 교정치료로 아래 대합치가 생겼으니 임플란트를 안 해도 된다고 했는지 궁금했다. 필요하면 잇몸의 시린 곳을 치료하는 것이 어떻냐는 조언에 따라 아래층 치과를 이틀 후 바로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몇 년 후에야 뭔가가 이상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장치를 떼고 난 후 9개월 동안 치아는 임플란트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잇몸의 퇴축하거나 뼈의 손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분량이 미미하더라도 말이다. 치아가 교합 조정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이니 어쩌면 지금이 적기인지도 모르겠다. 의학적 지식은 잘 모르겠지만, 몸에 대한 나의 직관적 통찰에 따라 하는 소리다. 의학적 지식은 바카라으로도 배울 수 있지만, 몸으로 그 지식을 살아낸 나도 의학적 사실과 무관한 지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몸을 지니고 살아내는 모든 인간들은 다 그러하지 않을까? 결국 바카라이라는 지식도 몸이 살아낸 것을 기록한 것이니 말이다.
그는 의사들 간에도 진단이 다 다르다고 했다. 그것도 이해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예상치에 대한 의학적 맥락은 설명을 하고 내게 추후 치료를 선택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결국 내가 물었기 때문에 놓칠 수 있던 중요한 정보를 인지해낸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후 임플란트 상황은 왜 또 다른 치과들 간에 차이가 날까?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너무나 머리가 아파서 교정 치과 선생님이 다니는 치과는 어딘지 물었다. 그는 당연히 모교로 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그러더니 나 같은 '완벽주의자'에게 딱 맞는 치과가 있으니 가보라고 했다. 거기는 멀리에 계신 자신의 부모님도 치료를 믿고 맡긴 곳이라 했다. 지금 있는 곳보다 더 외곽이었는데, 순간 왜 하필 가까운 수도권이나 서울이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그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가서 상담은 받아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는 미리 연락을 해주겠다는 고마운 얘기까지 했고, 가서 더 자세한 걸 물어볼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는 교정이 끝나갈 무렵 장치를 떼기 전에 그간 꾹 참았던 나의 몇 가지 질문을 듣고 "완벽주의자이셨구나"라는 말을 하면서 그때부터 나와 좀 친절한 소통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다시 내게 '완벽주의자'라고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완벽주의자'는 아니다. 완벽하게 완벽하지 않음을 내세우는 사람이랄까? 내 작품도 그렇고, 내 인생에서 완벽한 단계까지 가는 건 숨이 막혀 보여서 별로 추구한 적이 없다. 내가 처한 상황은 어느 환자라도 당연히 확인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는 너무나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닌가 싶은데, 아마 의료진들이 환자에게 '완벽주의자'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한 다른 정의가 있는 것 같다.
소개해준 치과에 대해 알아보려니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는 많이 없고, 한 앱을 통해 의료진의 약력은 어떻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정보로만 보면 왜 이런 분이 그런 작고 조용한 곳에 있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해 보였다. 양적인 경력을 최고로 치는 대한민국의 기준으로 보면,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의 모든 과정을 밟은 그런 의사 선생님이었다.
이런 생각이 스스로도 모순이고, 나에 대해서도 가끔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들-그 경력을 가지고 왜 이런 시골 구석에 있어? 뭔가 실력이 없는 거 아니야? 등-을 던지는 걸 싫어했지만, 나도 내가 모르는 타인을 볼 때에는 그런 프레임을 먼저 고려하는 것을 보니 어쩔 수 없나 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왜 꼭 그런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에만 가 있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나의 모순적인 생각을 바로 고쳐 잡았다. 그런 분이 이런 작은 시골에 있다면, 그건 소도시 지역민들에게 매우 감사하고 운이 좋은 일이다. 나의 교정 치과 선생님처럼 말이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아침 예약한 치과로 향했다. 주중의 한적한 낯선 도로를 혼자 드라이브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빽빽한 아파트단지들 틈에 있는 상가 건물 2층 치과가 있었다. 건물에 들어서는데 엘리베이터로 노인 한 분이 같이 탔다. 그도 같이 치과로 향했다.
