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세는 내야 하고, 꿈은 포기 못 하겠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보여준 생업과 꿈 사이의 거리

by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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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알람에 떠밀리듯 일어난 새벽,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마음이 거의 동시에 눈을 뜹니다. 하나는 가슴 한쪽에 접어둔,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일에 대한 마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장 이번 달 방세를 내고 밥값을 벌기 위해 오늘도 나가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 두 마음 사이에서 대충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문을 나섭니다.


하고 싶은 일과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


이 둘이 깔끔하게 일치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출근길 지하철에 실려 가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기가 진짜 가고 싶었던 목적지가 아니라 생계라는 무게에 떠밀려 내린 어느 중간 정거장에 서 있을 겁니다. 저는 그 풍경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면접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패션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앤디가 편집장 미란다 앞에 앉아, 자기는 촌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일은 잘한다고, 머리가 좋고 배우는 게 빠르다고 말하는 그 장면. 그 어색하고 절박한 면접이 저에게는 이 영화의 진짜 시작처럼 느껴집니다.


앤디는 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앤디 삭스는 패션이 좋아서 잡지사 《런웨이》에 간 사람이 아닙니다. 노스웨스턴 대학을 갓 졸업한 그녀의 꿈은 글을 쓰는 일, 진지한 기사를 쓰는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뉴욕의 언론사들은 이력서를 아무리 넣어도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인 곳이, 자기가 '허영덩어리들이나 하는 일'이라며 은근히 깔보던 패션 잡지의 말단 비서 자리였습니다.


앤디에게 《런웨이》는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였습니다. 여기서 1년만 버티면 자기가 진짜 원하던 언론사의 문이 열릴지 모른다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일은 그녀에게 꿈이 아니라 생업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꿈으로 가기 위해 잠시 견뎌야 하는 차선이었습니다.


인생에는 이런 차선의 정거장이 수없이 많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지금 당장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순간들. 글을 쓰고 싶지만 회사에 다니고,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보고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매장에서 손님을 맞는 순간들. 저는 이런 차선을 선택하는 일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방세는 매달 같은 날짜에 또박또박 찾아오고, 밥은 하루 세 번 먹어야 하니까요. 부모님 병원비를 보내야 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왜 꿈에 전부를 걸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건 너무 쉽습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남의 통장 잔고를 바카라임지지 않습니다.


차선을 고른다는 것은 도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 발을 현실에 단단히 딛은 채로 내일을 도모하겠다는, 꽤 어른스러운 결정입니다. 구름 위만 바라보다 발밑이 무너지는 대신, 일단 무너지지 않기로 한 사람의 선택입니다.


차선을 살면서 꿈을 품는다는 것


문제는 차선을 사는 일 자체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차선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자기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말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종류의 끈기를 요구합니다.


처음에는 다들 그런 계획을 세웁니다. 퇴근 후엔 꿈을 위한 시간을 내겠다고. 하지만 영화 속 앤디의 하루는 그 계획을 비웃듯이 채워집니다. 미란다의 일정, 미란다의 커피, 심지어 한밤중에도 울리는 미란다의 전화로요.


저도 그런 밤들을 압니다. 낮 동안 받은 자잘한 상처들을 그대로 안고 돌아와, 밤 열한 시가 넘어서야 겨우 바카라상 앞에 앉던 밤들. 당장 침대에 쓰러지고 싶은 무기력과, 이걸 계속한다고 정말 뭐가 되긴 할까 하는 회의가 번갈아 목을 조여오던 밤들. 꿈은 아름답지만, 꿈을 지속하는 일은 사실 대부분 체력의 문제입니다. 재능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남들은 결과만 봅니다. 바카라이 나왔는지, 시험에 붙었는지, 전시를 열었는지를 봅니다. 그러나 그 결과 뒤에는 졸음을 참으며 버틴 밤들과, 쉬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눌러 만든 토요일 오후들이 쌓여 있습니다. 차선을 살면서 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남들이 쉬는 시간에 자기 살을 조금씩 떼어내 연료로 쓰는 일에 가깝습니다.


