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의지도, 노력도, 진심도 닿지 않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첫 발작의 기억은 생경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파도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짭짤한 바다 냄새가 코를 간질였고, 나는 보이지 않는 힘과 싸우듯 허공에 양팔을 휘저으며 허우적거렸다. 누군가 몸속에서 근육을 하나씩 뽑아내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순간, 모래알처럼 온몸이 바스러지는 순간,
그다음 기억은 없다.
1996년 12월이었다.
의과대학 합격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학교 담벼락에 붙은 내 이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숨을 내쉬었다. 세상이 한 뼘쯤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몰랐다. 한 뼘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나라 마지막 달동네, 난곡.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했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나는 그게 힘든 줄 몰랐다. 당연히 누구에게나 삶에는 언덕길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햇빛이 들지 않아 늘 눅눅했어도 내 방이 있었다. 문을 닫으면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되는 그 좁은 방이, 당시의 나에게는 부족하지 않았다. 부족하다는 건 다른 것을 알아야 느끼는 감정이니까.
그 조건에서 대학에 합격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슬롯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나누는 사소한 대화 속에서였다.
어디 살았어, 학원 어디 다녔어, 하는 가벼운 물음 앞에서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제야 출발선이라는 것이 같은 곳에 그어져 있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때는 그냥, 이제야 더 넓은 운동장에서 동일한 자리에 서서 제대로 한번 해볼 수 있겠다 싶었을 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친구들과 동해로 향했다. 왜 동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가장 멀리 가고 싶었을 것이고, 서울에서 가장 먼바다가 마침 거기였던 것 같다. 그 정도의 이유였을 것이다.
여행은 떠나기 전이 가장 설레고, 영화는 막이 오르기 직전의 어둠이 가장 충만하다. 그때의 나는, 인생이 이제 막 시작된다고 믿었다.
어떤 의사가 될지, 얼마나 멀리 갈지, 얼마나 단단해질지.
민박집 뜨거운 온돌방에서 맥주 한 캔을 비우고 동해 밤바다를 바라봤다. 밤하늘은 유독 어두웠고, 그래서 별이 잘 보였다. 바다는 어둠과 경계가 없었다. 맥주 한 캔으로도 충분한 밤이었다. 나는 그날 바다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하지만 필름이 끊기듯, 깨어나 보니 응급실이었다.
119 들것에 실려 가던 기억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발버둥 치다 바지에 오줌을 쌌고, 겨울바람에 젖어 얼어붙은 바지가 엉덩이에 닿아 싸하게 차가웠다. 그때 나는 고작 맥주 한 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친구들의 당황한 표정도,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으라는 의사의 말도 흘려보냈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가 끼어든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아무 이유 없이 웃음이 날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았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출신 지역도, 부모의 경제력도, 심지어 말투까지.
친구들은 그것을 나보다 빨리 알아챘고 그들의 세계를 만들었다. 나는 그 틈새에 끼어들기 위해 공통점을 찾으려 애썼다. 맞닿는 구석이 없었다. 더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한 치수 큰 운동화를 신은 것처럼 매일 헐떡이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뒤꿈치가 까지는 줄도 모르고.
공부가 힘든 것인지, 거기 있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인지, 그때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
강의실 안에서도 어딘가 바깥에 있는 사람처럼 겉돌았다.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누군가 알아줘서 다가와 주기를 바랐다.
나는 종종 눈을 떠 보면 기억하지 못하는 장소에 쓰러져 있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건 알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을 멈춰야 한다는 것도.
그게 가장 무서웠다.
쓰러지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룸메이트가 기숙사에서 발작하는 나를 발견한 건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였다. 아마 2층 침대 계단을 오르다 떨어져 혼자 사투를 벌이는 꼴을 보았을 것이다. 친구들이 집에 연락했고, 그제야 가족들이 상황을 알게 됐다.
병원 생활은 그렇게, 여름 방학과 함께 시작됐다.
삶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마주한 스무 살 여름.
지금의 나라면 좀 더 쉽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미련 없이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섰을지도.
그런데 그때의 나는 고작 스무 살이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나이. 한 손에 쥔 것도 모자라 다른 손마저 무언가를 더 쥐려고 안간힘 쓰던 나이였다.
1997년이었다.
나라가 망한다는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졌다. 환율이 어떻고 부도가 어떻고, 나라는 내일이라도 당장 없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모두 강의실 바깥의 일이었다. 학점이 전부였다.
그것이 시간의 흔적이고, 과정이었음을 후에야 알았다.
그때는 그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에는 의지도, 노력도, 진심도 닿지 않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 시간은 대부분 가장 간절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