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란 말이 무서웠다.

by연하일휘

파란 화면이 뜬다. 오랜만에 보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여느 때라면 금세 다시 검게 변할 화면이었지만, 오늘만은 길게 늘어진다. 수업 중,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아버지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뻗으려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고장 난 시계 대신 들고 온 휴대전화, 수업 중에 개인적인 통화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화기의 진동이 전해진 것처럼, 떨려오는 몸에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선생님이 진짜 미안한데, 아버지 전화야. 근데 아버지가 진짜 많이 편찮으시거든. 그래서 잠깐만 전화 좀 받을게. 정말 미안해."


보통의 전화라면 쉬는 시간에 통화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전화만은 그럴 수 없었다. 네 번의 뇌졸중, 그리고 인지장애. 아버지에게 휴대전화는 습관처럼 손에 쥐었다가 내려놓는 존재가 된 지 오래였다. 발신버튼을 찾지 못하던 중, 연습 끝에 익숙한 이름을 누르는 것까지는 가능하던 터였다.


종종 남동생의 이름을 누르려다 실수로 내게 전화를 걸곤 했었다. 짧게 걸려오다 끊어지던 통화들이 잦았었다. 이번 통화는 다르다. 내가 받기를 기다리듯, 착신화면이 길게 이어졌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래서 간신히 내게 전화를 건 걸까. 아버지는 다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한다. 전화가 끊어지기 전, 다급하게 통화 버튼을 누른다.



"응, 아빠."


"ㅂ..... 보고 싶어."


"응?"


"보고 싶어."



아버지가 또박또박 네 글자를 읊는다. 심장이 떨어진다. 보고 싶다는 그 말이 이토록 무섭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아빠, 나도 보고 싶어. 근데 나 일하는 중이라서, 퇴근하고 보러 갈게요."


"응."



수업을 어떻게 마무리한 것인지, 머릿속을 휘몰아치는 생각들에 모두 다 묻혀버렸다. 쉬는 시간에 남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남동생의 목소리는 느긋하기만 하다. 이미 여동생과 언니에게 전화가 온 뒤란다. 아버지는 나뿐만 아니라, 딸들에게 모두 전화를 건 뒤였다. 나는 매일 오전마다 아버지를 만난다. 요즘 국수에 푹 빠진 아버지를 모시고 국숫집을 오 다니는 중인 탓이다. 오늘 아버지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전화기 사용도, 말도 좀 더 잘했던 걸까.



"큰누나랑 막내누나도 전화 왔었어. 전화해서 아무말도 안 하다가 끊었다더라. 나 십 분만 있다가 내려가볼게."


"지금 빨리 내려가봐."


"아까 나 퇴근할 때는 괜찮았는데?"


"아빠가 나더러 보고 싶대."



뭐-? 남동생의 다급함이 마지막 말을 지워버렸다. 거칠게 의자를 젖히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다. 애정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아버지다. 고마워- 이 문장이 아버지가 할 수 있던 최대의 표현이었다. 그런 아버지로부터 손주들이 아닌, 둘째 딸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꺼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겁이 난다.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불안감을 억누르며 수업에 들어간다. 아버지의 상태가 괜찮다는, 남동생의 연락에도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을 나서며 그제야 울컥거림이 올라온다. 내뱉으려던 한숨에 울음기가 섞여, 제대로 내뱉지도 못한다. 운전대를 잡는 손이 떨려온다. 퇴근시간에 맞춰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결국 눈물 한 줄기가 먼저 배어 나온다.



아버지가, 전화도 잘 못 거는 아버지가. 말하는 것도 어려워하는데....... 전화 와서는 나더러 보고 싶대. 애정표현도 한 번 안 했었는데....... 나한테 보고 싶다고......



말이 두서없이 뒤엉킨다.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무섭다.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이별이라는 글자를 얹어 놓았었다. 병원에서도 도리가 없다 했다. 여러 종류의 약들로 간신히 균형을 맞추며 지내는 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다시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 아예 손도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갑작스러운 이별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 나는 알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천천히 운전해. 천천히.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킨다. 연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남동생은 아버지가 괜찮다고 전해 주었다. 괜찮을 테다. 분명 괜찮을 거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간식 몇 개를 사 들고 집에 들어선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드라마를 보던 아버지가 고개를 든다. 여느 때처럼 무표정한 그 얼굴에 안심이 된다. 여전히 떨려오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짐짓 밝게 말을 꺼낸다.



"나 보고 싶다매. 그래서 간식 사 왔지."



아버지가 씨익- 미소를 짓는다. 혹여 울음이 올라올까, 목소리의 톤을 더 높인다. 괜찮다. 평소의 아버지다. 혈색도, 말도, 행동도. 평소와 똑같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는다. 하지만 떨리던 몸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그저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본다. 그러다 아버지가 김을 잡아 건네준다. 가끔, 집에 반찬거리가 없을 때마다 한 두 개씩 얻어가곤 했었다. 둘째 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만족스럽다는 듯한, 아버지의 그 표정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가방에 김을 집어넣는다. 아픈 강아지를 돌보러 이제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아빠, 나 갈게."


"응."


"아빠, 사랑해."


"응."



단답 위로 아버지의 웃음이 드리워진다. 나 역시도 몇 년 만에 건네는 애정표현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안 다는 듯이, 간질간질한 표현들을 잘 꺼내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하고 싶은 날이다. 부모님 댁을 나선다. 어둑한 마당을 걸으며, 괜히 또 눈물이 흘러나오려 한다.


괜찮을 거다. 아직은 괜찮을 거다. 되뇌고 또 되뇐다. 이성이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날이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보고 싶다는 그 말 앞에서 더욱 커져버린 날.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나 어디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