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이 바닥이 좁으니 내가 처신을 잘해야 한다.

by소만

초임 때 경기북부의 한 학교에서 근무했었다. 그때 만난 교장 선생님은 키가 작고 마른 분이었는데, 운동을 매우 잘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시골에서 가르치던 제자들이 소년체전에 나가 메달을 따서 승진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분은 평소 근무를 할 때 공과 사가 분명하고 태도가 매우 점잖은 편이었다. 신규인 나는 일로 부딪힐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근무할 때는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딱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학부모와 교사 앞에서 말이 다른 것이었다. 거의 매일 이루어지는 회의와 긴 협의를 거쳐 결정 난 사항임에도 학부모 회장이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할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일이 달라졌다. 또 하나는 회식 때였다. 이분은 2차 노래방에서 부르스를 추는 것을 좋아하셨다. 나는 춤을 아예 못췄기 때문에 뒤로 빠졌지만, 회식을 할 때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다음 해 교장 선생님은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시고 새로운 교장 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다.


새로 온 교장 선생님은 풍채가 있으시고, 붉은기가 있는 퉁퉁한 얼굴에 선한 눈매를 가졌다. 한쪽 눈이 좋지 않으셨는데, 그전 교장선생님과는 결이 달랐다. 일단 회의가 적었고, 시간도 짧았다. 학부모의 의견으로 학교 행사가 좌지우지되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2차 회식을 가더라도 부르스를 추지 않아서 전보다 학교생활이 편했다.




하지만 작은 학교이니 저경력 교사도 웬만한 학교의 부장급 업무를 두 개씩 담당하고 있는 만큼 연수도, 출장도 잦은 편이었다. 그 당시에는 출장을 나갈 때 출장 신청을 올린 후, 교장 선생님께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해야 했다. 그거야 늘 하던 거였으니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 갈 일이 생겨 평소처럼 교장실 문을 두드리고 어떤 일로 어디로 출장 가는지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교장 선생님이 나에게 자기 자리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교장 선생님 바카라상으로 가자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 그래요, 이선생. 잘 갔다 와요.

엄청나게 중요한 출장도 아니고 업무와 관련된 내용을 전달받기 위해 나가는 그야말로 일상적인 일이었음에도 교장선생님은 굳이 잘 다녀오라고 악수를 청하셨다. '뭐지?', '왜 그러시지?' 의아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회식자리에서 부르스 추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그냥 격려차 그러시나 보다 했다 하고 좋게 좋게 생각하고 넘겼다. 그리고 또 다음 출장일이었다.


- 교장 선생님, 교육청에 연수가 있어 다녀오겠습니다.

- 그래요, 이리 와봐요.

교장실 문 앞에서 간단히 인사만 하고 가려는데 교장 선생님이 나를 교장실로 불렀다.

- 어디 간다고?

- 저... 교육청에 업무 관련 전달 연수가 있어서 다녀오겠습니다.

- 아, 교육청에? 잘 다녀와요.

교장선생님은 내게 한 손을 내미셨고, 나도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남은 한 손으로 내 손등을 탁탁 두드리고 웃으며 수고가 많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별일 아닌 일에 굳이 내게 악수를 청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교장선생님께 출장 간다는 인사를 하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그다음에 출장 보고를 할 때는 일부러 열중쉬어 자세로 인사드렸다.


- 오, 이선생. 이번엔 어디 출장이야?

- 네, 옆학교에서 출장이 잡혀서 다녀오겠습니다.

- 그래요? 손 좀 줘 봐요.

손을 보여주지 않으면 교장 선생님도 굳이 악수를 청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번에는 내가 뒤로 숨긴 손을 꺼내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불편했지만 아빠뻘 되는 교장이 나에게 악수를 하고 손을 청한다는데 내가 불쾌한 것보다 그 말을 거절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아 시키는 대로 했다. 별일 아니겠지. 내가 너무 예민한가? 너무 넘겨짚는 것은 아닌가? 하는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는 가운데 내가 머뭇거리는 게 보였는지 교장은 어색하게 늘어뜨린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 별건 아니고, 내가 사탕을 주려고 그러지. 출장 잘 갔다 와요. 차도 없는데 버스 타고 가느라 힘들 텐데, 이 사탕 먹으면서 가.

사탕을 주려는 선한 의도를 내가 왜곡한 게 아닐까 했지만, 찜찜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사탕은 내게 먹고 싶으면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다. 굳이 열중쉬어하고 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고 사탕을 내 손에 쥐어주며 내 손을 오므려 준 이 행동을 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혼란스러웠다.



내가 느끼는 불쾌한 감정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당시 연구부장을 하고 있던 나보다 4살 많은 언니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 출장 인사를 드릴 때마다 악수를 하자고 하시는데, 너무 불편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는지 아니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궁금해서요. 혹시라도 내가 오해한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불쾌할 수 있는 상황이라 거절할 수가 없네요.

내 말을 들은 동료교사의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 나는 출장 간다고 말씀드려도 뒤도 안 돌아보시는데? 사탕? 그런 건 받은 적도 없어. 근데 샘, 조심해. 그 교장선생님 사모님 성격이 장난 아니야, 이 바닥 좁은 거 알지?


