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의 무게
쌓인 시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거대한 철판이 층층이 쌓인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살면서 지나온 시간들이 육중한 구조물로 서 있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인다.
중국 드라마 『장상사』가 떠올랐다. 수천 년 살 수 있는 신족들의 이야기. 영력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젊은 모습으로 긴 세월을 사는 사람들.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 투사된 인물들이었다. 그들에게 백 년은 '순간'에 가까웠다.
지난 가을 산바카라로에서 고운 단풍을 만났다. 그 빛깔에 반해 몇 장이나 주워 오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단풍을 더 이상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아직 사람의 평균 수명에 이를 만큼 살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
살면서 쌓인 시간들과 지나온 감정은 소멸하지 않는다. 층층이 쌓여서 가슴에 얹혀, 나의 일부분이 되었다. 행복했던 순간을 더 기억하고 싶지만, 지난 시간의 층위에는 아픔이 무겁게 쌓여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욕망한다.
욕망의 끝에는 다른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아픔이 더 진하게 남는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있을 때였다.
백발의 노인들이 침상에 갇혀 지내고 있었다. 살면서 욕망하는 것들이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죽기 전에'라는 말로 시작되는 욕망의 리스트가 나에겐 무의미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삶이 그리 길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소요'는 자신과 함께 살았던 인족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마주친다. 젊고 예쁘던 '첨아'가 늙고 불편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가족으로 지냈던 이들은 죽었고, 자손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여전히 젊은 모습의 '소요'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아픔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신족의 시간은 길어서, 아픔도 길었다.
아픔이 길었기에 희미해지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며칠은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나에게 쌓인 시간들이 누르는 무게가 밀려왔다. 그 무게는 삶에 집착할수록 선명하게 가슴을 누른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갈망과 새로운 것들에 대한 욕망이 그 위에 쌓인다.
하고 싶지만, 꼭 그것이어야 하지는 않다.
그리 오래 살지 않아도 된다.
커버 이미지: 션 스컬리, 『대구 스택』, 2025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