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의 나라는 누가 대신 다스렸나?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을 보는데 자꾸 마음에 걸리는 설정이 있습니다.
극 중 이안대군은 형인 선종이 일찍 승하한 뒤, 어린 조카를 대신해 섭정을 맡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왕실의 차남이자 작은아버지인 그가 어린 임금을 대신해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는 구도. 듣기에는 그럴듯합니다. 잘생긴 작은아버지가 어린 조카 대신 나라를 보살핀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러나 조선의 사료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춰본 사람이라면, 이 설정 앞에서 잠시 멈칫하게 됩니다. 조선에서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섭정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단 한 번도 ‘대군’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발 뒤에 앉은 사람은 거의 언제나 그 왕의 할머니이거나 어머니, 즉 대왕대비이거나 왕대비였습니다.
이게 그저 자질구레한 고증 문제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설정한 줄 안에는, 우리가 어느 사이엔가 잊어버린, 혹은 은근히 지우고 싶어 하는 한 가지 풍경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조선의 기본 공식:
왕이 어리면, 발이 내려옵니다
조선왕조에서 왕이 승하했을 때 후사가 어리면, 정치 시스템은 거의 기계적으로 한 가지 답을 내놓았습니다.
수렴청정(垂簾聽政).
말 그대로 발(簾)을 드리우고(垂) 정사를 듣는다(聽政)는 뜻입니다. 어린 왕 뒤에 발을 한 겹 드리우고, 그 너머에서 가장 어른인 여성이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결정을 내리는 제도였습니다. 발이라는 한 겹의 천이 매우 상징적이었습니다. 왕은 보이지만, 그 뒤의 그녀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결정은 그녀가 내린다.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은 명확하게 서열화되어 있었습니다.
첫째는 대왕대비(大王大妃)입니다. 살아 있는 가장 윗대 왕비, 그러니까 어린 왕의 할머니나 증조할머니뻘입니다. 둘째는 왕대비(王大妃)입니다. 보통은 어린 왕의 친어머니, 즉 직전 왕의 왕비입니다. 셋째는 왕비 본인입니다. 살아 있는 가장 높은 어른 한 분이 발 뒤에 앉습니다.
수렴청정은 왕이 대략 열다섯 살 전후로 성인이 되면 거두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의식적으로 발을 걷어 올리는 절차를 ‘철렴(撤簾)’이라 했고, 이때부터 왕이 직접 정사를 보는 친정(親政)이 시작됩니다.
여기까지가 조선의 기본 공식입니다. 단순합니다.
어린 왕 뒤에는 발,
발 뒤에는 어머니 혹은 할머니.
결코 작은아버지는 아닙니다.
왜 하필 어머니였을까요?
왜 조선은 굳이 여성에게, 그것도 왕실의 가장 어른인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그 자리를 맡겼을까요? 단순히 모성애를 신뢰해서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매우 정교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첫째, 왕실 최고 어른의 권위입니다. 유교 슬롯에서 효(孝)는 절대 가치였고, 그 효의 대상인 어른의 권위는 어떤 정치적 도전도 함부로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같은 명령이라도 신하가 내리면 반대 세력이 즉시 결집하지만, 대비의 입에서 나오면 함부로 반박하기 어려웠습니다. 효의 논리가 권력의 갑옷이 되어준 셈입니다.
둘째, 왕위 찬탈 위험의 회피입니다. 이게 가장 결정적입니다. 만약 어린 왕의 작은아버지나 큰아버지, 즉 다른 대군이 섭정을 맡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역사가 이미 알려주고 있습니다.
대군은 잠재적인 왕위 계승 후보자입니다. 만약 대군이 섭정을 맡게 되면, 신하들의 권력은 자연스럽게 왕이 아닌 대군에게 쏠리게 됩니다. 이는 어린 왕의 폐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따라서 조선은 '왕위 계승권이 없는 여성'에게 권력을 잠시 맡김으로써 왕실의 정통성을 수호하려 했던 것입니다.
세종의 손자 단종(12세 즉위)이 그랬습니다. 단종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정치에 깊숙이 개입했고, 결국 계유정난(1453)을 일으켜 어린 조카의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조선 왕실은 이 사건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대군에게 정치권력을 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가장 비싼 수업료로 배운 것입니다.
