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무침과 메꽃

허기의 기억

by정언

얼음을 띄운 콩국수가 먹고 싶었다. 여름이면 동네 가게에 파는 콩국물이 생각났다.

가게에 들어서는데 통통한 콩나물이 보였다. 비닐봉지에 담긴 콩나물을 보는 순간 콩나물 무침이 먹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을 낼 자신이 없어 만들어 보지 않았던 반찬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살림을 가르치지 않았다. 결혼하고도 함께 살았기에 부엌은 늘 엄마의 자리였다. 엄마가 나이 들면서 나는 부엌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끝내 엄마의 손맛은 배우지 못했다.

내가 한 반찬은 몇 번 해서 먹고 나면 손이 가지 않았다. 어딘가 비어 있는 맛이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엄마에게 배워둘 걸 하는 아쉬움이 따라 나왔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는 철마다 새로운 반찬이 올라왔다. 시장을 돌며 사 온 채소와 건어물로 만든 밑반찬만 있어도 밥이 맛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백반집에서 엄마가 해 주었던 반찬을 발견하면 먼저 손이 갔다. 하지만 엄마의 콩나물 무침을 닮은 맛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새벽에 버스를 타러 가는 나를 기어이 잡아 앉히던 밥상 위에 콩나물 무침이 있었다. 작은 밥상이었지만 국과 반찬 몇 가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잠결에 엄마가 마늘을 찧던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늘향이 풍기는 아삭한 콩나물을 씹었다. 그날 엄마는 버스 정류장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어둠 속에서 버스가 다가올 때 나는 엄마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부엌살림을 하면서 엄마의 반찬을 조금씩 흉내 내 보았다. 몇 가지는 엄마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고는 옆에서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콩나물 무침은 다시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콩나물 무침에 대한 기억은 어느 날 문득 허기를 불러왔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날 새벽의 공기가 뺨을 스쳤다. 콩나물 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길, 나지막한 돌담을 타고 메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지난해 우연히 본 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꽃이었다. 하지만 메꽃은 다시 피어올랐다. 겨울 내 땅속에 숨어 있다가 다시 줄기를 올리는 모습이, 사라진 줄 알았던 내 기억을 닮았다. 나는 더위도 잊은 채 돌담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엄마가 만든 콩나물 무침을 떠올리며 콩나물을 다듬었다. 엄마의 콩나물 무침에서는 늘 마늘향이 났다. 서둘러 레시피를 검색했다. 살짝 데친 후 찬물에 헹구지 않고 식혔다. 국간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참기름을 부었다. 엄마의 콩나물 무침에는 통깨가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알싸한 마늘을 듬뿍 넣었다.


콩나물 무침을 수북이 담아 점심을 먹었다. 다른 반찬은 없어도 되었다.

흰쌀밥 한 공기를 비웠다. 그러나 엄마의 눈빛이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메꽃이 활짝 피었다. 지고도 다시 올라오는 꽃.

내 허기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