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위로 얇은 한 겹이 덧씌워졌다. 맨살이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끈적거리며 달라붙는, 접착제마냥 떨어지지 않는 습기. 어제 낮부터 시작된 비가 집안을 촉촉이 적셔놓았다. 덕분에 산바카라을 나가지 못한 아가의 심통과 운동을 나가지 못하는 나의 답답함이 한데 얽힌다.
그냥 비를 맞아?
하지만 아픈 장수견에게는 한순간의 즐거움대신 돌아올 대가가 두렵다. 물론 면역력이 바닥 언저리를 머무르다 저 깊이 파고들어 꼭꼭 숨어버린 나에게도 좋은 선택이 아닐 테다. 남은 건 실내 운동이다. 비틀거림이 더해지긴 했지만, 재미도 실력도 덧붙는 중인 야외에서의 자전거 주행 대신 실내 자전거를 택한다. 운동 어플을 켜고, 들을 음악도 함께 골라두었건만 딱 한 가지를 간과하고 말았다.
어제 일기예보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분명 새벽부터 비 소식이 있었다. 퇴근 후에 빨래를 걷으려던 야심 찬 계획은 12시간 정도 당겨진 빗방울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빨래야 여동생네 건조기를 빌리면 되건만, 문제는 그 빨래더미 속에 운동용 속옷들까지 함께 들어있었다는 점이다. 분명 어딘가에 있었을 텐데. 옷장 깊숙한 곳에서, 비닐에 얌전히 싸여있는 스포츠용 속옷 한 세트를 찾아냈다. 웬만하면 새 속옷들은 세탁을 하고 입는데, 오늘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페달을 돌리며, 이런저런 음악들을 골라 듣는다. 한동안 푹 빠져있던 미카, 그리고 애드시런, 크리스토퍼. 김광진, 윤도현. 그리고 한로로.
지난날을 후회하다가, 지난날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으로 언젠가는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곡
몇 년 전에 나온 노래인데, 오늘에서야 처음 들었다. 잔잔하게 시작하다가 이내 이어지는 통통 튀는 듯한 그 음색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묘하게 목소리가 익숙하다. 찾아보니, 노래 0+0을 부른 가수였다. 막귀이기는 하지만, 요즘 자주 들려오던 노래였는데. 이런 둔한 점은 쉽게 바뀌질 않나 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노래와 가수 한 명을 찾아낸 묘한 만족감으로 오늘의 운동이 마무리가 되었다.
산바카라을 못 간 불만의 표시인지, 혹은 통증 때문인지 준비해 둔 사료를 먹지도 않은 채 곁을 지키는 강아지를 가볍게 쓰다듬어준다. 그래, 누나가 간식이라도 줄게- 안 그래도 줄어드는 체중에 가슴이 아린데, 사료를 잘 먹지 않는 모습에 몰래 한숨을 내쉬고 만다.
손을 씻는데, 거품 색이 이상하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몽글몽글한 흰빛이어야 할 거품에 푸르스름한 색이 덧씌워져 있다. 그리고 손톱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어있다. 손톱뿐만이 아니다. 손가락 끝이 얼룩덜룩하다. 어디 크게 아픈 사람인 것마냥, 색이 바랜 손끝에 놀라 삼킨 숨이 내뱉어지질 않는다.
몇 번이나 손을 씻어내지만, 보랏빛으로 물든 손톱은 변함이 없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코올솜으로 손톱을 문질러보지만, 변화가 거의 없다. 나 어디 아픈가. 덜컥, 겁이 먼저 난다. 그런데 손가락 끝을 쓱쓱 문지르다 보니 솜에 무언가가 묻어난다. 그리고 다시 본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온다.
그제야 삼킨 숨이 쉬어진다. 몸은 멀쩡한데, 눈앞에 선명히 보이는 이상신호에 간이 툭- 떨어졌다가 슬금슬금 기어 올라온다. 무언가가 묻어있었나보다. 다만, 손톱은 아무리 문질러도 색이 돌아오질 않는다. 이미 제대로 물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대체 뭐가 묻은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범인은 단 하나다. 새로 꺼낸 운동용 속옷. 그 녀석 말고는 새로운 물건이 없다. 입고 벗으며 물이라도 빠진 건가. 뒤늦게 찾아온 안도감에 허탈한 웃음만 혼자 내뱉는다.
정작 몸에는 뭐가 묻어난 흔적이 없는데 왜 손끝에만 물든 거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물든 것이 사라질 때까지는 아파 보이는 손톱으로 살아야 되나 보다. 근데 이거 볼 때마다 놀랄 것 같은데, 심장을 토닥토닥 달래줘야겠네.
그래도 서프라이즈가 곁들여진 오늘의 운동 완료.
https://youtu.be/f1sr0D13wEY?si=obLQR6b1pnu6tjJ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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