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공감은 못 해.
얇은 겉옷 하나를 내려놓는 소리마저 공간을 울리는 듯하다. 이미 어둠이 들이찬 세상 속에 홀로 빛을 발하던 공간, 낮이었다면 북적거렸을 그곳의 밤은 세상과 동떨어진 곳마냥 이질적이다.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다던 친구를 위해 찾은 빵집이다. 이미 학원에서 아이들과 작은 파티를 벌인 직후라, 식당에 가기에는 애매해 선택한 장소였다. 꽤 넓은 공간, 안쪽의 조용한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아직 밤의 공기가 차갑다. 시린 손끝을 녹이려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다. 친구의 허기를 달래는 동안, 가벼운 이야깃거리들이 오고 간다.
침묵의 텀이 길어질 때쯤, 바카라 하나를 꺼내 글자 몇 개를 끄적인다. 올해, 시험 하나를 준비 중이다. 시간을 쪼개며 공부 중이지만, 오랜만에 하는 탓일까. 때때로 손이 굳어 멈춰버린다. 눈이 마주친다. 바카라을 읽던 친구도 집중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문득 이전에 들었던 고민이 떠오른다.
"아, 근데 너 그때 얘기했던 건 어떻게 됐어?"
기억 속에 묻혀있던 것은, 소소한 고민거리였던 탓이다. 그저 흘려보낼 법도 했던, 작은 갈등이 얽힌 문제였지만, 그때 친구의 찡그렸던 표정 덕에 다시금 떠올랐다. 볼멘 목소리와 함께 하소연이 이어진다. 해결이 되었을 줄 알았건만, 여전히 자잘한 갈등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음..... 솔직히, 너랑 내가 처한 상황이 전혀 다르니까... 내가 완전히 네 마음에 공감하긴 힘들겠다마는......."
나 역시도 과거에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은 있다. 하지만 친구와 나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 나는 그저 흘려 넘겼었다. 그래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공감하는 말이 쉽게 나오질 않는다. 나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한다면, 의도치 않게 친구에게 훈계를 하는 꼴이 되어버릴 것이 뻔했다.
단어를 고르고 고르며, 한 발자국 뒤에서 그때의 상황을 떠올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사자가 되기 전에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일이다.
나 역시도 그랬었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건'이라 칭할 수조차 없는 일들이었지만, 나에게는 트리거가 된 적이 꽤나 많았었다. 높아진 언성, 울음기 섞인 자조의 목소리, 물건이 깨지는 소리, 특정 단어. 스위치를 딸깍- 누르면 반사적으로 반응이 튀어나왔었다. 떨려오는 몸과 누군가가 숨통을 조이는 듯한 그 감각.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잔뜩 웅크린 채 떨림이 멎을 때까지 기다리던 시간들.
하지만 점차 나아지는 중이다. 새벽녘, 밖에서 들리는 술 취한 이들의 고성이 들려올 적이면 반사적으로 떨려오던 몸에 잠 못 이루던 나였건만, 이제는 소음으로 치부하며 이불속을 파고든다. 나는 나로부터 점차 벗어나는 중이었다. 그리고 친구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중인 것뿐일 테다.
친구가 내 손을 감싸 쥔다. 두 손으로 지그시 힘을 주듯, 감싸 쥐는 그 행동에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너도 아마,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힘들었겠지- 친구도 알고는 있었을 테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어리광으로만 들릴 수도, 시답잖은 고민거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내용이었다. 나는 네가 아니라서, 사실 네 무게를 다 알 수는 없어- 그러니 그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며 공감을 표할 뿐이다.
"그냥, 네 마음이 편해지는 쪽으로 생각을 하자."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온전한 공감이 담긴 말들은 아니었지만, 그저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다행일 따름이다. 어느새 커피가 다 식어버렸다. 짙게 풍겨나가던 향도 검은 액체 속으로 녹아내려, 닿지 않는다. 옅은 향을 품은 한 모금을 넘긴다. 눈가가 붉어진 친구가 웃는다. 힘내- 작은 응원으로 말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