그 이후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일절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내가 모르는 일들이 하나둘씩 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이 평소에는 점잖은데 하나에 꽂히면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사람을 들들 볶는다는 것. 어느 날은 오후 수업 중이던 교실에 들어가 쓰레기통을 발로 차서 뒤집어 놓았다고 했다. 청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3층에 근무하던 나는 이런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지만 교장선생님에 대한 동료 선생님들의 여론은 나빠져 갔다. 그리고 술을 먹으면 통제가 안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회식을 한번 시작하면 얼굴이 시뻘게져서 더 이상 먹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자리가 파하기 전까지 스스로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나는 그해, 전근을 신청해서 수원으로 내려왔다.




유월이었나? 수업을 마치고 업무를 보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학부모인가 하고 받았더니 이전 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 도교육청에 출장이 있어서 수원에 왔는데, 이선생이 수원으로 전근 간 게 기억나서 밥 한 끼 사주려고 전화했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교장 선생님은 자신이 출장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시간이 빈다고, 바쁘면 자신이 택시를 타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 와서 밥은 사주고 싶다고 했다. 굳이 여기서 나한테 전화를 했다면 내가 어느 학교에 근무하는지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나는 보는 눈 많은 학교 근처로 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있다 퇴근하고 계시는 곳으로 가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퇴근을 하고 수원역으로 갔다.


교장 선생님은 도교육청 출장이 예정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고 했다. 평소보다 붉어진 얼굴 상태를 보아하니 이미 술을 한잔 걸친 모양이다. 교장 선생님은 내게 반갑다며, 저녁을 사겠다고 하고 근처 설렁탕집에 들어갔다. 설렁탕을 반그릇쯤 먹었을까? 교장 선생님은 입이 심심하다며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그리고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의미 없는 말이 오갔다. 나는 생각했다. '오늘 이후로 다시는 이 사람을 만나지 않을 것이며, 이 사람도 굳이 나를 찾아 올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식사를 마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보내드리면 끝날 것이라 짐작했다. 이렇게 얼굴이 빨갛도록 술을 마신채로 어딜 돌아다닌단 말인가?

- 교장 선생님, 아까도 술을 좀 하신 것 같은데 좀 과하신 것 같습니다.

- 아 아까? 그거 연수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랑 간단히 한잔 했지. 그게 점심 지나서인데 지금은 술 다 깼지. 오랜만에 이선생 보니 반갑기도 하고 설렁탕 먹으니까 입이 심심하기도 해서 주문했어, 나 이 정도 먹어도 술 안 취하니까 신경 쓰지 마.

- 그래도 얼굴색이 평소보다 많이 빨개지신 것 같아서요. 갈길도 머신데. 괜찮으시겠어요?

- 요 앞에 바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자면 돼. 그나저나 학교는 괜찮아?


교장 선생님은 설렁탕과 소주 한 병을 모두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틀비틀 일어나 계산을 한다며 카운터로 걸어가셨다. 나는 식당 테이블에 아직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놀랐다. 교장 선생님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계산했다. 월급쟁이가 현금 영수증 처리도 하지 않은 채 현금만 냈다. 느낌이 쎄 했다.


나는 최대한 거리를 두고 밥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고, 이제 집으로 가려고 교장 선생님 뒤로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러다 교장 선생님이 에스컬레이터 중간에서 내렸다.

- 수원 같은 곳에서 근무하면 그래도 정장 같은 거 입어야 하지 않아? 월급도 얼마 안 될 텐데, 내가 좋은 옷 한 벌 사 줄 테니 골라봐.

- 아... 교장선생님. 여기는 복장과 관련해서는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에요(그 당시에 출근할 때 정장 입고 오라고 은근 눈치 주는 관리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최근에 새 옷도 사서 그런 거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 아니, 이선생이 옷을 잘 입으면 더 예쁠 텐데 맨날 비슷한 스타일의 옷만 입어서 내가 작년에도 마음이 쓰였어. 내가 살 테니까 돈은 신경 쓰지 말고 마음에 드는 거 골라.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사줘. 그래도 온라인 게임 상산데 만난 김에 옷 한 벌이라도 사주고 가야 내 마음이 편하지.


그리고는 시뻘게진 얼굴로 비실비실 웃으며 백화점 여성복 코너를 천천히 돌았다. 그냥 두고 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 바닥이 좁다.'라는 말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일단 최선을 다해서 이 분을 집으로 보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뒤를 따라다니며 말했다.

- 교장 선생님, 전 괜찮아요, 버스도 한번 갈아타셔야 하는데, 내일 출근하실 때 피곤하실 것 같아요.

- 어, 괜찮아. 나는 알아서 가면 되니까, 이선생은 걱정하지 마. 혹시 마음에 드는 원피스가 없으면, 다른 층에가서 체육복을 사줄까?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황당하고 불쾌한 말에 응대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필요 없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상대도 부담갖지 말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다 내가 말했다.

