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양재천 위의 그 남자는 저주받은 88? 그 옆의 나는 비운의 89!
[달리기 30일째, 달리던 중 돌에걸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11월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날이었다. 지난주에 꽃 시장에 가서 사 온 작약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싱그러워서 기분이 좋은 아침이었다. 물병에 신선한 물을 갈아주고, 커피를내렸다. 오늘은 나에게 어떤 음식을 대접할까 생각하던 차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저번 주에 사온 꽃이 아직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예쁘다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이야기를 전했다. 12월이 코앞이라 날이 쌀쌀하니 따뜻하게 지내라는 엄마의 걱정 섞인여러 번의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날 낮에 ‘슬라이딩 도어즈’라는 꽤 오래된 영화를 보았다.
기네스 팰트로의 눈부신 미모와 함께 나에게 여러 생각을 남긴 영화였다.
이 영화는 런던의 홍보회사에 다니는 여자 주인공 헬렌이 회사에서 해고된 날, 지하철을타느냐, 놓치느냐의 순간으로 두 개의 평행한 인생이 동시에 펼쳐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쪽 세계에서는 헬렌이 지하철을 타고 일찍 집에 돌아가 남자친구 제리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충격을 받은 그녀는 그를 떠나 머리를 자르고, 새로운 일과 새로운 연인 제임스를 만나며 점점 자존감을 회복한다.
반면 다른 세계의 헬렌은 지하철을 놓치면서 남자친구의 외도를 모른 채 제리와 계속 함께 지내는데, 제리는 여전히 거짓말을 이어가고 헬렌은 점점 삶의 활력을 잃어간다.
결국 두 세계는 동시에 교차하며 진행되다가, 첫 번째 세계의 헬렌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두 번째 세계의 헬렌은 병원에서 깨어나 제리의 거짓을 알게 되어 관계를 정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병원 복도를 나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제임스를 다시 마주치며, 인생의 또 다른 ‘문’이 열릴 가능성을 암시한다.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정말 의아했다.
‘이러나 저러나 힘들 사람은 계속 힘들다는 거야? 무슨 이런 영화를 만들었지? 영화가 희망을 줘야지. 어차피 망한 여자는 무엇을 선택해도 망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영화를 모두 본 후, 나는 지금 내 상황이 납득이 됐다.
지하철을 탄 헬렌과 놓친 헬렌의 삶에는 둘 다 아픔과 어려움이 있었다. 더 나은 선택은없다는 듯,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각자가 선택한 삶 속에서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살아가느냐가 결말을 바꿀 수도 있다는생각이 들었다.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떤 해석을 할지, 감독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는.
다만, 그때의 나는 지난 몇 년간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 내가 어떤 선택을 해서 일어난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겪어야 했던 시간이었다는 납득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쩌면 가끔은 타야 하는 지하철을 놓치는 일이 더 나은 것일 수도 있겠다. 조금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고 다음 지하철을 타는 것이 더 좋은 결말을 줄 수도 있구나.’
[달리기 30일째]
엄마의 당부처럼, 정말 한결 쌀쌀해진 날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스트레칭을 하고 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내 머릿속에는 낮에 본 ‘슬라이딩 도어즈’의 장면이 몽글몽글 떠다녔다.
나는 어떤 자극이나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면 그것들을 곱씹고,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하는 버릇이 있다. 그 과정은 꽤 긴 시간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오로지 나 혼자만의 작업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받아들일 것들을 선별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모든 걸 다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내 방식대로 곱씹기에는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간 정말 미친 여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받아들이는 폭을 조금씩 더 넓히려고 노력중이다.
영화 생각에 너무 몰입해서일까. 나는 앞의 돌을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졌다. 오른쪽 무릎에 상처가 나고 피가 맺혔다. 모래 바닥에 쓸린 무릎은 꽤 아팠다.
‘발목도, 무릎도 오른쪽이 말썽인데 상처도 꼭 오른쪽에 나네. 이런—’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처음 보는남자였다.
“괜찮으세요? 저도 뒤에서 뛰어오다가 봤어요. 많이 다치셨어요?”
오래 달린 건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숨을 가쁘게 쉬던 그 남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넘어진 나를 향해 내민 그의 손을 보며 순간 생각했다.
‘나 지금 헬렌 된 거야? 이 손 잡고, 안 잡고에 따라 나도 교통사고 나는 거 아니야?’
‘내가 미쳤구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며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제가 다른 생각하다가 앞에 있는 돌을 못 봤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옷에 묻은 흙을 털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넘어진 것이 창피해서 묻지도 않은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고 멋쩍게 웃었다.
“그러실 수 있죠. 조심하세요. 가끔 큰 돌도 있고 해서요.”
“네, 감사합니다.”
“매일 이 시간에 여기 뛰시죠? 몇 번 봤어요.”
