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일즈가 변하지 않는 이유

당장의 실적은 보이지만 신뢰의 결과는 늦게 나타난다.


영업 현장에서는 누구나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한 번의 계약보다 오래 이어지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월말이 가까워지고 목표 매출이 부족해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이번 달 매출은 숫자로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오늘 쌓은 신뢰가 언제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영업을 시작한 20대에는 새로운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상담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품의 특징과 경쟁사와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면 고객이 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었다. 고객은 제품에 대해 잘 모를 것이고, 나는 고객이 모르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달랐다. 고객은 나를 만나기 전에도 다른 영업사원의 방문을 받았고, 비슷한 제품의 가격과 조건을 비교해 본 경우도 많았다.


자세히 말하지 않을 뿐, 영업사원이 무엇을 강조하고 어떤 부분을 작게 설명하는지도 경험으로 알고 있는 고객이 적지 않았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영업사원은 자신이 가진 정보가 특별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제품의 장점은 크게 설명하고 불리한 조건은 짧게 넘어가고 싶어진다.

경쟁 제품보다 앞선 것처럼 표현하고 싶은 유혹도 생긴다.


상담 자리에서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거래가 시작되면 설명과 실제 조건의 차이는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 고객이 의심하는 것은 특정한 설명 하나만이 아니다.

이후에 듣는 다른 설명까지 신뢰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제품 설명만이 아니었다.


이 점을 뼈저리게 느낀 계기가 있었다.


화장품 원료 영업을 하던 시절,

고객사와 신제품을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내가 판매하는 원료의 성능과 가격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객이 고민하는 문제는 원료 자체에만 있지 않았다.

그 원료로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인지,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로 설명할 것인지,

기존 제품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도 함께 고민하고 있었다.


원료는 고객이 해결하려는 문제의 일부였다.


이 경험을 통해 내 영업의 기준이 달라졌다.

내가 판매한 원료로 고객이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이 시장에서 선택받아야 다음 거래도 이어질 수 있다.


나의 매출과 고객의 성과는 완전히 분리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개인적으로 '남 잘되기 행동'이라고 불렀다. 고객이 잘되어야

나도 오래 거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거창한 이론이라기보다 영업할 때 놓치지 않으려는 나만의 기준이었다.





옳은 방법을 알아도 실행하기 어려운 이유


그런데 이 기준을 안다고 해서 지키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고객에게 더 적합한 방법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고객의 사업과 의사결정 과정을 이해해야 하고, 내가 판매하려던 제품보다 다른 선택이 더 적합할 때는 그 사실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당장의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추가 검토를 제안하면 계약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 고객에게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권하지 않으면 이번 달 매출을 놓칠 수도 있다. 반대로 계약을 재촉하고 내가 판매하려는 제품의 장점만 강조하면 결과가 더 빨리 나타날 수 있다.


나도 항상 장기적인 관계를 우선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목표에 쫓겨 설명을 서두른 적이 있었고, 고객의 준비 상태보다 내 일정과 실적을 앞세운 적도 있었다. 상담이 끝난 뒤 고객의 문제보다 계약 가능성부터 계산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다. 단기적인 계약을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영업을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반대로 바로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고객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솔직하게 전달한 상담이 이후의 대화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모든 관계가 오래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격, 품질, 납기, 고객사의 내부 정바카라처럼 영업사원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조건도 있다. 정직하게 상담한다고 해서 반드시 계약이 성사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영업사원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있다.


유리한 내용만 골라 말하지 않는 것


고객에게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억지로 권하지 않는 것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확실한 것처럼 설명하지 않는 것


계약하지 않더라도 다시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남기는 것





세일즈의 변화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세일즈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방법을 몰라서만은 아니다. 장기적인 신뢰를 선택하면 단기적인 실적이 늦어질 수 있다는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영업의 결과를 계약 건수만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전달했는지, 고객의 상황에 맞는 제안을 했는지, 약속한 일을 지켰는지, 계약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다음 대화가 가능한 관계를 남겼는지를 함께 본다.


항상 이 기준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적이 부족할수록 단기적인 선택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도 커진다. 그래서 세일즈의 변화는 새로운 화법을 배우는 것보다, 매번의 선택을 점검하는 데서 시작된다.


당장의 실적은 보이지만, 신뢰의 결과는 늦게 나타난다.


오늘의 숫자와 내일의 관계가 충돌할 때 무엇을 먼저 선택할 것인가?세일즈가 쉽게 변하지 않는 이유도, 결국 세일즈를 바꾸는 출발점도 이 질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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