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효도하러 갔다.

by소만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부과라는 곳엘 갔다. 피부에 문제가 있거나 트러블이 있어서가 아니다. 남들이 신경도 안 쓰고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에 늘어나는 잡티를 제거해 보고자 큰 맘을 먹은 것이다. 내겐 피부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예쁜 언니와 친절한 의사, 깨끗한 병원과 가장 중요한 무시무시한 가격. 내 몸의 얼룩들은 오래되었지만 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진료비 걱정을 뒤로하고 피부과에 문을 두드린 것은 엄마 때문이다.




두 달 전, 엄마와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는 갑자기 귀 앞에 난 점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며 말했다.

- 여기 큰 점이 있네, 너 얼굴에 점 없었는데.

- 응, 이거 생긴 지 꽤 됐어. 근데 점점 커진 것 같아. 앞에서 보면 안보이긴 하는데 나도 이게 요즘 신경이 좀 쓰이더라고. 왜?

- 그냥. 너 피부 참 좋았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

- 그렇지, 엄마가 나를 너무 완벽하게 낳았는데 나는 피부는 타고난 거라고 생각해서 관리를 아예 안 했지. 덕분에 40이 넘으니까 이런 게 막 생기더라고. 피부는 타고난 게 아니라 관리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 느꼈다. 엄마에게 그 점이 그렇게 눈에 띄었나?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엄마를 만났을 때마다 나는 점 생각이 났다. 나이 들어 점이 생긴 나를 엄마는 안쓰러워하는 듯 느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동네 사람들은 나를 인형이라고 불렀다. 뽀얀 피부에 어두운 갈색머리, 특히 앞머리만 다른 곳보다 살짝 옅은 색이라 흰 피부가 굉장히 눈에 띄었다. 나는 평소에 로션밖에 바르지 않았다. 20대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날이 흐리면 흐리다고, 비 오면 비 온다고 선크림을 잘 안 발랐다. 20대의 나는 평생 하얗고 투명한 피부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고, 사람들에게 나는 '피부가 잘 타지 않아서 괜찮다.', '비타민 D를 흡수해서 뼈를 튼튼하게 하고 싶다'는, 지금 생각하면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40이 넘어가자 내 피부는 급격히 나빠졌다. 평소 햇빛과 바람을 좋아하는 나는 일을 할 때 바카라상 옆 블라인드를 항상 올리고 근무했고, 오랫동안 운전 보조석에만 앉아 있었으니 특히 얼굴 오른쪽에 유독 많은 잡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귀 앞에 있는 점도 15년 넘게 성실히 창가에 앉아 햇빛을 쐰 결과이리라.

10년 전 육아휴직을 할 때 집에서 첫째와 찍은 사진 속 내 피부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예뻤다. 하지만 지금은 민낯이 신경 쓰이는 정도가 됐다.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굴의 점과 잡티들을 가리기 위해 팩트를 꾹꾹 눌러 바르고 두드리니 화장은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가끔 피부과에 갈까 하는 생각만 했지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집을 사면, 이사를 하고 나면, 이사 간 집에서 안정이 되면, 어떤 일이 마무리되면... 하는 핑계를 만들며 결심을 미뤄왔지만 엄마의 말 한마디에 그 일은 '조만간 꼭 해야 할 일'로 바뀌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월요일, 남편 회사가 쉬는 날이라 남편에게 아이들의 등교와 학원 마친 후 첫째의 예방접종까지 맡겼다. 퇴근 후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점찍어 둔 피부과를 예약한 뒤 집을 나섰다. 5시 30분, 일반 병원이라면 늦은 시간이지만 피부과는 8시까지 하는 곳이 많았다. 쭈뼛쭈뼛 들어간 피부과 데스크에서 먼저 접수를 하고 세면대로 가서 화장을 지웠다. 스킨을 바른 후 피부 사진을 찍고, 피부 고민에 대한 설문을 마친 후 상담실로 들어갔다.




상담실에는 예쁘고 날씬하고 선한 눈매에 피부가 말간, 손톱에 귀여운 액세서리가 박혀있는 네일을 한, 나보다 족히 이십 년은 어려 보이는 '언니'가 내 앞에 앉았다.

- 어떤 고민으로 오셨어요?

- 음, 점 빼러 왔어요.

- 점이 별로 안 보이는데요?

내 얼굴을 휙휙 돌려보던 그녀는 얼굴에 점은 3개밖에 없고, 점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편평 사마귀라고 했다. 큰 점과 눈에 보이는 까만 흔적만 없애려던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수많은 고민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머릿속 계산기를 돌렸다. 돈이 얼마나 들까?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 저는 점을 빼러 왔어요. 하지만 제 얼굴에 눈에 띄는 자국이 사마귀일 줄은 몰랐어요.

- 얼굴 오른쪽이 많긴 한데, 지금 얼굴 전체적으로 오돌토돌하게 난 게 모두 편평 사마귀예요.

- 다 하면 비싸겠지요?

언니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 저희 병원에서 얼굴 전체에 있는 점과 편평 사마귀를 모두 제거하시면 79만 원이세요. 아마 가장 빠르게 효과 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런데 사마귀를 제거하면 지금 볼에 군데군데 퍼져있는 기미가 도드라져 보일 거예요. 기미 제거 프로그램은 10회짜리 기본이 90만 원입니다. 그리고 지금 9월 행사가 있어서 적립금을 넣으시면 결제할 때 부가세를 추가로 빼드리고, 10%를 더 충전해 드리는 행사를 하고 있어요. 모레까지가 마감인데 이거 하시면 얼굴이 더 환해지실 거예요.


