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약은 딱 3일 치 입니다

by여미

대학교 졸업 작품을 제작하고 있을 때였다. 한 살 위 동기 언니가 있었는데, 실습실에서 같은 공간을 사용했고, 바로 내 옆자리였다. 언니는 종종 내게 바카라에서 읽은 문구들을 말해주곤 했다.


"화가 날 때는 바로 화내지 말고 3일을 참아보래. 3일을 참아봐도 화가 나면 그때 말하는 게 좋대."


일명 3일의 법칙이라고 한다. 사람이 3일이 지나면 어차피 화가 누그러지고, 감정이 날아가게 마련이라면서, 그것이 진짜 '따질만한 일'인지는 3일 지나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언니가 해준 그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졌고 인상적이었다. 화가 나면, 3일을 참아봐야 하는구나.


그 이후 나는 살면서 그 말을 지킬 때도 있었고 못 지킬 때도 있었다. 화를 참는 것은 어렵다. 더더욱이 명백한 상대방의 잘못인 경우에도,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는데, 여기서 3일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화가 많이 난다. 내 감정을 바로 표출하고 싶은 욕구에 지고, 후회하고, 또다시 반복한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로부터 온다고, 심리학자 아들러는 말했다. 여기서 '고민'이라는 것은 불편한 감정, 분노, 기분 나쁜 순간들을 포함한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단순히 내가 속한 집단, 환경에서 만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부딪히는 모든 일을 말한다. 일단 밖에 나가서 지하철을 타거나 슈퍼에만 다녀와도, 불쾌한 상황은 얼마든지 온다.


이 약은 3일 치 입니다


며칠 전에, 집 주변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다가 남은 케이크를 포장하고 싶어서, 봉투를 좀 달라고 했더니, 직원이 내게 기분 나쁜 티를 내면서 소리쳤다. "저기로 가서 말하세요." "어디요?" "카운터요." 그 직원 옆에 바로 봉투가 있었는데, 귀찮은 티를 내면서, 카운터 쪽으로 가서 말하라는 것이었다. 뭐, 시스템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건데 말투나 태도에서 날이 서있었다. 친절 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일반적인 톤으로 말해주면 되는데 왜 나한테 화를 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 직원이 너무 큰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기세로 누르는 바람에 어벙벙해져서 카운터로 가서 다시 말했다. 카운터에 서 있었던 직원도 갸우뚱하더니, 봉투를 건네주긴 했지만, 나는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약간의 감정이 상하고 말았다.


무덤덤한 사람은 '왜 저래?' 하면서 넘길 수도 있겠지만, 난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라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하루 종일 그 감정에 갇혀있었고, 다른 일에도 영향을 받았다. 의욕도 사라지고, 기운도 빠졌다. 왜 자기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사소한 감정싸움에 연연하는 걸까? 내가 문제일까?


이 작은 마음의 상처들을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했는데 나는 그때 동기 언니가 내게 말해준 것처럼, "3일"을 떠올렸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마다, 이건 3일치다, 이 감정은 3일이면 끝난다고 외쳤다. 언제는 2일 치, 언제는 1일 치의 크기도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 분노는 딱 3일 안쪽으로 끝났다. 마치 의사가 환자한테 처방을 내려주는 것처럼, 나 스스로에게 마음의 약을 처방내린다. 이 정도는 하루치야, 이 정도는 3일이면 끝나, 이런 식으로.


내가 애초에 시작부터 이런 진단을 내려버리면, 효력은 그 순간부터 발생한다. 3일만 기다리면, 어차피 완치가 되니까, 제한된 시간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뾰족한 말, 불쾌한 순간들,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든지 무방비 상태로 찾아와도, 3일, 딱 3일만 그 감정을 해석하고 연구하다가 흐르는 강물에 떠나보내자. 3일이 지나도 부들부들 화가 난다면 참지 않고 꼭 표현한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