이후 경국대전을 비롯한 조선의 법체계는 종친(왕의 친척 남성)의 정치 참여를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종친은 높은 품계와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대신, 실질적인 관직에 오르거나 국정에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안대군'이 섭정을 한다는 설정은 조선의 건국이념과 법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 됩니다. 만약 실제 조선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대간들이 목숨을 걸고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며 대궐 앞을 가득 메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군과 왕자군에게는 정치 참여 자체가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사실상 한직에 머무르도록 제도화되었고, 학문이나 예술에 몰두하는 것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식이었습니다.
셋째, 여성 섭정의 구조적 한계가 오히려 정치적 안정 장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비는 종신토록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발 뒤에 앉아 있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친정으로 권력을 돌려줄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니 왕실 입장에서는 가장 안전한 선택지였습니다. 권력은 일시적으로 위임되지만, 왕통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발 뒤의 그녀는, 그래서 조선이라는 가부장 시스템이 가장 신뢰한 안전장치였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입니다.
조선이 기억하는 여섯 명의 수렴청정
조선왕조 500년에 걸쳐 공식적으로 수렴청정한 인물은 단 여섯 명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발 뒤에 앉은 분은 정희왕후 윤씨였습니다. 세조의 왕비이자 성종의 할머니로, 13세에 즉위한 성종을 대신해 약 7년간 청정했습니다. 조선 최초의 공식 수렴청정이며, 후대 모든 사례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7년 뒤 성종이 스무 살이 되자 깨끗하게 철렴했고, 친정 이양은 비교적 순조로웠습니다. 이상적인 수렴청정의 모습입니다.
가장 강력했던 분은 문정왕후 윤씨였습니다. 명종이 12세에 즉위하자 친어머니로서 8년간 수렴청정했고, 오빠 윤원형을 앞세워 을사사화를 주도하며 정적을 숙청했습니다. 철렴 이후에도 명종이 약체였던 탓에 사실상 그녀가 세상을 떠나는 1565년까지 실질적 권력자로 군림했습니다. 발은 거두었지만, 권력은 거두지 않은 셈입니다.
가장 정치적이었던 분은 정순왕후 김씨였습니다.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한 1800년, 11세였던 순조를 대신해 청정에 나섰고, 즉시 신유박해(1801)를 단행해 천주교 신자 300여 명을 처형했습니다. 정조가 일군 개혁의 흔적을 거의 다 뒤집은 반동적 섭정이었지만, 어쨌든 모든 결정은 그녀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가장 짧게 발 뒤에 머무른 분은 인순왕후 심씨였습니다.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한 1567년, 16세였던 방계 출신 선조가 즉위했고, 명종의 왕비였던 그녀가 약 8개월간 수렴청정했습니다. 선조가 비교적 나이가 있었고 본인도 정치에 욕심이 없었던 탓에 단기간에 철렴한, 가장 조용한 수렴청정 사례였습니다. 어쩌면 가장 모범적인 형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오래 발 뒤에 머무른 분은 순원왕후 김씨였습니다. 헌종(8세)과 철종(19세) 두 임금에 걸쳐 두 번 수렴청정한 유일한 인물입니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정점에 서 있던 그녀의 두 번째 청정은 사실상 친정의 권력 연장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강화도에서 농사짓다 끌려온 19세의 철종은, 사실상 발 뒤의 그녀와 그녀의 친정이 만든 ‘선택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신정왕후 조씨였습니다. 1863년 고종이 12세에 즉위하자 발 뒤에 앉았지만, 이때만큼은 사정이 조금 묘했습니다. 그녀가 발 뒤에서 결정을 내리는 형식 옆에, 고종의 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실질적 권력을 장악하는 변칙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어디까지나 ‘왕의 생부’라는 자격으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가 대군 신분으로 섭정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살아 있는 왕의 아버지였고, 그 자격조차도 신정왕후의 명목적 수렴청정 뒤에 숨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조선이 마지막까지 지키려 한 형식이었습니다. 대군이 발 뒤에 앉는 일은, 끝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조선의 이 원칙이 동아시아 변방의 특수한 관습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 군주가 즉위한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비슷한 답이 도출되었습니다.
