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과 금방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며,
분위기에 맞는 말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설명할 때는 긴장했고,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으면 알고 있는 내용도 바로 말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영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걱정한 것도 제품이 아니었다.
'내가 사람을 잘 상대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안고 영업을 시작했고,
어느덧 23년이 지났다.
지금은 처음 만난 고객에게 먼저 인사하고 질문하는 일이 예전보다 자연스럽다.
여러 사람 앞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설명하는 일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내가 외향적인 사람으로 완전히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낯선 자리에서는 여전히 긴장할 때가 있고,
많은 사람을 연달아 만나면 혼자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달라진 것은 성격보다 행동이었다.
고객을 만나기 전에 질문을 준비했고,
상담이 끝나면 내용을 기록했다.
모르는 질문에는 바로 답을 만들기보다 확인한 뒤 다시 연락했다.
약속한 자료와 답변을 정해진 시간에 전달하려고 했다.
영업을 오래 하게 만든 것은 화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이런 작은 행동의 반복이었다.
말을 유창하게 하는 능력은 영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상담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말을 잘한다고 반드시 고객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신입 시절의 나는 설명을 잘하는 것이 영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제품의 특징과 경쟁사와의 차이를 빠짐없이 전달하려고 했고,
고객이 조용히 듣고 있으면 내 설명에 동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객이 말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설명이 충분해서일 수도 있지만,
질문할 틈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담당자에게 결정권이 없거나,
이미 마음속으로 다른 기준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고객이 왜 조용한지 묻지 않고,
그 침묵을 내 방식대로 해석해버렸다.
영업을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말했는지가 아니라,
고객이 무엇을 말할 수 있었는지였다.
영업을 시작하면 가격을 낮추거나 추가 혜택을 주면
계약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가격은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예산이 제한된 고객에게는 가격 차이가 계약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고객이 가장 낮은 가격만 선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고객은 안정적인 납기를 중요하게 봤고,
어떤 고객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기존 업무를 줄여 주거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면 그쪽을 선택하는 고객도 있었다.
결국 가격은 고객이 보는 여러 기준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결정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서 가격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가격만으로 고객의 결정을 설명하려 해서도 안 됐다.
영업사원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얼마까지 할인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고객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을까?"였다.
영업사원은 계약을 위해 고객의 요구를 최대한 맞춰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고객의 요청을 이해하고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킬 수 없는 납기나 제공하기 어려운 서비스를 가능하다고 답하면,
계약 뒤에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나도 계약을 놓칠까 걱정해 분명하게 답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아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맞춰 보겠습니다."
상담할 때는 부드럽게 들리지만,
조건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말은 고객에게 약속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 뒤부터는 가능한 것과 확인해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하려고 했다.
"현재 확인된 범위에서는 여기까지 가능합니다.
나머지는 담당 부서와 확인한 뒤 내일까지 답변드리겠습니다."
고객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조건 동의하는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제공할 수 있는 범위를 정확히 설명하고,
확인이 필요한 내용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일이었다.
영업 현장에서는 "제품보다 사람을 판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사람의 호감이나 친분을 이용해 제품을 판매한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다.
나도 이제는 이 문장을 그대로 쓰기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풀어서 설명하려고 한다.
고객이 영업사원을 신뢰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설명한 조건이 실제와 맞는지,
불리한 내용도 숨기지 않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을 피하지 않는지,
계약 후에도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지를 확인한다는 뜻에 가깝다.
결국 고객이 판단하는 것은 영업사원의 이미지보다 반복되는 행동이다.
말은 한 번의 상담에서 만들 수 있지만,
신뢰는 여러 번의 확인과 이행을 통해 쌓인다.
영업 성과에는 여러 요인이 영향을 준다.
제품의 경쟁력,
가격,
회사의 지원,
시장 상황,
고객의 예산과
의사결정 구조도 중요하다.
영업사원의 노력만으로 모든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성격과 적성의 영향도 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지나치게 힘든 사람에게 영업이 무조건 맞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내가 경험한 범위에서는 연습하고 개선할 수 있는 행동이 분명히 있었다.
고객을 만나기 전에 질문을 준비하는 것
상담 중 확인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 것
약속한 날짜에 다시 연락하는 것
거절의 이유를 다음 상담에 반영하는 것
이런 행동은 타고난 말솜씨와는 다르다.
반복해서 점검하고 훈련할 수 있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 23년간 영업을 한 것이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이다.
내 성격에 맞지 않는 모습을 연기하기보다,
고객에게 필요한 행동을 하나씩 익혀 왔을 뿐이다.
영업을 시작할 때는 내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얼마나 정확하게 듣고,
확인하고,
약속을 지키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세일즈는 타고난 성격만으로 결정되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성격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오지홍 세일즈 강사 (세일즈마케팅연구소 강사)
23년간 영업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고 상담해 왔습니다.
현재 세일즈마케팅연구소를 운영하며,
초보 영업자가 고객과 신뢰를 쌓고 상담 후 다시 연락하는 방법을 강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