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26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바글거리던 인파는 어느새 팔라스 데 레이를 향해 옮겨갔는지 한산했다. 대신 숙소 맞은편 잔디밭 벤치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오늘 아침에 다시 만나기로 인사한 독일인 친구 L과 나보다 조금 더 늦게 따라오던 K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모두 체크인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러 잔디밭으로 향했다. 독일인 친구 L은 자신이 마지막 체크인한 사람이었다면서 정말 7명만 받을 줄 몰랐는데 천만다행이라고 말을 꺼냈다. 당일 예약은 불가능하고 선착순으로만 들어올 수 있다는 게 참 기부제 알베르게다웠다. 체크인을 할 때 기부함이 어디에 있는지도 따로 알려주지 않아 하마터면 무전취식을 할뻔했다. 그라뇽에서 아침에 내고 출발한다는 것을 깜빡하고 공짜로 숙식을 해결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나에게는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라면 체크인을 할 때 친절하게 기부함이 있는 곳까지 나를 안내했을 테지만 나의 작은 보탬 없이도 얼마든지 선의를 베풀 것이라는 미소로 나를 반겨준 것 또한 기부제 알베르게다웠다.
기부제 알베르게의 정점은 뭐니 뭐니 해도 매주 바뀌는 호스트일 테다. 그라뇽에서도 그랬고, 베르시아노스에서도 그랬다. 아르헨티나, 캐나다, 스페인 각지에서 온 호스트들은 각자의 방식과 문화대로 세계 이곳저곳에서 온 사람들을 환대했다. 이곳 역시 여느곳과 마찬가지로 세계 각지에서 온 호스트로 운영되고 있었다. 입구에서 처음 나를 반긴 아저씨는 스페인 사람이었는데, 이번 호스트 차수의 리더를 맡고 있는 듯했다. 유치원 또래의 여자아이와 나의 체크인을 담당해 주었던 초등학생 남자아이, 그리고 아내까지 4인 가족이 호스트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스페인 다른 지역에서 온 여자와 브라질에서 온 부부와 아이들까지 해서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호스트로 봉사하고 있었다. 손님은 일곱 명뿐인데, 호스트가 열명이 넘는 곳이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저녁 시간까지는 꽤 시간이 남아 K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열려있는 가까운 식당으로 향해 걸어가다가 K가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같이 걸었다는 한국인 J를 만났다. J는 마침 점심을 먹고 싶었던 찰나에 우리를 마주쳤다며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다. J는 팔라스 데 레이까지 가는 길인데, 자신과 함께 걷는 동행들이 모두 속도가 빨라 혼자 뒤처진 거란다. 이제 순례길이 끝나가며 사람들을 사귀기 더 어려워졌는데, 새로운 사람을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식당에 가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다들 배낭하나 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앉아있는 것을 보면 마치 순례객이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오늘 아침 숙소에서 다음 숙소로 짐을 부치고 출발했을 것이 뻔하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이 많은 사람이 이 시간에 점심을 먹으러 나왔을 리가 없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 마을의 알베르게는 내가 묵는 곳 하나뿐이니 이들은 아마도 팔라스 데 레이로 가는 중일 것이다. 순례길 위 식당에서 이 늦은 시간에 사람으로 북적이는 건 대도시가 아니고서야 흔치 않은 풍경이다. 아마도 사리아를 지난 후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난 탓일 것이다. 북적거리는 식당을 보자니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좋으면서도 그동안 조용히 사색에 잠기며 순례길에 오른 시간들이 그립기도 했다.
다들 크게 배가 고프지 않아 음식을 조금씩 나눠먹자고 했다. 나는 파스타에 제로 콜라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음식이 나오자 식당에서 키우는 것으로 보이는 강아지가 쫄래쫄래 우리 테이블로 왔다. 가만히 앉아서는 우리가 먹는 것을 계속 쳐다본다. 귀여운 눈망울로 우리의 음식을 탐했지만 우리가 시킨 메뉴가 감자튀김이 파스타라서 애석하게도 음식을 나눠줄 수가 없었다. 우리가 귀여워하며 강아지를 쳐다만 보자 음식을 자기에게 주지 않을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대로 자리를 잡고 누워버렸다. 이 나른한 오후 따사로운 햇살 아래 드러눕고 싶지 않은 자 누가 있으리.
