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대학교 여름방학이었다. 긴 시간동안 할 일도 없고 뭘 해야 할지 몰라 카페 아르바이트나 알아보면서 끄적끄적거리다가, 갑자기 글쓰기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 검색을 하다가, 홍대의 한 문화예술기관에서 한 달 동안 글쓰기 강의를 모집하고 있는 공고를 발견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무진장 심심했다. 혼자서 홍대까지 가서, 친구 한 명 없는 곳에 수업을 듣고 온다는 것이, 내성적이고 눈치를 많이 보는 내 딴에는 굉장한 도전이었다. 빈 집에 혼자 멀뚱멀뚱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심심해 죽겠어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수강료를 내고 등록했다. 시끌시끌한 사람들 속에서 강의를 들으며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인척 하고 싶었다.
함께여야 기운이 난다
수업 첫날, 밀짚모자 사이사이로 흰머리가 튀어나온 할아버지가 강의실 앞문으로 들어왔다. 낚시터인 줄 착각하고 오신 거 아니야? 설마 저 분이 우리 선생님은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하이요~" 하면서 한 명 한 명 얼굴을 바라보시면서 인사를 건네셨다. 동네 주민이 심심해서 잠깐 들르신 거라고 끝까지 부정하고 있었는데, 수업시간이 끝나도록 '범생이 안경을 쓰고 흰 셔츠를 입은 진짜 선생님'은 오지 않았다. 밀짚모자 할아버지가 강단에 서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흥얼거렸다. 아, 이분이 한 달 동안 우리에게 글을 알려주시러 오는 분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수업 내용도 사담이 80%였다. 글을 잘 쓰는 방법보다는, 본인 위주의 과거 경험담, 좋아하는 바카라이나 작가 이야기들을 하거나, 수강생들의 직업이나 꿈같은 것들을 물어봤다. 내가 있는 곳이 지금 어디인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순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을 쏙 빼놓는 재주가 있으셨다. 말투도, 행동도 너무나 특이해서 아직까지도 그 할아버지가 잊히지는 않는다.
선생님은 사람 만나는 일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시면서, 이 수업도 매주 회식이 있다고 했다. 참여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데 이왕이면 다 같이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딱 한번 참여를 했었는데, 그때 내 나이 또래의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는 한 두 살 많은 언니였는데, 얼굴이 그늘져있었고,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다. 밀짚모자 할아버지는 한 명 한 명에게 질문을 자주 하셨는데, 그 언니가 이렇게 대답했다.
"전, 혼자 노는 게 너무 좋아요. 모든지 혼자가 편하고요."
선생님은, 그 말을 듣자마자 "허허허 아니야. 함께해야 재밌는 거야. 혼자가 뭐가 재밌어? 혼자면 재미없는 거야."라고 강하게 말하셨다. 어찌나 확신에 차서 말씀하셨는지, 거기에 있는 모든 수강생이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치킨만 뜯었다. 그때의 나는 선생님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도 혼자 영화관 가는 것도 좋아했고, 혼자 바카라을 읽거나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했었기 때문에⋯. 그 이후 시간이 아주 아주 많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함께여야 재밌다. 모든지, 함께여야 재밌는 것이다. 왜 재밌다고 느끼는 거냐면, 나도 모르게 서로 서로 '힘 나는 에너지'를 주고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이왕이면'이라는 문장을 앞에 붙이고 싶다. 이왕이면, 혼자 보다는 함께 있는 것이 기운이 난다. 그때 한 달 동안 그 수업에 참여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했던 시간들이 무척 즐거웠다. "아니, 글 쓰기 수업이라고 하면서 왜 맨날 맥주나 마시냐고요!"라고 항의하는 사람 한 명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혼자 있으면, 말을 할 필요도 없고, 생각도 제한적이다. 그런데 함께 있으면, 뭐라도 말을 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웃거나, 미소 짓거나, 다양한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내가 '존재하는구나, 살아있구나'라고 실감하게 된다.
가끔 혼자 있으면, 내가 멈춰있는 기분이 든다. 내가 인간인가? 동물인가? 살아있나? 죽은 사람인거 아냐? 내가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사나? 그렇다고 억지로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지는 않고, 혼자 있는 시간도 잘 참고 견뎌내지만, 사람을 만날 때 만큼은 거의 발가락까지 내려가 있었던 텐션이 가슴까지는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날 유독 잠이 잘 온다. '나는 미생물이 아닌 인간이었다.'라는 안도감 때문일까.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반드시 좋은 기운을 얻는다. 혼자 있는 것보다, 두 명, 세 명,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가 받을 수 있는 기운은 늘어난다. 함께 마음을 나누고, 함께 무언가를 이뤄내고, 함께 밥을 먹고⋯. 비록 모든 순간이 즐겁지 않더라도, 어떤 날은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고 속상함을 품을지라도, 결국에는 우리가 함께였을 때 가장 기운이 나는 순간이기 때문에, 또다시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으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하이요~ 손을 흔드며.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