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서 불안한 것이 아니다

내가 받지 못했다고 서운해하는 것도 어딘가 어쭙잖은 일이다.

by느슨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른다.

몇 살이 되면 알게 될까.

마흔이 넘도록 제 속을 들여다보며 살아왔는데, 들여다볼수록 더 모르겠으니.

한심한 일이다.


과학 시간에 빛을 통과시키면 일곱 가지 색으로 갈라지던 프리즘이 있었다. 내 감정이 꼭 그 모양이다. 하나인 것 같은데 잡으려 하면 여러 갈래로 흩어지고, 이름을 붙이려 하면 어느새 다른 색이 되어 있다.


언제부터 혼자가 편하게 되었는지, 딱 잘라 말할 수가 없다.

분명한 건 지금은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즐거움이 아니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이 꼬리를 문다.

아까 그 말이 꼭 필요한 말이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어진다.

관계가 나빠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으니까 더 힘든 것이다.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미워질까 봐 거리를 두는 것.




얼마 전 언니들과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갔다.

세 자매가 시간을 어렵게 맞추어 떠난 여행이었다. 나는 설렘보다 불안이 더 컸다. 아파서 언니들 여행을 망치면 어쩌나 싶어서. 그 걱정이 어찌나 컸던지 짐을 싸는 일을 마지막 날 밤까지 미루다가, 결국 허둥지둥 필요한 것만 쑤셔 넣었다.

캐리어 대신 배낭을 들었다. 발작이라도 나면 캐리어를 끌 수 없을 테니까.

아니 나는 힘이 들 때 캐리어를 대신 밀어달라고 하는 부탁이 익숙하지 않았고, 불편했다.

병을 달고 사는 사람은 여행 하나를 떠나면서도 이런 수만 가지 계산을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면서.


코타키나발루는 내 예상과 달랐다.

여느 동남아 나라처럼 관광객을 향해 억지웃음을 들이미는 법이 없었다. 사람들이 데면데면했다. 무뚝뚝하게 제 할 일을 하고 제 갈 길을 갔다. 꾸며진 것 없이 그냥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거기 있었다.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그들이 선하다, 순박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사실 아주 단순하다.

친절하지만 과하지 않고,

미소를 짓지만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날씨는 맑았고 바다와 마주한 숙소는 넓고 깨끗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냄새가 살짝 비릿했고, 저녁마다 하늘은 아낌없이 물들었다.

무엇보다 세 자매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우리는 나이 차이가 꽤 있다. 언니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아직 말을 배우는 중이었고, 내가 교복을 입고 중학교 입학 무렵에는 언니들이 이미 제 삶을 향해 문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어릴 적에 함께 뛰어놀고 지낸 기억이라는 것이 별로 없다.

사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같은 부모 아래 자랐으면서도 서로의 삶을 이해하기엔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거기에 내 몫의 문제도 있었다. 오랫동안 내 안의 일들을 감당하느라 바빴던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여유가 넉넉하지 못했다.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가족이란 그런 관계인 것 같다.

무한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가장 깊은 상처는 서로에게서 받는다. 적어도 내 경험 속에서는 그랬다.


여행 마지막 날, 가볍게 시작된 이야기가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말들로 번지면서 결국 싸우고 말았다. 나의 이야기가 투정처럼 들린다는 언니의 말에, 내가 겪는 힘듦과 불안을 설명해 보려 했다. 그러나 모호한 감정을 말로 쏟아내니, 싸움만 커졌다.

사실 처음부터 언니들이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었던 것처럼, 삶이 치열했던 언니들에게도 나를 들여다볼 시간은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만큼의 빈자리를 남겨두고 살아왔고, 또 그것을 이해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언니들에게 이해받기를 원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말로 불편한 감정을 쏟아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항상 말로 털어내거나 울고 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곤 했으니까.

쌓여온 감정의 배출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언니들 앞에서 했고,

언니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언니들이 생각하는 이상한 아이가 아니었다. 어려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리 아프게 사는 아이도,

감정을 쓸데없이 꺼내는 아이도 아니었다.

노력해도 변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속상함,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에 대한 억울함.


시간이 지났어도 괜찮지 않아서 꺼낸 이야기였다.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해결해 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처음부터 그 누구도 이해할 수도, 해결해 줄 수도 없으니까


그저 "괜찮아" 말로 충분하다.

설령 그 순간에는 위로가 되지 않더라도,

가슴속에 자국을 남겨서 힘들 때 불현듯 떠오르곤 했다.


스무 살의 내가 서 있다.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소화되지 못한 감정들이 남아있다. 부표처럼 떠다니다 불현듯 나타난다.

그 감정은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다.


억울함이다.

억울함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다. 한순간의 일로 불쑥 솟아오르는 것도 아니다.

켜켜이 쌓여온 것들이

때로는 하염없는 눈물로, 때로는 말문이 막히는 침묵으로, 때로는 이유 없는 피로감으로 ...

그래서 누구에게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나는 유독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욕심도 많았다.

그런 아이가 아픈 뒤로 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내려놓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잘 이겨내고 있다고.

어른이 되어간다고.


그땐 몰랐다.

내려놓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가슴 한편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는 것을. 이름도 붙이지 못한 채로.


나는 중년이 되어서도 가장 행복한 순간에 문득 스무 살의 나와 마주친다.

왜 하필 행복한 순간에 그 아이가 나타나는지,

억울함이란 게 원래 그렇다.

슬플 때는 슬픔에 묻혀 잠자코 있다가, 기쁠 때 불쑥 고개를 내민다.


지금 이 행복이 내 것이 맞느냐고 묻듯이.

'아프지만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이내 또 다른 생각이 따라온다.

'갑자기 또 아파서 이 행복이 한순간에 사라지면 어떡하지……'

행복한데 힘들고, 행복한데 불안하다.

이 모순을 말로 설명하려 들면 어김없이 횡설수설이 된다.

언니들에게 듣고 싶었던 것은 결국 단순한 말 한마디였는지도 모른다.

'괜찮아.' 그것뿐이었는지도.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흔 너머를 살아온 나 역시 그런 말을 남에게 쉽게 건네지 못했다.

경청도, 이해도 박하게 쥐고 살았다.

그러니 서운해하는 것도 어딘가 어쭙잖은 일이다.



약해서 불안한 게 아니다.

불안하다는 건 그만큼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생겼다는 뜻이고, 그만큼 더 간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안이 밀물처럼 치고 들어올 때, 얼른 못 본 척하거나 딴생각으로 덮어버리는 대신 그냥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뭔가, 이 흔들림은 어디서 오는 건가 하고.

질문을 품은 채로 밥 먹고 잠들고 다시 아침을 맞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불완전한 자기 자신과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냥 내 마음이 하는 말을 한 번쯤 진지하게 듣고,

남에게 들어달라고 하기 전에 내가 들어보려고 노력하는 것.

스무 살의 나와 마주쳤을 때 더 이상 놀라지 않고 웃어줄 수 있도록,

지금 나의 모습을 사랑하려 노력한다.


오늘도 나의 억울함을 마주하며 툭툭.. 건드린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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