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소나기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갔다.
그렇게 나의 입원 소식은 연예인 스캔들보다 빠르게 퍼졌다.
고등학교 시절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 않았던 친구들까지 병문안을 왔다. 며칠째 세수도 못 한 채 지저분한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그들은 안타깝다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한 마디씩 보태다가, 결국 어디가 아픈지 묻기 위한 서론을 길게 늘어놓았다.
위로라는 것이 사실은 궁금증이었고, 종이장처럼 가벼운 그 말들이 오히려 가슴에 상처를 냈다. 말은 덧붙여지고 부풀려져 끝내 소문이 되었다. 진위 따위는 이미 중요하지 않은.
그보다 더 슬펐던 건 따로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 작은 관심마저 사그라들며, 나는 그들의 일상에서 가장 빠르게 지워졌다.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곤 했다. 불행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을 때가 아닌 예상치 못한 시점에 찾아온다는 것을, 저 아이들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친구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다가오는 누군가의 호기심에, 끝까지 친절하게 응대할 수 있을까.
선의로 건넨 말 한마디, 걱정하는 눈빛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알까.
나쁜 마음이 아님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했다.
분명 나도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언젠가 그들에게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왔을 때,
호기심으로, 궁금함으로 던진 질문 하나가 얼마나 오래 꽂혀 있는지 알게 되는 그 순간.
그때 아주 잠깐만, 나에게 미안해해 주면 좋겠다는 것.
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많은 사람의 몸이 아파 가는 동안, 마음도 함께 조용히 무너져 가는 곳.
그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치료한다고 기대를 심어주는 곳.
치료는 이루어졌지만 치유는 오지 않았다.
지독히 더워서 환자복 속에 속옷 하나도 걸치지 않았던 스무 살 여름.
온갖 검사에 지쳐갈 즈음 '간질' 진단이 내려졌다.
처음 쓰러진 뒤 응급실에서 눈을 떴을 때 친구들이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유를, 그제야 이해했다.
진단을 받던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도록 의연하게. 스스로도 어리둥절할 만큼.
왜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
그것이 대범 함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이성과 감정이 동시에 방전된 상태였던 것 같다.
어쩌면 병에 대해 너무 몰랐던 탓이기도 했다. 호들갑을 떨 만한 실감이 없었으니, 병원 생활이 끝나면 다시 복학하면 그만이라고, 막연히 믿었다.
그러나 발작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하루, 또 하루.
하루에도 두세 번씩. 그것이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았다.
6인실 병실에서 밤에 커튼을 닫고 잠이 들면 종종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구슬프던지 짜증이 나기 보다는 소리에 스며들듯이 다시 잠이 들었다.
어느 날 새벽, 나도 잠에서 깨어나 느닷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제야였다.
화와 슬픔, 억울함과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숨이 막힐 때까지 울었다.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진정을 못하고 우는 동안 병실 사람들은 잠에서 깨었지만 참아주었다.
울고 나면 괜찮아지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렇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선 채로 잠이 다시 들곤 했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불안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운 것이.
이겨낼 힘까지는 없었으니,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면 수많은 약을 가장 먼저 삼키고, 그날의 몸을 가만히 가늠해 보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발끝부터 머리털까지 온몸의 감각을 세워 최대한 발작하지 않으려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수많은 약들은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고 잠을 재웠으며, 잠을 자는 동안에는 그나마 괜찮아졌다.
그렇게 하루를 아끼고 아끼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었다. 하루가 빠르게 갔다.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살아 있다는 안도가 그 위를 덮었다.
나는 잘 살고 싶었다. 꿈을 품고 살고 싶었다.
거창한 꿈은 아니었다. 다시 복학해서 강의실에 앉아 무사한 하루를 보내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 평범함이 내게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사람은 어리석게도, 소망 하나로 고통에 길들여진다. 그리고 홀씨 같은 작은 희망 하나를 기어이 찾아내서 하루를 이어간다. 마른땅에서도 홀씨는 꽃을 피운다고,
그렇게 믿으면서. 스스로를 취하게 하면서.
그 시절 나에게는 친구 대신 바카라이 있었다. ‘토지’가 있었다.
집 앞 도서 대여점. 한 권에 오백 원.
친구들이 강의실을 오가던 시간에, 나는 오백 원으로 하루를 샀다.
싸다면 싼 하루였다.
먼지 냄새가 배어 있던 바카라이었다. 모서리는 닳아 둥글었고, 누군가 연필로 밑줄을 그어둔 페이지도 있었다. 누가 먼저 이 문장에서 멈췄을까. 그 사람은 어느 시간에 머물러 있었을까. 그 사람에게는 어떤 고통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바카라장은 잘 넘어가지 않았다.
‘토지’의 ‘서희’는 최참판댁의 외동딸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다가 가문이 무너지자 먼 친척이 나타나 그녀를 구박했다. 빼앗기고, 쫓겨나고, 그래도 끝내 자기 땅을 되찾는 이야기이다.
‘토지’를 읽으면서 벽지 무늬를 외울 만큼 오래 방에만 있었다. 스무 권 ‘토지’가 막권에 닿을 즈음에야, 발작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몸도 조금씩 돌아오는 듯했다. 서희가 땅을 되찾고 결혼할 때쯤, 나도 겨우 복학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오백 원은, 지금 방구석에 구르는 동전 한 닢이 아니었다. 하루치의 삶이었다.
바카라을 읽다가 잠을 자고, 다시 바카라을 읽고 잠이 들었다. 그러다보면 친구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을 수 있었고 조급한 마음을 잊을 수 있었다.
나의 스무 살은 그렇게,
홀씨 하나가 꽃을 피우기를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한여름 소나기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