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가리비를 먹으며...

by소만

가족들과 오랜만에 방아머리 해수욕장에 갔다. 해양 생물을 좋아하는 둘째 덕분에 우리는 일 년에 세네 번은 꼭 갯벌에 가거나 낚시를 하는데, 올봄에는 이사와 전학으로 인해 갯벌체험과 낚시는 생각도 못했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 우리 가족의 매년 루틴인 갯벌 체험을 하러 나섰다. 아침에 일어나 물때를 확인하고, 플라스틱통, 갈퀴와 호미, 마실 물을 준비했지만 돗자리는 챙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단 갯벌에 발 들여놓기 시작하면 우리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에 눈이 멀어 땅에서 눈을 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게 내겐 참 어려운 일이었지만 요즘은 요령이 생겨서 그나마 작은 소쿠리 한두 개는 채워서 나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땅을 판 후 진흙 덩어리를 손으로 뭉개고 그 속에 숨은 조개를 확인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운 좋게 다른 사람이 파 놓은 뻘밭에서 미처 캐지 못한 조개가 빼꼼히 머리를 내민 것을 줍기도 하고, 앞으로 살살 걸어가다가 바닥에서 물을 높게 뿜는 구멍을 파서 조개를 잡기도 했다. 조개는 한 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그 주변을 파다 보면 또 다른 조개를 찾기 쉽다.

전에는 물이 빠지는 것을 보면서도 해변에서 멀어지면 불안해서 더 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평소보다 멀리 나가봤다.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조개는 많이 잡히는 것 같아 신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슬리퍼였다. 아이들은 슬리퍼를 카트에 넣고 왔는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리퍼를 신고 갯벌에 들어왔다. 하지만 편평한 슬리퍼 바닥이 뻘에 쩍쩍 들러붙어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처럼 맨발로 다니기로 하고, 호미에다가 슬리퍼를 끼워서 들고 장소를 이동했다.




열심히 조개를 캐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첫째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곳만 캐고 간다고 조금 기다리라고 했지만, 마침 내가 자리 잡은 곳에서 조개가 끊임없이 나왔다. 일 분만, 일 분만을 외치다가 나는 딸을 데리고 모래사장으로 나왔고, 이왕 나온 김에 허기도 채우기로 했다. 온 가족이 편의점에 모여 컵라면을 하나씩 사서 스탠드에 앉아 먹었다. 바닷물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하고 때늦은 컵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컵라면을 먹자마자 나는 다시 갯벌로 나갔다. 아까 화장실에 가면서 다 캐지 못한 조개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조개를 캤던 장소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노다지를 찾아다니다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조개를 캤다.

그리고 어느새 바닷물은 다시 들어오고 있었다. 조개가 플라스틱 통을 반쯤 채웠을 무렵 나는 아이들에게 이제 집으로 가자고 했다.


바닷물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플라스틱 통과 호미를 챙겨 갯벌을 나오려는데, 뭔가 허전했다. 호미에 꽂고 다녔던 슬리퍼가 보이지 않았다. 몇 년간 여름마다 신었던, 편하지는 않지만 막 신고 다니기 좋은 슬리퍼. 나는 조개를 캤을 법한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온 길을 돌아가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들어오는 바닷물을 따라 저 멀리서 놀고 있었다.


- 이제 그만 가자. 물 들어온다.

- 노는 게 아니야, 바닷물이 들어올 때 잘 보이는 조개를 찾는 거야.

아까도 그렇게 놀다가 조개 몇 마리를 주워왔었다. 잠시 후에 아이들은 방향을 바꿔가며 웅덩이가 생긴 뻘밭을 이리저리 뛰어놀았다.

- 얘들아, 이제 이리 와. 거긴 없어. 엄마가 그렇게 멀리까지 갔을 리 없잖아.

이제 곧 물이 들어온다. 아이들이 내 곁에 있어야 맘이 편할 것 같다. 남편도 옆에서 슬리퍼를 찾고 있었다.

- 여기 근처 어디에 있을 텐데.

- 그거 당신 여행 갈 때마다 갖고 갔던 거 아냐?

- 맞아, 한 오 년 됐지.

- 참 잘 신었는데 아쉽다.


내가 연거푸 아이들을 부르자 멀찍이 있던 아이들은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둘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곤 양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 엄마 슬리퍼 여기 있네.

잃어버린 슬리퍼였다. 나는 저기 두지 않았을 거라고, 내가 저기까지 가서 조개를 캤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저 위치에서 조개를 잡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둘째는 기쁜 걸음으로 내게 달려왔다.


- 엄마, 내가 찾았어.

- 와 진짜네. 어떻게 찾았지?

- 아니 땅바닥을 보면서 뛰어 오는데, 바닥에 익숙한 신발이 보이더라고.

- 다행이다. 10분만 지났어도 저기가 바닷가가 돼서 영영 못 찾았을 텐데 진짜 운 좋네. 고마워.

- 응, 그럼 나 랍스터 사줘.

둘째는 내게 랍스터를 사달라고 졸랐다. 얼마 전에 마트에 할인하던 랍스터 한 마리를 먹고 또 먹고 싶었나 보다. 나는 할인하면 한번 더 사 주겠다고 하고 반가운 슬리퍼를 신고 갯벌을 나왔다.

조개를 헹구고, 뻘이 묻은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까운 횟집에 가서 가리비 찜과 칼국수를 시켰다. 곧 해는 지고, 바닷물은 모래사장 앞까지 다다랗다.




가리비와 칼국수를 먹을 땐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손과 입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고, 나는 천천히 남은 가리비를 마무리하기 위해 젓가락을 놀리며 생각했다.


넓은 갯벌에서 슬리퍼를 찾기 위해 내가 돌아다닌 곳은 혹시 갔을 만한 곳, 익숙한 흔적이 남은 자리만 돌아다녔다. 하지만 슬리퍼는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이제 곧 바닷물이 차오를 곳에 있었다. 내가 갔으면서도 갔다고 생각하지 못한 곳이었다. 슬리퍼를 못 찾은 것은 내 생각이 닿는 곳, 내가 그어 놓은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꿈을 좇는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남이 하던 대로, 내가 아는 대로,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목표나 기회는 내 사고의 범위를 벗어나 예상치 못한 곳에 있다. 그런데도 늘 익숙한 방법과 편안한 길을 고집하며 원하는 것을 발견하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내가 그어 놓은 경계와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야 바라던 것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가리비 먹으며 별 생각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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