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물어야 했던 질문

불안 속에서는 본질이 흐려진다

by이영선

교정장치를 떼어낸 후 9개월이 지났다. 지난주 화요일 마지막 점검을 받고 약속된 치과의 역할은 끝났다. 두 번의 정기 검진을 통해 가철식 유지장치를 하는 시간은 처음 14시간에서 12시간으로 줄었고, 이제부턴 6시간만 착용해도 괜찮다고 했으며, 교정 중에도 교정 후에도 협조도가 좋아서 잘 끝내고 유지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대신 특별히 다른 할 것은 없고, 이전부터 바람에 약간 시린 부분이 있어, 불편하면 치료를 하는 게 좋고 아니면 지켜보라는 말을 했다. 원래는 왼쪽 어금니 위쪽 부분 일부가 치과기구로 바람을 불 때 약간 시렸지만, 지난 유지 기간 동안 점점 오른쪽 어금니 위쪽의 잇몸이 안 좋아졌는지 없던 시린 부분들이 더 생겨난 것 같았다.


소위 치경부 마모나 노출이 된 경우 대표적으로 두 가지 치료방법이 있다고 읽은 적이 있는데 레진이라는 재료로 노출 부위를 덮을 때에는 치아 삭제를 하는 부분이 있어서 가급적 안 하는 게 좋다고 하는 의견도 있고, 그냥 두면 점점 더 치아 표면이 벗겨져 나가서 신경과 근접하면 오히려 신경치료를 해야 하기도 한다는 의견도 있어서 가급적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 일반 진료 치과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다니던 치과는 1인 교정 전문치과라서 주변 몇 군데의 다른 일반 치과를 추천하곤 했는데, 그 치과들은 잘 노출이 되지 않는 건물에 있는 오래된 치과들이었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되지 않았으며, 간단한 홈페이지가 있어도 의료진에 대한 이력이나 심지어는 이름조차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에서부터 또 나의 선택장애와 분석적 두뇌 공회전이 시작되었다. 이건 다 내가 최근 몇 년 새 경험한 병원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 때문이다. 몰라서 무턱대고 갔을 때까지만 해도 없던 트라우마적 증상이고, 나의 자연스러운 보호기제이다. 나도 이런 내가 안타깝다.


불신보다는 불안이다. 어쩌면 그 둘이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길에 나가면 어디든 치과 간판은 쉽게 눈에 띈다. 특히 내가 사는 도시에 신축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생겨나다 보니 온갖 병원들이 신축 건물들에 대거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중이다.


해당 치과들은 지역에서 꽤 오래 있었으며, 소소히 입소문에 의해 유지되는 곳들 같았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내 현재 치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합적으로 진료를 바라보고, 특히 교정치료에 대한 지식을 함께 갖춘 치과를 선택하고 싶었다. 아무리 손기술이 유능해도 교정치료와 동시대적 치료 관점에도 열려있는 그런 세련된 전문가를 찾고 싶었다.


나는 왜 해당 치과들을 추천했는지 문의했는데, 치료 시 교정장치를 끼웠다가 빼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왕이면 근처 가까운 치과들을 추천하는 것이라 했다. 원하면 다른 곳에 다녀도 된다고 했다. 그곳은 언급된 이름이 생소한 치과들 말고도, 오래 대중적인 평판을 쌓은 치과들이 많이 있는 구도심 중심가였다. 그런 곳들이 치아교정과를 통합하는 대형 치과들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같은 경쟁 업종의 치과들을 피해 추천한 건가도 싶었지만, 의료진이 누군지 최소한의 정보도 올려놓지 않은 치과의사들에게 가는 게 내키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손기술과 다년간의 경험이 축적된 고수들의 치과인가도 싶어서 한참을 망설였다. 나는 그런 곳들을 좋아하는 성향이지만, 단순히 안 알려진 구석의 치과들이라고 고수라는 판단을 할 수도 없다. 나는 몇 년 전 비슷한 모양새를 한 치과를 고수라고 착각한, 동네의 존재감 없는 1인 치과에서 살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었던, 겉으로는 멀쩡히 잘 쓰고 있었던 두 개의 가장 중요한 제2 대구치를 당장 뽑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공포심을 갖고 서둘러 발치를 하는 엄청난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나도 그리 홍보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병원이라면 의료진의 약력이나 치과 정보에 대한 것은 올려놓는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묻지도 말고 오라는 건, 예술가의 작업실이나 수행인의 도방 같은 곳이면 모를까, 치과 진료실이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의사의 약력이란 개인정보라 하기엔 숨길 가치도 없는,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하는 환자에 대한 기본 예의라고 생각한다.


구도심뿐만 아니라 내 집 주변에도 한 곳에 치과와 병원들이 떼로 몰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풍경이 도시를 덮고 있는데, 막상 한 곳을 정하려니 또 망망한 대해에서 혼자 조각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것처럼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다. 병원선택의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싶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나는 교정치과 선생님을 존경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그 선생님과 똑같은 학교 출신의 하고 많은 휘황 찬란한 의료진들이 포진해 있는 치과들을 모두 뒤로하고, 그냥 추천해 준 병원들 중 홈페이지라도 제대로 있는 바로 아래층의 젊은 통합치의학과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거기에 가는 것도 어떤 이유로 조금 망설이긴 했다. 교정을 끝내기 바로 몇 달 전, 수십 년 된 작은 아말감 치료 부분이 떨어져서 레진치료를 하라고 교정치과에서 의뢰해서 갔는데, 앞니 사이에 충치가 있다고 하면서 치료를 권한 적이 있었다. 교정을 시작하기 전에 거쳤던 여러 다양한 일반 진료병원들에서도 전혀 언급이 없었던 부분이고, 교정치료를 끝내기 직전까지 교정치과에서도 언급이 없었던 부분이었다.