- 그럼 너무 늦으시잖아요. 늦는다고 사모님께 전화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모님' 소리를 하자 교장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어, 나야. 여기 수원에 출장 와서 아는 교장들이랑 술 한잔하고 집에 가. 좀 늦을 거야. 한 열 시쯤?

통화를 마친 교장 선생님은 여성복 코너에서 발길을 돌려 에스컬레이터로 갔다. 다행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교장 선생님을 버스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려고 했으나 그는 한사코 손을 내 저었다.

- 아, 나는 괜찮아. 이선생 먼저 택시 타고 들어가.

하면서 지갑에서 현금 만원을 건넨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교장 선생님, 저는 괜찮습니다. 술도 드시고 멀리서 오셨는데, 제가 버스 타시는 것 보고 가겠습니다.

- 아냐, 얼굴 보니 좋네. 옷도 하나 사주고 가면 내가 기분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 나는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 네 그럼 알겠습니다. 저녁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집에 가기 싫은 교장선생님을 수원역에 남겨두고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가는 길에 이 난감한 상황을 작년에 내가 고민을 털어놓았던 전 온라인 게임 동료에게 연락을 했다.

- 샘, 저예요.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갑자기 전화드려 죄송해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이 상황이 좀 혼란스러워서요.

- 네, 샘 저 잘 있어요. 샘도 잘 있죠? 무슨 일 있어요?

- 음... 그게, 방금 작년 ***교장 선생님이 수원역에 오셨어요. 도교육청에 출장 오신 김에 들렀다고 하셔서 밥 사주신다고 해서 나갔는데, 밥을 사주고 술을 드시더니 저한테 옷을 사주겠다며 백화점을 빙빙 돌았거든요. 이게 뭔가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 음... 샘 내가 전에도 말했죠? 사모님 성격이 장난 아니라고. 이 바닥 좁으니까 선생님이 처신 잘해요.


전보다 심각한 고민에 전과 다름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바닥이 좁으니까 네가 처신 잘하라'는 말. 그리고 그 이후에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그의 호의에 대해 내가 처신을 잘해서였을까? 시간이 지나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성추행, 성폭력 예방교육을 했었다. 처음에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별 생각없이 강의를 듣던 중 문득 과거의 일이 떠올랐고, 강의에 몰입했다. 강의를 마친 강사가 질문이 있냐는 말에 나는 손을 들어 질문했다.

- 교장실에서는 단 둘이 있는데, 증거를 채집할 수 없잖아요. 제가 불쾌한 일을 당하거나 상대방에게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때 증거가 없다면 법정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요? 아니면 이때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강사가 말했다.

- 그 일은 바로 그날 6하원칙에 따라 기록으로 남기세요. 이메일에 내게 쓰기 기능이 있어요. 그 일이 있을 때마다 구체적인 상황을 글로 쓰세요.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당사자만 알 수 있는 내용이 있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조사를 받을 때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여러 번 묻거든요. 그때 진술의 일관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 피해자의 지인이나 사건을 아는 사람도 조사를 받을 수 있어요. 만약 그런 일을 겪었다면 가까운 분에게 이야기를 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강의가 끝나고 함께 연수를 듣던 교직원들이 거의 자리를 떴을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강사에게 다가가서 20년 전의 그 사건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 혹시 손을 잡는 것도 성추행이 될 수 있나요? 제가 불편해서 뒷짐 지거나 장갑을 꼈을 때도 손을 달라고 하고 악수를 청하셨거든요.

- 그렇죠. 성추행이에요. 그런 분들은 대게 손에 사탕을 쥐어주곤 해요.


온라인 게임 내 성폭력 연수를 통해 20년 전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만약 내가 다시 그 나이에 그 자리에 있더라도 나는 '거기서 왜 빠져나오지 못했냐', '왜 거절하지 못하냐', '왜 싫다는 말을 못 했냐'고 나 자신에게 물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겉보기에 업무적 호의와 배려나 관심 사이에 묘하게 걸쳐져 있는 그 순간에 피해를 받은 것조차 분명히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호의를 의심하는 나를 되려 바카라망했을 수도 있다.

한두 다리면 넘으면 누구든 알 수 있는 교직 슬롯에서 나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밝히기보다 '처신을 잘하라'라는 선배 교사의 말처럼 내가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슬롯 생활은 내 능력만큼 평판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누구든 무엇보다 직접 겪지 않고서는, 그곳에 있지 않고서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20년전 동료교사 한 사람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 조차도 잊고 있었던 경험을 온라인카지노에 적어본다. 하지만 나의 글은 오랫동안 의식 아래 묻혀 있던 힘들었던 기억을 꺼내 털어버리려는 의도일 뿐, 특정 지위의 사람들을 매도하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니 위로도 비난도 하지 말아 주시기 부탁드린다. 피해자임에도 이 글을 쓰기 조심스러운 이유다.


P.S. 나이가 먹고 경력도 쌓이면서 존경할만한 교장, 교감 선생님도 많이 만났다. 그리고 현재 근무지의 교장 선생님도 이전에 근무하던 교감 선생님의 지인이다. 지역이 가깝지 않은데도 말이다. 역시,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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