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몇 초

by납작콩

영화 '시월애'에서 은주(전지현)와 성현(이정재)은 바닷가 앞에 서 있던 집 '일 마레'(IL MARE)앞의 우체통을 통해 사랑을 키워간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은 서로 2년의 차이가 난다. 은주는 성현보다 2년 앞선 시간을 살고 있다.


시간의 간격이 있는 남녀의 사랑은 종종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 최근 드라마 '폭군의 셰프'는 조선 시대의 왕과 현대를 살아가는 셰프의 사랑을 그린다. 무려 6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는다. 그런 이야기를 보다 보면 오히려 시월애의 2년은 참 짧게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도 두 사람은 제주도의 바닷가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은주는 그곳에서 일주일을 기다리고, 성현은 같은 장소에서 2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2년 정도라면 충분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2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사람의 마음도, 관계도, 운명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내가 '고작 2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은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낼 만큼 긴 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하루도 그렇다.


'고작 하루'라고 말하며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기 쉬운 시간이지만, 하루는 종종 예상하지 못한 장면 하나를 마음속 깊이 남겨 놓는다.


오늘은 미용실 예약이 있는 날이었다.

미용실은 백화점 옆 쇼핑몰에 있었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쳐 공간은 환했고, 머리를 감는 자리 옆으로는 커다란 유리창이 나 있어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파마를 마치고 미용사님이 예쁘게 드라이까지 해 주신 머리를 보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백화점을 지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려면 늘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1층에는 언제나 향수 매장 직원이 시향지를 건네준다. 그 향기를 맡은 뒤 가방 옆 주머니에 넣어 두면 한동안 가방 안이 은은한 향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오늘은 향수 대신 핸드크림 매장 직원이 손에 크림을 발라 보라며 권했다. 향이 참 좋았다. 마침 가지고 있던 핸드크림을 다 써 가던 참이기도 했고, 거의 90% 할인해 5천 원대에 살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몇 가지 향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매장에 들어왔다. 아이는 향이 나는 오일을 맡아 보려고 병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병을 기울이는 바람에 오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직원은 놀라며 급히 휴지를 가져와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어, 그거 그렇게 들면 안 되는데..."

아이의 엄마도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튄 오일 몇 방울이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의 운동화에도 묻었다.

아주머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거 OO 운동화예요. 오일 지우다가 운동화를 못 신게 될 수도 있어요. 참 짜증 나네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주머니는 세탁소에 전화를 걸었다.

"운동화 세탁하려는데 누가 오일을 쏟았거든요. 얼마 정도 드나요?"

스피커폰으로 들려오는 세탁소 사장님의 대답은 기본 세탁비 4만 원에 오일 제거 비용 2만 원이 추가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이의 어머니는 6만 원을 변상했다.

그동안 아이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엄마의 뒤에 숨어 아주머니의 눈치만 살폈고, 직원은 바닥만 묵묵히 닦고 있었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 한마디를 보탰다가는 더 큰 다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그 장면이 떠올랐다.

아주머니가 틀렸다고 쉽게 말할 수도 없다. 아끼던 운동화였을 수도 있고, 속상했을 수도 있다. 아이의 엄마 역시 변상해야 할 바카라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운동화가 아니라 아이의 표정이었다.

'내가 잘못했구나.'

그 생각 하나로 잔뜩 작아졌을 그 얼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영화 시월애에서는 2년이라는 시간이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꾸었다.


오늘 백화점에서는 불과 몇 초가 한 아이의 하루를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고작 2년', '고작 하루', '고작 몇 초'라고 말한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 '고작' 속에서 방향을 바꾼다.

사람과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도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누군가는 오래 남을 상처를 얻는다. 그래서 시간의 무게는 길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안에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마음을 건넸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이가 오래 기억하는 것이 오일 몇 방울이 아니라,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어른의 얼굴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 속 2년이 사랑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듯, 우리의 몇 초도 누군가에게는 평생 기억될 시간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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