“수백만 명이 이 자리를 원해”


《런웨이》에서 앤디가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A million girls would kill for this job.” 수많은 여자들이 이 자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거라는 뜻입니다. 이 한 문장은 그 세계의 공기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누군가에게는 죽도록 갖고 싶은 자리가, 앤디에게는 아직 숨 막히는 차선일 뿐이라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대사는 우리가 현실에서 자주 듣는 말과 닮았습니다. “그 회사 들어가려고 다들 난리인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요즘 같은 때 일자리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그 정도면 좋은 온라인 게임이지, 뭘 더 바라.” 틀린 말은 아닙니다. 누군가 간절히 원하는 자리라는 사실이, 그 자리가 귀한 기회라는 사실까지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 남들이 '그 정도면 성공이지'라고 말하는 자리에 오래 머물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립니다. 분명 잠시 거쳐 가려던 곳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어쩌면 여기가 내 자리일지도 모른다고요.


인정이라는, 가장 정교한 덫


차선이 정말 무서워지는 순간은 그곳에서 실패할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정받기 시작할 때입니다.


처음에 앤디는 《런웨이》에서 겉도는 사람이었습니다. 옷차림도, 말투도, 세계를 보는 방식도 전부 어긋났습니다. 그런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 계기는 아트 디렉터 나이절의 서늘한 충고였습니다. 앤디가 미란다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나이절은 그녀의 말을 자르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노력하는 게 아니라 징징대고 있어. 5분이면 그 자리를 간절히 원하는 다른 사람으로 너를 갈아치울 수 있어."


그 말 앞에서 앤디는 깨닫습니다. 자기가 우습게 보던 이 차선의 자리조차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자리이며, 최소한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 후 앤디는 달라집니다. 옷차림을 바꾸고, 미란다의 요구를 미리 예측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냅니다. 출간되지도 않은 《해리 포터》 원고를 쌍둥이 딸들을 위해 구해 오라는 억지 지시까지 기어이 완수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차갑고 깐깐한 미란다에게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인정을 받아냅니다.


바로 여기가 함정입니다. 미란다는 사람을 “That’s all”이라는 짧은 말로 내보내는 사람입니다. 그건 단순히 '그게 다야'가 아닙니다. 더 설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네가 어떤 기분이든 관심 없다는 통보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받는 인정이라 더 달콤합니다. 좀처럼 주지 않는 사람이 주는 인정이니까요.


저는 이것이 차선이 놓는 가장 정교한 덫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는 사람을 떠나게 하지만, 어설픈 성공은 사람을 붙잡아 둡니다. 아예 못하는 일이라면 미련 없이 그만뒀을 텐데, 어느 정도 잘하게 되어버리면 그만두기가 어려워집니다. 통장에 또박또박 꽂히는 월급의 온도와 타인의 인정이 주는 쾌감이 섞여 귓가에 속삭입니다. “여기가 네 진짜 자리야.” 최선을 위해 잠시 들른 정거장이었는데, 대합실 소파가 너무 안락해서 자기가 원래 어떤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곳을 쉽게 떠나지 못합니다. 그 인정이 따뜻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허락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이 곧 내 길의 증명은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 선택이 정답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 선택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다른 길을 택했다고 비겁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가 “차선에 안주하지 말고 당장 꿈을 좇으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모릅니다.


꿈에 모든 것을 거는 삶은 멀리서 보면 멋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저 사람은 용감하구나, 나만 너무 안전한 곳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집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건다'는 말은 낭만적인 동시에 잔인합니다. 다 걸었는데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고 좋아 보이는 것들은 사실 거의 다 어렵습니다. 좋아 보이니까 사람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니까 경쟁이 치열하고, 경쟁이 치열하니까 재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좁은 문을 통과한 한 사람 뒤에는, 같은 길을 걷다 조용히 사라진 수십, 수백 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회사를 계속 다니는 사람을 두고 꿈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퇴사하는 사람만 용감한 게 아닙니다. 버티는 사람도 용감합니다. 불안한 길로 들어서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생계를 바카라임지며 꿈을 완전히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도 똑같이 대단합니다. 인생에는 정답보다 사정이 먼저일 때가 더 많습니다.