중국의 서태후가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어린 동치제(6세 즉위)와 그 뒤를 이은 광서제(4세 즉위)를 위해 사실상 47년간 발 뒤에 앉아 있던 그녀는 청나라 말기를 통째로 좌우했습니다. 조선의 수렴청정과 거의 동일한 제도이지만, 강도와 기간 면에서 훨씬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같습니다. 어린 황제의 어머니나 할머니, 즉 황태후가 발 뒤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도 다섯 살에 즉위했습니다. 발 뒤에 앉은 사람은 어머니 안 도트리슈, 그리고 그녀를 보좌한 재상 마자랭 추기경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명목과 실질을 동시에 쥐었고, 작은아버지나 형제는 정치 무대에 끼어들 자리가 없었습니다. 어린 루이 13세 때에도 마찬가지로 어머니 마리 드 메디치가 섭정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 13세기의 성왕(聖王) 루이 9세 때에도 어머니 카스티야의 블랑슈가 섭정에 나섰습니다. 프랑스 왕실에서 미성년 왕의 곁을 지킨 사람은 늘 ‘모후’였습니다.
일본 헤이안 시대의 섭관정치(攝關政治)는 약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린 천황 대신 외척, 즉 후지와라 가문이 섭정과 관백 자리를 독점했습니다. 자기 딸을 황후로 들여보내고, 그 딸이 낳은 외손자를 어린 천황으로 옹립한 뒤, 외할아버지가 섭정에 앉는 구조였습니다. 여기서도 발 뒤의 권력은 ‘어머니의 친정’, 즉 모계를 통한 권력이었습니다. 천황의 작은아버지가 섭정을 잡은 사례는 없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에는 ‘여인들의 술탄국(Sultanate of Women)’이라 불린 시기가 있었습니다. 16~17세기 약 130년에 걸쳐, 어린 술탄을 대신해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이 실질적 정치를 운영했습니다. 쾨셈 술탄과 투르한 하티제 같은 인물은 아예 두 세대에 걸쳐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도 어린 군주의 곁을 지킨 것은 결국 어머니였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이레네는 더 극단적인 예입니다.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의 섭정으로 시작했다가, 결국 아들을 폐위시키고 자신이 직접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유럽 최초의 여성 단독 황제 중 한 사람이었지요. 어머니가 권력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었던 셈입니다.
러시아의 이반 4세, 흔히 ‘뇌제(雷帝)’라 불리는 폭군의 어린 시절도 비슷합니다. 그가 세 살에 즉위했을 때 어머니 옐레나 글린스카야가 섭정을 맡았고, 어머니가 독살당한 뒤에는 귀족(보야르)들이 섭정 위원회를 꾸렸습니다. 그러나 어린 이반은 보야르들의 학대와 권력 다툼 속에서 자랐고, 성인이 된 뒤 그 트라우마를 공포정치로 풀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부재가, 한 폭군을 만들어낸 결정적 변수였다고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잉글랜드의 헨리 6세(생후 9개월에 즉위)는 작은아버지들이 섭정을 맡은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을까요. 베드퍼드 공작과 글로스터 공작 두 작은아버지의 권력 다툼은 곧 귀족들의 분열로 번졌고, 결국 장미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헨리 6세 본인도 무능한 왕으로 남았고, 두 번 폐위된 끝에 살해당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섭정을 한 결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언제나 비극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명이 그 길을 의식적으로 피했습니다. 누구도 사촌형제의 권력욕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안대군의 발은 누가 깐 걸까요?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오릅니다.
〈21세기 대군부인〉 속 이안대군은 어떻게 발 뒤에 앉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 정확히는 ─ 그가 발 앞에 나서서 섭정을 맡는 동안, 어린 임금의 어머니인 대비 윤씨는 어디에 있나요?
극의 설정상 대비 윤씨는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명문 윤씨 가문 출신이고, 그 친정 또한 강력합니다. 조선의 어떤 시대에 대입해 봐도, 살아 있는 친어머니가 발 뒤에 앉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아니, 발 뒤에 앉지 않는 쪽이 비정상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는 어머니 대비가 아닌, 작은아버지 대군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의 정치적 어색함에 대해, 극은 그다지 깊이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물론 픽션이고, 대체역사극이며, 무엇보다 로맨스 드라마입니다. 잘생긴 변우석에게 권력 한 자락을 쥐여줘야 이야기가 굴러갑니다. 저도 그 이유 자체에는 별 불만이 없습니다. 사극의 자유를 너무 빡빡하게 단속하면 결국 모든 드라마가 실록 낭독회가 되어버리니까요.