돈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상담이 편하지는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목에 난 쥐젖도 떼고, 주름은 보톡스로 쫙 펴고 싶었다. 게다가 얼굴 전체 점과 기미를 없애면 원래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10년 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10년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200만 원을 투자하는 건 어쩌면 내게 굉장히 남는 장사다. 마침 지금이 행사기간이라 딱 200만 원만 투자하면 40만 원의 혜택을 더 준단다. 이 나이 먹도록 나를 위해 200만 원 '밖에' 안 되는 돈을 두고 갈등하고 있는 내가 순간 초라해졌다. 내 앞에 있는 젊은 언니 내 능력이, 나의 외모에 대한 관심이 '그것밖에 안 되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생각하며 곧 정신을 차렸다. 나는 엄마를 위해 점을 빼러 왔지 시간을 되돌리러 온 게 아니다.


- 일단 점은 빼고 갈게요. 당장 할 수 있고, 1회 시술로 끝나는 거라면 편평 사마귀도 제거하고요.

- 점이랑 편평 사마귀는 오늘 당장 제거 가능하세요. 얼굴 전체 시술로 하시겠어요?

-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온 얼굴에 습윤반창고를 붙이고 가면 너무 웃길 것 같아요. 생각해 보세요.

상담실 언니는 웃었다.

- 그렇게 출근할 순 없어요. 얼굴은 티 안 나게 예뻐져야 하니까, 일단 가장 심한 부분만 할게요. 나머지 반대편은 다음에 하겠습니다.

- 한 번에 하시면 하루에 끝나는데, 두 부분을 나눠서 하시면 치료 기간이 두배로 느는 거세요. 괜찮으세요? 보통 다들 한 번에 하시거든요.

- 그렇겠죠? 하지만 그러고 근무하기가 좀 그래요. 가장 심한 얼굴 오른쪽 부분만 제거하고 갈게요.

상담 언니는 내게 추가적인 시술이나 패키지 상품은 더 권유하지 않았다.

- 얼마예요?

- 점이랑 편평 사마귀는 개당 만천 원이고요, 큰 점은 하나에 삼만삼천 원이에요.

- 음... 이왕 하는 거 보톡스를 맞아볼까 해요. 제가 이마에 원래 주름이 2개였는데 작년부터 주름이 4개가 되었거든요.


언니는 웃으며 차트에 이마 보톡스도 하나 추가했다. 시술비 26만 원은 카드로 결제했다. '현금으로 주면 할인된다'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상담이 끝나고 밖으로 나갔다. 평일인데도 대기실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나는 간호사를 따라 신부대기실 같은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간호사가 들어와 상담실 언니가 얼굴에 동그란 표시를 한 부위에 흰 마취크림을 스패츌러로 발라줬다. 그리고 나는 한쪽 볼에 생크림을 묻힌 모양새로 앉아있었다. 얼마 뒤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기계가 가득한 환한 방에 들어가 누워있으니 곧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내 이름을 확인하고 시술 내용을 설명해 줬다. 나에게 시술 경험을 물어보고 피부 상태를 알려주고, 통증이 참을 만한지 재차 확인했다. 이 병원에 의사는 이 사람 혼자다. 10시 30분에 병원을 오픈하고, 8시 30분에 마감하는데, 내가 7시에 시술을 받았으니 벌써 8시간째 근무다. 지쳐서 힘든 기색을 낼 만도 한데 말투가 깃털처럼 가볍고 친절했다.

점을 지지고, 점처럼 보였던 뾰루지도 짜서 제거한 후, 마지막에 이마에 보톡스를 맞으니 5분 만에 시술은 끝났다. 그 상태로 나는 라커에서 가방을 챙겨 건물을 나왔다. 가까운 약국에 들러 여드름용 습윤 반창고를 사서 집으로 왔다. 처음에는 따갑고 얼얼하던 얼굴이 몇 시간 지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2-3일 무거울 수 있다던 이마의 보톡스도 거슬리지 않는다. 혹시 엎드려 자다가 상처 부위의 반창고가 떨어질까 봐 정자세로 누워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침, 같은 자세로 기상했다. 다행히 반창고는 그대로였다.

평소처럼 세수를 하고 화장도 하고, 마스크를 쓰니 얼굴 옆에 덕지덕지 붙은 반창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출근을 하니 안 쓰던 마스크를 쓰고 온 나를 보고 동료가 묻는다.

- 감기 들었어요?

- 아니요.

-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 옮을까 봐 그래요?

- 음... 그렇다고 해두죠.


퇴근하고 집에 와서 마스크를 벗으니 얼굴에 붙인 밴드에는 뽀얀 진물이 나 있다. 손을 깨끗이 씻고 의료용 가위를 알코올 스왑으로 소독한 후, 집에 있던 습윤 밴드를 잘게 잘랐다. 밴드 스티커를 떼가며 하나씩 붙이다가 내 성질에 못 이겨 반창고를 크게 잘라 그냥 얼굴 옆면에 떡하니 붙였다. 이제 일주일 뒤에 습윤 밴드를 제거하고 한동안 재생크림과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면 피부는 한결 정돈될 것이다. 마스크도 당분간 계속 써야지.


그리고 한 달 뒤 친정에 가면 엄마는 뭐라고 할까? 좀 더 깨끗해진 얼굴을 보며 잘했다고 칭찬해 주지 않을까? 내가 피부가 좋아진들 내 연봉이나 인간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엄마가 이 모습을 보고 더 좋아한다면 난 그걸로 됐다. 그게 피부과에 간 내 목적이니까.

음... 엄마가 시술이 잘 됐다고 칭찬해 주면 왼쪽 뺨의 편평 사마귀도 마저 제거하고 기미 제거 시술 패키지도 끊어 볼까? 그러면 엄마의 만족도보다 내 만족도가 높을 것 같지만 나이 들어가는 딸을 아까워하는 엄마를 위한 일이라고 포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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