치과는 뭔가 장엄해 보였다. 엘리베이터에 탔던 노인 분과 비슷한 연령대의 환자들이 여러 명 그리 넓지 않은 대기실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뭔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어른들이 모여있는 곳과 같은 느낌 말이다. 나도 벌써부터 어른이고, 나도 나이로 따지면 곧 노인에 근접할 테지만, 뭔가 거기에 속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전원일기 이장님 댁 안에 앉아있는 느낌이랄까. 그건 단순히 연령대가 높다는 뜻만은 아니다.
어렸을 적 어른들의 모임에 가면 나는 그 틈에 끼어 뭔가 이렇게 아주 지루하면서도 심심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건 '지루한 어떤 느낌'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벽에 못을 박은 옷걸이, 옆에 숫자가 크게 쓰인 흰 달력이 있는 시골의 안방 같은 느낌이랄까. 인테리어나 낡거나 초라하다는 게 절대 아니다. 돈이 많이 들어갔을 법한 인테리어였는데, 이상하게 전원일기 이장님 댁의 그 안방과 같은 권태로운 느낌이 엄습했다.
나는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 임플란트를 기다리며 말없이 빤히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게 괴로웠다. 우리는 다 노인이 된다. 나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냥 그 풍경에 있기가 두려웠다. 그건 아직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곧 몰려올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아직 그런 것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요즘은 예약을 하는 곳이 많아 대기실에 사람들이 많이 없는데, 사람들이 순번을 기다리는 곳에서부터 나는 뭔가 불안한 긴장감이 들었다.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나는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은 여유 있게 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이 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치과가 망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출입구에서부터 몇 개인지 모르는 커다랗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각종 임플란트 배너들이 여럿 줄지어 서있었는데, 그것들은 치과 진료실 내부에서도 망부석들처럼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또한 진료실 의자 앞의 벽에는 치아의 뿌리와 치수가 벌겋게 노출된 치아가 커다랗고 무시무시하게 반이 뚝 잘린 채 각종 의학용어들로 난무한 포스터들이 벽의 표면을 채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치과가 무서운 나는 긴장감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여러 진료실 입구들이 맞닿아 있는 아담한 대기실에서 윙윙거리는 드릴 소리가 정말 잠시도 쉬지 않고 들렸다. 붉고 검은 에나멜 재질의 실내와 어두운 오렌지빛의 실내에서 느껴지는 뭔가 장엄하고 권위로운 느낌 때문에 의사 선생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왠지 그를 이미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커다란 나사와 치아의 붉은 해부구조가 드러난 그런 포스터들이 환자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의료진들을 위한 것일까? 노인이 되면 공포와 두려움과 고통에 무뎌질 수 있을까? 모두가 태연하고 고요해 보였는데, 내 심장만 요동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과 감각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엑스레이실이나 진료실의 공간들은 약간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는데, 나는 고장 난 기계처럼 각종 박스와 도구와 차가운 금속 오브제들에 둘러싸여 수선을 기다리는 로봇 같았다. 시선과 멀지 않은 거리에 사방으로 물건들이 있었다. 눈앞의 작은 투명 박스들은 대열이 맞지 않았고, 흰 벽 아래 부분에는 검은 때 같은 자국들이 묻어 있었다. 이곳은 진료실일까, 아니면 재료 창고일까...... 나는 의자에 앉은 게 아니라, 뚝딱뚝딱 고치려고 작업대 위에 놓아둔 고장 난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비뚤어진 투명 서랍들을 머릿속에서 자꾸만 똑바로 맞추고 있었다. 어렸을 적 목욕탕에 가면 변기의 곡선부부에 패턴이 맞지 않는 타일들이 일부는 잘린 채 시공이 되어 있었는데, 늘 그곳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패턴들을 맞추고 있던 기억이 났다. 내 예민해진 감각에, 그곳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와 기하학적인 패턴들이 나열된 방이었다. 나는 사진을 판독 중인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며 그 방에 있었는데, 멍하니 있다가 화면에 떠 있는 내 치아들의 곡선들을 잊지 않으려고 손가락으로 이를 내 다리 위로 그려보고 있었다. 청각, 시각, 후각, 촉각이 모두 과하게 자극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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