하지만 조금만 더 조선의 정치 문법을 섬세하게 빌려왔다면, 이 갈등은 훨씬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대비가 수렴청정하고, 이안대군이 그 권력의 그늘에서 움직였다면 어땠을까요? 혹은 이안대군의 섭정이 애초에 비정상적인 권력 장악으로 그려졌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우리는 한 남자의 멜로뿐 아니라, 왕권과 모성, 제도와 야망이 부딪히는 더 날카로운 궁중극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발 뒤의 그녀가 사라지면,
누가 사라지는 걸까요?
조선의 수렴청정은 사실 묘한 제도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성에게 정치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 가부장 슬롯에서, 한편으로는 유교 가부장제의 최정점인 효(孝)의 논리를 빌려 여성에게 최고 권력을 위임한 제도였습니다.
그녀들이 휘두른 권력은 종종 잔혹했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으며, 자기 친정의 영달을 위해 사용된 적도 많습니다. 미화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한국 역사에서 잊혀서는 안 되는 중요한 풍경입니다.
문정왕후가 발 뒤에서 어전회의를 주재할 때, 정희왕후가 어린 손자에게 정치를 가르칠 때, 신정왕후가 흥선대원군에게 권력을 위임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 ─ 그 순간 조선이라는 가부장 국가의 정점에는 여성이 앉아 있었습니다. 발 뒤일지언정, 가장 높은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대군부인〉은 그 자리를 슬그머니 비웠습니다. 그리고 잘생긴 작은아버지로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이게 비단 이 드라마 하나만의 문제일까요? 사극에서 어린 왕이 등장할 때 우리가 가장 자주 보는 풍경은, 권신과 외척 사이에서 휘둘리는 가련한 왕의 모습입니다. 발 뒤에서 결정을 내리는 대비의 모습은, 어쩐지 점점 화면에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비는 대개 음험한 음모를 꾸미거나 며느리를 괴롭히는 캐릭터로 축소되고, 정치적 결정권을 가진 인물로는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극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흡수하는 역사 감각 속에서, 발 뒤의 여인들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료를 펼쳐보면 그녀들은 분명히 거기에 있었습니다. 발 뒤일망정, 결정의 자리에.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사극 한 편의 고증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 실재했던 한 종류의 여성 권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발 뒤의 그녀들은, 화려한 여전사도 아니고 진보적 개혁가도 아니었습니다. 가부장 슬롯의 가장 보수적인 자리에 앉아 가장 보수적인 명분으로 권력을 휘둘렀던, 매우 현실적인 정치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잊혀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옛 여인’의 이미지 말고 분명히 한 종류의 다른 여성이 존재했음을 증명해 주는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섭정은 차발은 누가 내리고,
누가 거두는가에 대하여
만약 조선의 원칙대로라면 ─ 발 뒤에 앉아 어전회의를 주재해야 할 사람은 대비윤씨입니다. 작은아버지 이안대군이 아니라 그녀의 한 마디면 이안대군의 섭정은 언제든 거두어질 수 있어야 하고, 그 균형 속에서 어린 임금은 비로소 보호받았어야 했습니다.
드라마가 그녀를 발 뒤가 아니라 다른 자리에 앉힌 데에는 여러 작가적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발 뒤에 앉으면 작은아버지의 권력 서사가 살아나지 않습니다.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권력의 한복판에서 흔들리는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로맨스의 정치적 무대 장치는, 결국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을 위해 비워져야 합니다. 알 만한 일입니다.
다만 한 번쯤은 의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 어색함을 거의 느끼지 못한 이유, 작은아버지가 섭정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이유, 그리고 대비라는 자리가 그렇게 쉽게 비워져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발 뒤의 여인들을 잊어가는 데에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요?
당신의 기억 속 발 뒤에는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조선의 어린 왕 옆에 서 있던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작은아버지였습니까?
어머니였습니까?
아니면 할머니였습니까?
그리고 사극 속에서 가장 자주 마주친 대비의 얼굴은, 결정을 내리는 권력자였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흑막이거나 며느리를 괴롭히는 시어머니였습니까?
조선의 발 뒤에 앉았던 여섯 명의 이름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정희왕후, 문정왕후, 인순왕후, 정순왕후, 순원왕후, 신정왕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은 누군가가 드리워야 비로소 드리워지고, 누군가가 거두어야 비로소 거두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거두어버린 그 발 뒤에는, 정말로 아무도 없을까요?
발 뒤의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오늘 밤은 잠시 그녀의 이름을 다시 적어보는 시간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