“네? 저를요? 아… 네, 맞아요. 한 달 정도 됐어요.”
“오늘은 더 못 달리실 것 같은데, 저기 벤치에 잠시 앉으실래요? 부축해 드릴까요?”
“넘어지면서 근육이 놀랐는지 오늘은 더 못 뛰겠네요. 부축 받을 정도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벤치에 잠시 앉았다.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누군가와 함께 있으니 어색했다. 게다가 처음 보는 남자였으니 오죽했을까.
“저를 보셨어요?”
“네, 저도 퇴근하고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나오거든요. 매일 계시던데요? 저도 오늘은 다 뛰었어요. 조금 쉬다가 가도 되죠?”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무릎에 피도 멈춰야 하니 잠시 앉아 있다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는 오랫동안 달린 사람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네, 감사해요. 아까 솔직히 혼자 일어나기 조금 창피했어요. 저를 구해주셨네요.”
“창피할 거 없는데요. 뛰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넘어지면 좀 부끄럽긴 하죠? 저는 1988년생 박진호예요. 은행 다녀요. 이상한 사람 아니라는 말 하고 싶어서요. 혹시 걱정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갑작스러운 자기소개에 나도 내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네, 그러시군요. 저도 비슷한 나이예요. 이 근처로 이사 온 지 한 달 됐어요.”
“아! 비슷한 나이에요? 이런, 비운의 동지를 만났네요. 훨씬 어려 보여서 비슷한 또래인지 몰랐어요.”
“뭐, 어두워서 그렇겠죠.”
내 말에 호탕하게 웃던 88년생 진호 씨는 말을 이었다.
“같은 세대라니 급 동질감이 드네요. 솔직히 저주받은 88년생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세대한테는 뛰는 거 말고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기댈 데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이렇게 몸이라도 혹사해야 뭘 하는 것 같달까.”
나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역시 지금 뛰는 것 말고는 답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제가 태어난 해에 88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잖아요. 한국은 최고의 황금기를 향해 가던 시절에 태어나서 남들처럼 다들 대학 가고, 좋은 온라인 게임 들어가고, 이제 부모님처럼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보려 하니까 세상이 갑자기 난이도 ‘최상 하드 모드’로 바뀌었어요. 저희 아버지 세대가 샐러리맨 월급 모아 내 집 마련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서울 변두리 집값도 ‘0’이 하나 더 붙어버려서 감히 쳐다볼 수도 없잖아요.”
“그러게요. 출산율에서는 ‘0’이 하나 빠져서 줄고 있으니까요. 집값이랑 출산율이 반비례네요.”
“그러니까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가 가장 어려운 미션이 됐어요. 매일매일 미션에 대한 실패를 증명하며 사는 기분입니다. 달리는 것 말고는, 이 시대의 무게를 견딜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정말 달리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주받은 88년생 옆에 비운의 89년생이 앉아 있었다. 양재천 위를 달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도, 각자의 무게와 매일의 선택이 함께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네요. 진호 씨 말대로 집값은 폭등하고 있고, 미혼율은 기록적으로 낮아지고요. 미래가 선명하게 보이진 않네요.”
그렇게 비운의 동지 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덕분에 창피하지 않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는 인사를 다시 한번 전하고, 그는 우울한 이야기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금세 피딱지가 앉은 오른쪽 무릎과 함께, 조금은 씁쓸한 마음으로 천천히 집까지 걸어왔다.
“그 영화를 본 날 마침 나는 넘어졌고, 88년생 진호 씨를 만났어요. 진호 씨는 건강하고 똑똑한 사람 같았거든요. 그런데 왜인지 조금 무기력한 느낌이었어요. 어쩌면 매일 출근길 지하철에 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제 모습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그날 밤,
이런 일기를 썼어요.
선사시대에는 맹수에게 물려 죽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고,
고려시대에는 매일 전쟁이 일어났으며,
조선시대 임금들도 평균 수명이 47세에 불과했으니 백성들의 삶은 어땠을까.
하루하루가 기근과 역병의 공포였을 테지.
집값의 공포가 기근과 역병을 이길 수 있을까?
아니면 맹수의 공격보다 더 두려울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고통 없이 지나간 시대는 없었다.
언제나 그 시대만의 결핍과 고통이 있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싶다.
동시간대의 두 명의 헬렌에게도 각자의 가혹한 시간이 있었던 것처럼.
고통과 아픔은 어쩌면 생각보다 공평할지도 모르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겠죠?
그리고 지나가야 할 고통도 기필코 지나가겠고요.
그것들은 대부분 시대의 아픔이지 우리의 탓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그 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디로 나아갈지는 스스로가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두 명의 헬렌과 저주받은 88년생 진호 씨, 그리고 비운의 89년생 나까지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