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간 안에 한숨 하나가 머무른다. 내 숨소리가 귓가에 또렷이 들릴 무렵 차창 너머를 가만히 응시한다. 가라앉을 준비를 하는 해가 어스름한 하늘을 불러왔다. 하지만 아직 할 일들이 다 끝나지 않았다. 그저 바쁜 하루였다. 그리고 남은 시간도 바쁠 예정이었다.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이건만, 작은 움직임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지만, 보이는 것은 없다. 그러다 시선을 들었을 때, 작은 생명체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1층의 창문 너머로 둘째 조카를 품에 안은 여동생이 서 있었다.
"무! 이무우!"
차에서 내리자 둘째는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작은 손으로 방충망을 탕탕 두드린다. 얇은 한 겹의 막 너머로 조카의 손바닥을 간질이자, 제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듯 온몸을 창을 향해 기울인다. 이모가 너 보러 갈게- 가야겠네-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조카는 한차례 더 웃음을 터트린다. 동생네 집으로 들어서자, 서툰 걸음으로 다가오는 둘째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이모! 이모 와써요?"
할머니 방에서 TV를 보고 있던 첫째도 달려 나온다. 내 손가락을 꼭 쥐고는 방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모도 가치 봐아- 첫째는 할머니 침대에 올라앉아 자리를 잡더니, 제 옆자리를 탕탕 두드린다. 둘째를 안은 채 바닥에 앉아 침대에 몸을 기댄다. 툭- 침대 위로 떨구듯 머리를 얹어 놓으니, 안겨 있던 둘째도 똑같이 침대에 머리를 기댄다. 눈을 마주치며 함께 웃는다. 이 작은 녀석들에게 납치를 당해 버렸다. 해야 할 일들은 이미 조카들 생각에 저 멀리 밀려나가 버린 뒤였다.
아이들을 따라 들어온 여동생과 담담하게 대화를 나눈다. 며칠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괜찮으리라는 생각에 조용히 운을 띄웠다. 하지만 문장 몇 개 위로 울음이 묻어나 버렸다. 목소리를 억누르지만, 눈물 몇 방울이 눈치도 없이 저 혼자 흘러내려 버린다. 아직 괜찮아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묻어나는 울음을 지워낸다. 혹여 아가들이 볼세라, 조심스레 방울들을 닦아낸다.
둘째가 품으로 파고든다. 첫째도 이모 품에 안기겠다며 동생을 밀어낸다. 이제 14개월밖에 되지 않은 둘째가, 혹여 넘어질까, 제 오빠에게 깔리기라도 할까, 두 손이 바쁘다. 그런 이모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첫째는 그저 신이 나 이모 위로 올라타느라 정신이 없다. 가슴팍으로, 배로, 어깨 위로 자그마한 두 발이 올려질 때마다 묵직한 무게감이 나를 짓누른다. 이젠 제법 커버린 키에 두 팔을 잡아 중심을 잡아주려 해도 쉽지 않다. 제 오빠에게서 밀려난 둘째도 따라 하기라도 하려는 지, 그 짧은 다리를 이모 위로 올리려 끙끙댄다.
첫째는 아예 내 머리 위에 올라탔다. 둘째는 배 위에 올라앉아 터트리는 웃음소리만 들려온다.
"이모 숨 쉴 구멍은 줘야지이-"
얼굴을 깔아뭉갠 첫째를 툭툭 치며 말을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저 해맑은 웃음소리다. 이모를 올라타며 한참 놀이를 하던 두 녀석들을 무르팍에 앉히고 꽉 껴안아 버린다. 조카의 머리 위로 잠시 얼굴을 기댄다. 코를 간질이며, 뭉근하게 퍼지던 아가 냄새가 이제 더 이상 나질 않는다. 집에 들어설 때마다, 집안을 가득 메우던 포근한 아가 냄새도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인가, 아이들이 커져 있다. 벌써 시간이 그리도 흘렀다.
두 녀석들이 품에 안겨,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모 배고픈데- 밥 먹으러 가겠다는 말도 요 녀석들에게는 통하질 않는다. 이런 납치, 감금도 괜찮네. 작은 체온들이 몸을 데운다. 포근한 저녁의 한 때, 작은 생명체에 둘러싸인 채 시간을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