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은 아닙니다만......

바쁘던 시간들

by연하일휘

고개를 숙일 때마다, 얼굴을 감싸는 물결에 한껏 숨을 참는다. 뽀그르르- 물방울들이 피부를 두드리는 감각을 느낄 새도 없이, 팔다리가 분주해진다.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배우면 배울수록 수영이 어렵다. 뻐근한 허벅지는 점차 힘이 풀려 설렁설렁 물살을 헤치고 만다.


이제야 한 달 반이 지나가는 수영강습. 평영 발차기에 들어간 이후 제자리 수영중이다. 3주째 다리를 열심히 파닥이고는 있지만, 어째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몸은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도리어 다리를 접었다 펴면서 물살이 뒤가 아닌 앞으로만 밀려온다.


"선생님, 왜 앞으로 안 나갈까요?"


다른 영법과는 다르다고, 그리고 초보일 때는 어쩔 수 없다고. 선생님의 자상한 말도 위안이 되질 않는다. 잘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 답답함에 연신 물속에서 애꿎은 다리만 움직이는 요즘이다. 선생님이 뒤에서 두 다리를 잡고 다리 모양을 잡아주지만, 그때뿐이다. 이후로는 떠다니는 물미역마냥 옆레인 물살에 감겨 휘청이기만 한다.


요즘 아침 6시 수업을 듣고 있다. 이전에 그리도 찾아 헤매던 선생님의 이름을 드디어 알아내고, 카운터에 문의를 넣었었다. 초급반 수업은 오전 6시와 오후 2시. 그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스스로 지옥문을 열어버렸다. 야행성이던 내가 6시 수업이라니- 일어날 수나 있을까. 신청 후에도 한참 고민을 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 되었다. 이직에 성공한 덕분이다.


전화 한 통이 걸려왔었다. 한 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구한다며,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제안이었다. 어라, 나는 학교 경력이 하나도 없는데? 게다가 이 시기는 기간제 교원을 구하는 시기가 아니다. 시작일은 7월 1일. 무언가의 이유로 급히 구인을 하는 모양이다. 다급하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갔다. 그리고 면접이 끝나고 3시간 뒤, 합격했다는 연락과 함께 이직이 결정되었다.


학교까지의 거리가 꽤 멀다.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수업을 듣고, 씻고 가볍게 얼굴에 분칠을 하고 난 뒤 출발하면, 출근 시간이 딱 맞는다.


첫 학교 근무, 그리고 한 반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아직 앳된 1학년 아이들과 초보 선생님이 함께 호흡을 맞춘다. 출결을 확인하고, 전학을 갈 학생의 서류들을 처리하고, 반장과 부반장의 도움으로 청소 당번과 같은 학급의 일들을 함께 정리해 나간다. 야무진 두 아이가 있어 다행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님에게 조용히 다가와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주고, 이전 담임 선생님의 방법도 조목조목 말을 해준다.


이외에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이직 준비 기간부터, 방학식날까지 쉬는 날이 없었다. 쌓여가는 일, 부족한 시간, 느린 손. 교무실의 다정한 다른 선생님들 덕에 느리게나마 하나씩 일이 마무리되어 갔다. 가장 바쁜 시기라 그렇다고, 고생 많다고. 한참 선배인 선생님들의 말과 간간이 건네지는 위로들에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그러다 드디어 찾아온 회식날, 한 선생님의 질문을 건넨다.


"선생님은 퇴근 후에 뭐 하고 지내세요?"


"저 생기부(생활기록부)만 쓰다 보니 오늘이에요."


한탄 어린 한숨들이 주위를 둘러싼다. 출근 후 초과 근무도 하고, 집에 일거리를 들고 가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이제 갓 들어간 선생님이 아이들에 대해 무엇을 알겠냐마는, 쌓여있는 수행평가지를 분석하는 것은 가능했다. 출근 후 수업을 한 적은 없다. 수업 시간마다 학습지를 들고 가 아이들에게 글쓰기 수행평가를 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하나씩 읽어가며 각 아이들 글의 특징을 잡아내고, 생기부에 작성할 글들을 작성했다.


그리고 각 과목의 선생님들이 작성해 준 우리 반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확인했다. 맞춤법이나 비문을 살펴보며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각 과목 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려 수정요청을 하고, 국어과목에 들어온 수정요청을 반영하고. 이것만으로도 바빴건만, 전교생이 참여하는 독서감상문 대회가 열렸다. 전 학년 국어 선생님들이 모여 아이들의 독서감상문을 읽고 점수를 매겼다. 그마저도 시간이 부족해 집으로 들고 가 채점을 하다 늦게 잠드는 날들이 잦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라면 스트레스를 충분히 받을 상황이었다. 몸은 지치고, 정신적으로도 해야 할 일들에 매몰되었건만 즐거웠다. 이직의 순 기능일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씩 하나씩 업무를 처리해 나가는 그 과정이 나에게 잘 맞았던 것일까.


"선생님은 집에서 거리가 좀 되니까, 또 일찍 일어나야 하지 않아요?"


"아, 저 아침수영 다니다 보니까, 4시 반에 일어나요. 수영 갔다가 출근하면 딱 시간 맞더라구요."


감탄소리가 테이블을 가득 메운다. 그 뒤를 이어오는 추임새 같은 말들에 손사래를 치다 머쓱해져 앞에 놓인 술 한 잔을 들이켠다. '갓생'이라는 단어들이 튀어나오지만, 사실은 한없이 게으르다. 학교 업무와 수영에 밀린 집안일이 한가득이다. 정리되지 않은 빨래더미, 쌓여있는 재활용품. 여름이라 벌레가 꼬일까, 종량제 봉투와 음식물 쓰레기만 열심히 내다 버렸을 뿐 방치된 일들이 한둘이 아닌데, 열심히 산다는 말을 듣기에는 쑥스럽다. 나에게 수영은,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닌 삶의 즐거움 중 하나이기에.


잠들기 전, 작은 두근거림이 찾아온다. 내일은 수영 가는 날- 물살을 헤치는 그 감각이 행복하다. 이제야 갓 수영의 즐거움을 알게 된 수린이라 그런 걸까. 몸과 마음이 지치는 순간에도, 물살을 타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흩어진다. 우스갯소리처럼 말을 한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평영이라고. 아무리 발을 피고 모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최대의 고민이라고. 몸이 바쁜 것도, 할 일이 쌓여 잠이 부족한 것도, 수영을 간다는 두근거림이 흘려보내버린다.


바쁜 시간들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업무들과 2학기 수업 준비, 순회를 위한 다른 출판사 교재 연구.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이 산재되어 있지만, 바쁘게 달린 시간들 끝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나는 출근을 하지 않건만, 여전히 4시 반에 일어나, 아침 수영을 나간다.


'갓생'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게으르지만, 수영을 좋아하는 나 자신이 요즘 참 좋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행복한 오늘.


Pixabay


메인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