주방 청소를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씁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내 꿈이 아니라고 해서 대충 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현재의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다른 일은 기가 막히게 잘할 거라는 환상을 믿지 않습니다.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와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저는 주방 바닥의 미끄러운 기름때를 성실히 닦고 하수구 구석의 찌꺼기까지 꼼꼼히 치울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자기 공부도 잘 해낸다고 생각합니다. 청소가 그의 꿈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바닥을 닦는 일에도 마감 시간이 있고, 순서가 있고, 바카라임이 있고, 대충 넘어가고 싶은 마음을 이기는 훈련이 있습니다.


세상의 일들은 겉모습은 제각각이어도, 그 안을 흐르는 본질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마감을 지키는 습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눈, 하기 싫은 날에도 약속한 만큼 해내는 끈기. 이것들은 어느 일에서나 똑같이 쓰이는 근육입니다. 주방 청소에서 이 근육을 단련한 사람은, 바카라상 앞에 앉아 문장을 다듬을 때도 그 힘을 그대로 가져다 씁니다.


앤디를 보세요. 패션지 비서로 일하는 것과 진지한 슬롯 기사를 쓰는 일은 전혀 무관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미란다 밑에서 분 단위로 일정을 조율하고, 위기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고, 사람의 심리를 읽어내는 동안 길러진 추진력과 독기는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가 영화 마지막에 나옵니다. 앤디가 면접을 본 신문사 편집장은, 미란다가 보낸 추천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미란다는 거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앤디는 자기가 데리고 있던 비서 중 가장 큰 실망이었지만, 그녀를 뽑지 않는다면 당신은 바보일 거라고요.


생업을 대하는 태도는 곧 삶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지금 서 있는 차선의 정거장을 엉망으로 어질러놓고 도망치듯 떠나는 사람에게, 최선의 기차는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차선은 버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곳을 제대로 통과한 사람에게, 그 시간은 다음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돌아옵니다.


앤디가 미란다의 세계에서 잃어가던 것


앤디는 분명 유능해집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다른 것들이 조금씩 밀려납니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깨지고, 연인 네이트와의 사이가 멀어지고, 한때 비웃던 그 세계의 방식이 어느새 몸에 뱁니다.


파리 패션위크가 그 분기점입니다. 미란다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오래 함께 일한 동료 나이절이 그토록 원하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립니다. 충격받은 앤디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자, 미란다는 차 안에서 담담하게 말합니다. 너도 이미 같은 일을 했다고, 에밀리에게. 그리고 덧붙입니다. 이건 네가 선택한 길이고, 이런 삶을 원한다면 그런 어려운 결정도 해야 하는 거라고요.


미란다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Everybody wants this. Everybody wants to be us.” 모두가 이걸 원하고, 모두가 우리처럼 되고 싶어 한다고요. 흥미롭게도 이 대사는 원래 '나처럼'이었던 것을 배우 메릴 스트립이 '우리처럼'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란다가 가리키는 것은 자기 한 사람이 아니라, 화려하고 강력하고 모두가 선망하는 그 세계 전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이 무서운 이유는 절반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누구나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누구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화려한 세계의 중심에 선 사람을 보면, 그 안의 피로와 상처보다 반짝이는 표면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게다가 미란다는 앤디에게 “I see a great deal of myself in you”, 너에게서 내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까지 말합니다. 칭찬처럼 들리지만, 앤디에게 그것은 경고였을 겁니다. 내가 닮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닮아가고 있다는 신호였으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차선 그 자체가 아닙니다. 차선을 선택한 뒤, 그 선택을 유지하려고 자기 자신을 계속 설득하는 일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면서 조금씩 편한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일, “다들 이렇게 산다”며 내 안의 불편한 목소리를 눌러버리는 일입니다.


