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날도 있다

by영초이

분명히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몸은 무겁고, 휴대폰은 미확인 알림으로 가득하다. 보행자 신호가 빨간불인데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전거에 사고가 날 뻔하고, 출근해서는 급한 일이 연이어 터지면서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에는 손도 못 대는 날.


아직 끝이 아니다.


퇴근 후 운동하다 어깨를 다쳐 끙끙 앓다가 잠들어버리고, 애매하게 새벽 2시에 깨서 결국 날밤을 새버렸다.


이 모든 것이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자주 하는 표현으로 하자면, 암세포도 암에 걸릴 것 같은 날이다.



사실 하나씩 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다. 늦잠을 잔 것도, 자전거에 사고가 날 뻔한 것도, 일이 몰린 것도, 운동하다 다친 것도 평소라면 하루에 하나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일은 한꺼번에 온다. 하나가 꼬이면 다음 일이 기다렸다는 듯 꼬인다. 평소라면 "에이, 썅" 하고 넘길 일도 그날만큼은 유난히 신경 쓰인다. 그러다 보면 별것 아닌 일 하나에도 괜히 신경쓰이고, 하루는 유독 길어진다.


사실 이런 날에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이미 늦잠을 잔 것을 되돌릴 수도 없고, 지나간 자전거를 붙잡아 세울 수도 없다. 갑자기 생긴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고, 다친 어깨를 당장 멀쩡하게 만들 수도 없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씩 지나가게 두는 것뿐이다.


이런 날을 만나면 어떻게든 만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침을 망쳤으니 오후에는 더 열심히 해야 하고, 일이 밀렸으니 늦게까지라도 끝내야 해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가끔은 하루를 잘 보내는 것보다 그냥 무사히 끝내는 것이 더 중요한 날도 있다. 그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마음이 힘들 때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나도 그래서 오늘 점심시간에 머리를 자르고 왔다. 평소에 만족하던 미용사였다. 그런데 완전히 망했다.


마가 낀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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