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야말로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마지막 자기 자신인지 모른다.
"왜 좋아해?"
누군가 물어오면 당황한다.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유가 있어야 사랑도 허락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허둥지둥 이유를 찾는다.
남들이 고개를 끄덕여 줄, 그럴듯한 이유를.
그런데 정말 좋아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짧지만 강력하다.
그 한마디 안에는, 더 묻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알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고.
이 마음의 깊이는 며칠을 설명해도 다 옮기지 못한다고.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좋다는 것.
이유를 찾는 일이 어딘가 우스워질 만큼 마음이 이미 기울어 있다는 것.
"그냥"은 무심한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솔직하고, 가장 넉넉한 마음의 말이었다.
왜 그 노래를 흥얼거리느냐 물으면 그냥.
왜 저 길로 돌아서 오느냐 물으면 그냥.
그냥에는 변명도,
계산도, 두려움도 없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냥"을 잃어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다 버렸다. 좋다는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믿게 되면서부터.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잘해야 한다고,
잘하지 못하면 좋아한다는 말 자체가 부끄러운 거라고.
언제부터인가 그런 규칙이 내 안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그 규칙에 가장 충실한 삶을 살고 있었다.
영화를 좋아했다. 극장에 갈 수 있게 된 중학교 시절부터,
내 일기장엔 온통 영화표가 붙어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단체 관람을 하고, 대부분의 극장에서 동시 상영을 하던 그 시절에
나는 할리우드 키즈였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누군가의 삶이 펼쳐질 때,
대한뉴스가 나올 때 내 심장이 남몰래 뛰던 그 순간을 사랑했다.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을 텐데.
그랬다면 해피엔딩일 텐데.
그런데 나는 그 사랑하는 영화를 직업으로 만들었고, 직업이 된 순간부터 그것은 증명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인정받아야 했고 내가 이 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야 했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평범한 자리를 부러워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누구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원했다.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가볍게, 그냥 내가 얘기할 때 건네받는 고개 끄덕임.
그 끄덕임을 받지 못할 때, 나는 내가 이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마저 의심했다. 좋아하는 마음과 잘하는 능력을 같은 것으로 여겼으니까.
그래서 땀과 노력은 나의 신앙이었다.
흔들릴 때마다 붙잡는 구절이었고, 무서울 때마다 외우는 주문이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된다.’
세상의 모든 일이 내 노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돌아온다고 믿었던 것.
충분히 애쓰면, 세상은 반드시 그에 응답할 거라고 믿었던 것.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오만이었다.
어쩌면 젊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오만.
스물여덟의 나는 간절했기에 부족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뜬금없이 일본 유학을 준비했다. 일본 영화에 깊이 빠져 있던 나는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선포했고, 유학원 문을 두드렸다.
사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매번 떨어지는 면접에서 다시 부족함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회사라는 곳에서 증명할 수 없으니, 유학생이라는 타이틀이라도 필요했다.
나에게는 소위 "증"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유학은 가지 않았다. 경제적 이유는 핑계였다. 속을 들여다보면 나는 다른 것들을 따지고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내 나이는 몇 살일지, 그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야 할 이유와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비교하며 주저하고 있었다.
"그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도피였고, 증명이었으니까.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끌리는 것들이 있다.
설명할 수 없는데 자꾸 손이 가는 것,
잘하지도 못하면서 자꾸 생각나는 것,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 조용히 기울어지는 마음.
어쩌면 그 "그냥"이야말로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마지막 자기 자신인지 모른다.
아픈 몸으로 아침을 여는 사람이 있다.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자신에게는 매번 온 힘을 끌어모아야 하는 일인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오늘 하루는 얼마나 많은 "그냥"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잘해서가 아니라, 증명해서가 아니라, 그냥 오늘 여기 있기로 했다는 결심 하나로 버텨낸 하루.
그 묵묵함이 얼마나 깊고 단단한 것인지, 쉽게 지나친다.
좋아하는 것을 그냥 좋아하면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세상은 끊임없이 이유를 대라 하고, 결과를 내보이라 하고, 증명하라 한다.
그 목소리들 사이에서 "그냥"을 지키는 일은,
가장 용감한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