앤디가 분수대에 던진 것


행사장에 도착한 차에서 내린 앤디는 미란다를 따라가지 않고 미소를 머금은 채 반대 방향으로 걷습니다. 그리고 콩코르드 광장의 분수대에서 핸드폰을 물속으로 던져버립니다.


앤디가 그날 버린 것은 휴대전화만이 아니었습니다. 미란다의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던 끈,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잃어가던 방식, 남들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원해야 할 것 같았던 삶. 그런 것들을 함께 던진 것입니다.


이건 충동이 아닙니다. 차선을 사는 내내 자기가 누구인지 잊지 않았던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결단입니다. 만약 앤디가 그 세계에 완전히 물들어 버렸다면, 분수대 앞에서 그런 선택은 애초에 떠오르지도 않았을 겁니다.


다만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분수대의 순간'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끝내 차선의 자리에 오래 머물 수도 있습니다. 그것 역시 괜찮습니다. 휴대전화를 분수대에 던지는 사람만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 남기로 한 것도, 스스로 납득한 선택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꿈을 끝내 다른 형태로 바꾸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누구보다 좋은 독자가 된 사람을, 우리는 실패했다고 부를 수 없습니다.


남에게 변론하지 않아도 됩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걷는 길에는 필연적으로 불안이 따라붙습니다. 매일 밤 '이 길이 맞을까?' 의심하는 나날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꿈이라는 무대에 서기 위해 치러야 하는, 꽤 비싼 입장료 같은 것입니다.


그 불안 위에 사람들의 말까지 얹히면 더 흔들립니다. “왜 아직도 그 일을 해?” “그 나이에 새로 시작한다고?” “그 정도면 그냥 다니는 게 낫지 않아?”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하면 되잖아.” 때로 현실적이고 때로 잔인한 이 말들에, 매번 내 인생을 변론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써 타인에게 자신의 길을 이해받고 인정받으려 아등바등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잣대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내 결정이 완벽하게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고, 누군가 혀를 찬다고 해서 내 결정이 실패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자꾸 외부에서 도장을 받고 싶어 합니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네 선택이 맞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선택은 결국 자기 안에서 납득되어야 합니다.


완벽하게 확신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렇게까지 단단하지 않습니다. 다만 흔들리더라도, 적어도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스스로에게만큼은 거짓말하지 않는 정도면 됩니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런웨이》를 지나는 중입니다


앤디가 미란다의 세계를 통과해 온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런웨이》를 지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회사가, 누군가에게는 작은 가게가, 누군가에게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육아와 생계 그 자체가 그런 곳일 겁니다. 그곳은 꿈의 장소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며 우리는 배웁니다. 내가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무엇은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은지, 어떤 인정에 흔들리고 어떤 모욕에 무너지는지, 그리고 끝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를요.


그러니 차선을 살고 있는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신은 비겁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닐 수 있습니다. 꿈이 없어서 현실을 택한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저 오늘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내일의 가능성을 아주 작게나마 남겨두기 위해 버티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묵묵히 밥벌이를 해낸 당신의 굽은 등은, 그 자체로 충분히 단단합니다.


다만 두 가지만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차선에 머물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인정받을 수는 있지만, 그 인정이 내 마음의 방향을 대신 정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꿈만으로는 방세를 낼 수 없습니다. 슬프지만 사실입니다. 그러나 방세를 내며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도 꿈은 자랍니다. 조금 느리게, 조금 볼품없게, 조금 자주 흔들리면서도 말입니다. 낮에는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되찾는 것.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그것 역시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그 작은 불씨는 좀처럼 완전히 꺼지지 않습니다. 멀어졌다가도, 어느 날 문득 다시 말을 겁니다. “나 아직 여기 있다”고요.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다시 바카라상 앞에 앉는 일, 한 문장을 쓰는 일, 오늘 맡은 일을 제대로 끝내는 일, 그리고 밤에 혼자 누웠을 때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차선의 시간이 있었습니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당신은 지금 어느 정거장에 서서 어떤 기차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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