당시 교정치과에 가서 아래층 치과에서 언급한 진단결과를 전달했는데, 교정치과 선생님은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면서 나보고 치료가 필요하다던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라고까지 했다. 나는 당연히 "전 모르죠"라고 했고, 그렇게 교정 유지 장치를 부착하고 치료를 끝냈다.


그때는 아래층 치과에 다시 가지 않는 선택을 한 것에 불안감이나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 교정치과 선생님이 치료를 공격적으로 하거나 보수적으로 지켜보는 것에 대해서는 각 치과의사들 간에 차이가 있다고 했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했다. 교정치과 선생님은 추후 문제가 발견되면 치료하면 되니 지켜보자고 했고, 그런 결정이 납득이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안함이 전혀 없었다. 그냥 그가 그렇다고 말하면 피부과 진료도, 정형외과 진료도 심지어는 맹장 수술을 한다 해도 그냥 그에게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충치 부분은 아직까지 아무도 언급한 적이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내가 어쩌다 이 까칠한 듯 한 교정치과 선생님을 첫눈에 보자마자 내 모든 이를 다 주어야겠다는 신뢰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냥 느껴지는 것이거나, 내가 생각한 이상적 의료인의 이미지에 그가 들어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 치과에 들어서자마자 '여기다'라는 직관적 판단이 바로 들었다. 심지어는 교정치료를 실제로 할 생각도 없이 교정치료의 가능성에 대해 알아만 본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말이다.


공간은 거기에 있는 사람에 대해 많은 말을 한다.


여담이지만, 이전에 '캐스트'라는 영화에 보면 섬에 떨어져 고립된 주인공이 외로움에 찌그러진 배구공에 눈코입을 그려놓고 친구처럼 살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는 그 친구 덕에 눈물도 흘리고, 위안을 받는다. 그건 그가 그 쓰레기에 마음을 담고, 거기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집을 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린 모두 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상대를 상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내가 객관적인 나를 말한다 하더라도 그건 주관적이 되고, 타인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도, 결국은 나라는 주체도 모르는 실체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그것이 실체가 되고 실제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무엇을 어떤 관점을 가지고 믿느냐는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실재냐 아니냐를 가리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교정치과 선생님은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고 찾던 전문가로 내 뇌리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그게 실제로는 아무 생각이 없던 배구공이었는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내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게 중요했고, 아직도 그렇다.




아래층 의사 선생님은 바로 시리다고 한 모든 부분에 레진치료를 권장했다. 그는 내가 언급하는 모든 곳을 가급적 치료하려는 성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는 저렇게 친절하다가는 곧 번아웃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환자들에게 매우 친절하고 소통에 열려있었으며, 오픈한 지 몇 년 안 된 병원에서는 처음에 오히려 환자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잘만 선택하면 오래된 병원만큼 좋은 진료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어 나쁘지 않았다. 이왕이면 믿을 만한 한 군데 치과에서 오래 치료를 받으려면 의사 선생님이 젊은 게 좋긴 한 것 같았다. 안 그러면 치과를 또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치경부 레진 부착 치료가 끝나고 임플란트 식립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생각해 보니 아직 교정장치를 하고 있던 지난 첫 방문 때에도 한쪽 어금니가 있던 쪽에는 임플란트가 필요하단 말을 언급했긴 했다. 그런데 이후 교정치과에서 교정 마무리를 하면서 아래에 대합치가 생겨서 임플란트를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으냐고 하며 치료 결과를 정리해 주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있었다. 교정치과에서는 장치를 떼어낼 때에도, 바로 전날의 교정 사후 점검일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던 부분이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워서 그럴 리가 없으며 전날 점검에서도 문제없이 잘 유지하고 있다는 말을 교정치과에서 들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아래층 의사 선생님은 해당 치과에서 1년 전 찍은 엑스레이와 현재 찍은 엑스레이를 스크린에 올려놓고 대합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차가 생긴 윗 어금니를 대조해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그건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나는 마음이 혼란스럽고 다급해졌다. 교정치과에서 잘 끝나고 유지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지 하루도 안 지나서 어렵게 한 교정치아에 벌써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응급상황처럼 느껴졌다. 그건 또한 치아 상식이 없어서 빠진 치아 위로 반대편 치아가 내려오는 것을 몰라서 그냥 내버려 둔 사람들에게나 발생하는 일이 아니던가.


나는 2년여 기간 동안 교정치과에 다녔으면서도 그것을 방치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게 견딜 수가 없었다. 먼저 떠나보낸 두 개의 영구치로 인해 내 남은 치아들의 건강을 잘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나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평생 공부를 했는데 빵점이 된 성적표를 받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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