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이야, 우리 반으로 데려가고 싶네."
유쾌한 웃음소리는 물소리에 묻힌다.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출발지로 향하는 내 곁에 누군가가 함께 걷고 있다. 등 뒤로 긴 줄 하나가 물 위를 떠다닌다. 그 줄의 종착역은 검은색 전신 수영복의 등, 지퍼를 올리고 내릴 때 사용하는 용도다. 구릿빛으로 탄 피부, 넓은 어깨, 물속을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그는 초급반 선생님의 연차로 대신 들어온 강사님이었다.
다섯 번째 강습. 아직도 수영장이 낯설다. 쭈뼛거리며 홀로 스트레칭을 하다 슬그머니 물속에 들어가며 선생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자 선생님에게서 배우다, 처음 마주한 남자 선생님의 모습에 더 움츠러들고 만다. 수영은 분명 재미있지만, 아직은 이 공간 자체가 익숙해지질 않았다.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몇 개월씩 수영을 배운 터라, 배영이나 평영 연습이 한창이다. 나 홀로 자유형을 배우는 시간. 지난 시간에 팔동작을 배웠지만, 여전히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중이다. 같은 초급반 선배분들은 자유형 한 바퀴를 돌러가고, 나는 새로운 가르침을 받는다. 새로 배울 것은 사이드킥. 선생님은 왼 손으로 킥판을 잡고 얼굴은 하늘을 향한 채, 발차기하는 모습을 시범으로 보여준다.
네...? 사람이 옆으로 떠요? 옆으로 떠서 발차기를 하는데, 안 가라앉아요?
시범을 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먼저 든다. 차마 꺼내지 못한 말들을 다 이해한다는 듯, 선생님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세를 잡아준다. 킥판을 잡고, 고개를 돌리고, 몸을 옆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허벅지로 허리를 받쳐주는 것이 느껴진다. 무섭다. 선생님의 다리가 사라지는 순간 물 위에 킥판만 동동 떠 있고, 나는 꼬르륵 가라앉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진다.
"자, 이제 발차기!"
선생님! 놓지 말아요!
손을 놓는 순간, 그대로 가라앉아 버릴까 봐,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라, 그런데 여전히 나는 떠 있다. 휙휙 발을 차면 찰 수록 앞으로 나아간다. 오, 이렇게도 뜰 수 있구나- 다만 직선이 아니라 계속 곡선으로 휘어진다. 옆 레인으로 가거나, 벽에 가서 부딪히거나. 제 자리에 서서 자세를 고치기도 몇 번째,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긴다. 이젠 혼자서도 옆으로 떠서 통통통 앞으로 나아간다. 재미있다. 물속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나아간다는 그 사실 자체가 즐거워 웃음이 나온다.
다음 단계는 킥판 잡고 발차기 열 번, 사이드킥 열 번. 다음은 발차기 여덟 번, 사이드킥 여덟 번. 시키는 대로 차근차근 따라간다.
"자, 발차기 여섯 번, 오른팔만 돌리면서 호흡하고 다시 발차기 여섯 번. 알겠죠?"
신기하다. 평소에는 팔과 몸통과 다리가 제멋대로 놀았는데, 웬일로 박자가 잘 맞는다. 중간중간 선생님이 요령을 알려준다. 팔이 이 정도 왔을 때 고개를 돌려라, 팔을 돌릴 때 이렇게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해라. 신기한 건 그 설명을 듣고 난 뒤에, 몸이 그대로 따라간다.
너 오늘 왜 이러냐.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안 따라가던 게 너였잖아.
"내가 오늘 이 분 띄우고 만다."
다른 분들의 수영을 봐주던 선생님이 나를 돌아보며 다짐을 건넨다. '아유, 선생님. 여긴 진짜 잘 떠요.' 우리 어머니 또래의 분이 칭찬을 건네준다. 그럴 때마다 배시시 웃으며 하는 대답. '뜨기만 잘 떠요.' 수영을 시도하면 꼬르륵 가라앉는 것이 문제지만, 스스로 자부할 정도로 뜨는 것 하나는 정말 잘한다.
"자유형 성공시킨다고."
선생님이 씨익 웃는다. 눈가에 접힌 주름들이 선명하다. 이 선생님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던 여유로움. 그리고 조언들이 몸에 금방 배인 이유를 알았다. 연륜과 실력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물론 지금 초급반 선생님의 수업도 좋다. 모든 것이 처음인 나에게 기초부터 하나하나씩 쌓아가는 느낌, 차분하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 무섭기만 하던 수영에 천천히 빠져들게 도와준 선생님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 수업을 더 듣고 싶은 욕심이 든다. 지금 선생님과는 다른 느낌, 이 선생님 수업이 내게 잘 맞는다는 그 감각. 지금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욕심. 선생님이 지나가듯 칭찬 하나를 건넸다. '우리 반 데려가고 싶네.' 그렇다면 분명, 중급 혹은 상급반 선생님일 테다.
처음 수영을 배우는 목표는 자유형 성공이었다. 자유형만 익히고, 비싼 강습 대신 홀로 자유수영을 다닐 생각이었는데, 목표가 바뀌었다. 중급반에 들어가서, 이 선생님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몸이 재미있다. 한참을 발차기를 해도 멀기만 했던 25m가 너무 빨리 끝난다. 그리고 선생님의 다짐이 지켜졌다.
첫 자유형을 성공했다.
"자유형 기초 완성이에요."
만족감과 칭찬을 뒤섞은 채, 빙긋 웃는 선생님 앞에서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수업이 끝나고 샤워실에서 물을 맞을 때가 되서야, 뒤늦게 피로가 내려앉는다. 배운다는 즐거움에, 힘든 줄도 몰랐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나 오늘 호흡도 제법 나쁘지 않았는데? 중간에 물을 먹는다던가, 호흡이 꼬여서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설명을 들을 때 말고는 평소보다 더 쉼 없이 수영장을 뱅뱅 돌았는데. 조물조물 손으로 거품을 만들다 올라가는 입꼬리에 혼자 다시 한번 웃고 만다. 재미있다. 수영, 정말 너무 재미있다.
나오는 길, 카운터에서 오늘 보충수업을 들어오신 선생님에 대해 물어본다. 한 선생님의 이름과 저녁에 중급반 수업만 담당한다는 말이 뒤를 잇는다. 이제야 수영 2주 차인데, 중급은 너무 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뒤적거린다. 어라, 그런데 수영장 홈페이지에서는 이름과 얼굴이 다르게 나온다. 분명 가르쳐 준 건 이 선생님인데, 카운터에서 알려준 이름은 다른 선생님이다. 그러면 그 선생님은 초급반 수업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7월과 8월은 아이들이 방학하며 출퇴근 시간이 바뀐다. 어쩔 수 없이, 수영 수업도 시간대를 옮겨야 한다. 그러면, 그 선생님 수업을 듣고 싶은데. 큰 문제가 생겼다. 선생님 이름을 모른다. 사진 속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확신이 없다.
선생님 이름을 어떻게 알아내지. 같은 수업을 듣는 분들도 모두 처음 뵙는 분이란다. 나중에 초급반 선생님에게 물어보자니 괜히 예의가 아닐 것 같고. 카운터에 물어봤는데 또 다른 이름이 나올까 걱정되고. 그렇다고 홈페이지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볼 수도 없잖아.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 내도 방법이 없다.
아, 방학시즌 동안은 그 선생님 수업을 듣고 싶은데.
선생님을 찾습니다. 근무지도 얼굴도 알고 있지만, 이름만 모르는, 그 선생님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