식사를 마치고 J와는 작별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낮잠 자느라 잠시 미뤄둔 빨래를 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 빨래가 바짝 마르도록 넓게 널어놓았다. 시원한 바람맞으며 여유롭게 빨래를 너는 것이야말로 하루의 피로를 싹 가시게 해주는 순례길의 가장 큰 기쁨이다.
2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누워 푹 쉬고 있으니 아이들이 올라와 저녁 먹을 시간이라고 불렀다. 1층으로 내려가니 근사한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기부제 알베르게는 기부금으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비싼 고기 메뉴를 제공하기 쉽지 않고, 가성비가 좋은 감자나 계란 같은 요리가 많이 나오는 편인데 맛있는 닭고기까지 차려져 있었다. 각자 자리에 앉으니 점심에 나를 안으로 안내해 주었던 호스트가 일어나 식전기도를 헸다. 다른 기부제 알베르게와 다른 이곳만의 특징은 음식만이 아니라 운영주체도 있었는데,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단체였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묵은 알베르게에서 하던 식전기도와는 사뭇 달랐다. 스페인어로 기도를 하는 바람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뉘앙스만 느껴보았을 때 조금 더 일상적이고 캐주얼한 기도였다.
스페인어로 기도를 할 때 눈치를 챘는데 호스트 아저씨는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저씨의 아이가 대신 체크인을 해준 것이었다. 열명이 넘는 호스트 중에서 영어가 가능한 호스트는 브라질에서 온 부부 중 아내와 초등학생 아이 둘 뿐이었다. 아이는 아버지를 위해 식사하는 와중에도 아버지가 한마디를 하면 그대로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을 통역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10살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가 이렇게 유창하게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저씨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운을 띄웠다. 스코틀랜드에서 왔다는 나이 든 할머니와 파리에서 왔다는 여자 수학 선생님, 미국에서 왔다는 아저씨, 독일에서 온 남자, 독일인 친구 L과 한국인 K와 나까지 7명은 돌아가면서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나누었다. 저마다의 사연은 많았지만 자신의 삶 가운데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모두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마치자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추가 질문을 하면서 일대일 대화로 이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정리하고 나니 아이가 보드게임에 쓰일 법한 카드더미를 가지고 왔다. 수십 장의 카드에는 이런저런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언젠가 심리상담을 하는 TV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은 카드였다. 아저씨는 지금 나의 심정은 어떤지, 순례길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등 여러 차례 질문을 던지면서 가장 자신의 생각과 가까운 카드를 고르라고 했다.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하듯이 참여하겠지,라는 생각에 답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내 맞은편에 앉은 미국인 아저씨가 생각보다 심각한 이야기를 꺼냈다. 몇 년 전 아내와 이혼하며 쭉 혼자 살고 있는데 아직까지 아내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왜 자신이 이혼당했는지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생각보다 진솔한 고백에 장난치듯 나눔에 임하고 있던 사람들의 공기가 싹 가라앉았다. 자칫 잘못하면 분위기를 깨는 나눔이었을지 모를 아저씨의 발언이 모두가 진지하게 임할 수 있도록 도운 것 같았다.
한 시간가량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 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아저씨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여러분이 가지고 돌아가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순례길이 이제 5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꼭 던져야 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허를 찔린 듯 어떤 것을 가져가야 하나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도망치듯 떠나온 이곳에서 얻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그걸 한 문장으로 정리해서 그에 맞는 카드를 고르자니 쉽지 않았다. 나는 긴 고민 끝에 미소 짓고 있는 사람이 그려진 사진을 골랐다.
'저는 이곳에서 받은 미소를 가지고 돌아가고 싶어요.'
순례길에서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군가를 길 위에서 마주치면 그가 누가 되었든 간에 부엔까미노, 하고 반갑게 인사한다. 가게 앞을 지날 때면 가게 주인이 나와서 반갑게 인사해주기도 하고, 맞은편에서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과 스쳐 지나갈 때면 서로 눈으로 웃어 보이며 인사를 하기도 한다.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갈 때 앞사람이 조금 느린 것 같다 싶을 때는 조심스럽게 부엔까미노, 하며 인기척을 내고 얼굴을 마주치면 웃어 보이며 다시 한번 인사를 한다. 오르막길을 오르며 힘이 들 법도 한데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언제 힘들었냐는 듯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이곳에서 부엔까미노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함께 힘을 내자는 응원이나 격려다. 내가 너와 대화를 해본 적은 없지만 첫날부터 지켜봐 왔고, 잘 걸어왔다는 위로이기도 하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런 미소를 아니,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돌아가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삶의 응원을 던질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