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퇴사
이른 아침 옷장 앞에 섰다.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문을 열었다.
한 벌씩 꺼내 만져보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온라인 게임에 다니는 동안 사들인 옷들이었다.
외출할 때 입으려고 세탁해서 가지런히 걸어둔 옷들이다. 그중 두어 벌은 강아지와 산바카라을 나갈 때 입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원피스를 입으니 제법 어울리는 듯했다. 하지만 강아지와 산바카라하기엔 어정쩡했다. 결국 몇 번 입어봤지만 내 옷이 아닌 듯한 어색함에 다시 걸어 두었다.
그러다 옷장을 열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문을 열 때면 다가오던 아련한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를 길게 들이마시고는 다시 닫았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문득 그곳에 두고 온 내 종종걸음이 떠올랐다.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 기억이 나를 흔들 때가 있었다.
아침이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집을 나섰다. 바카라상 위에 둔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이 다 녹아내리는 동안 자판을 두드렸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 계단을 뛰어오르던 시간이 있었다.
일을 하다 누군가 던진 말을 툭하고 받아서 웃어대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 기억을 옷장에 넣어두고 있었다.
주말에 남편과 쇼핑을 나갔다. 편한 바지와 티셔츠 몇 벌을 샀다. 지금 내 생활에 필요한 옷들이었다. 그리고 옷장을 열어 보았다.
나는 마음먹었다. 옷장 속 시간들을 정리하기로.
나의 완벽한 퇴사를 위해.
수거함에 옷을 버리며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한 벌씩 훑어보며, 슬쩍 웃으며, 수거함에 밀어 넣었다.
돌아오던 길에 아파트 뜰에서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치자나무 앞에 섰다.
치자꽃 냄새가 머리를 깨운다.
온라인 게임에 다니는 동안 이 냄새를 맡았던 적이 있다. 야간 근무를 한 날, 저녁을 먹고 사람들과 산바카라을 했다. 어디선가 은은히 퍼지는 냄새에 발길을 멈추었다. 치자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거기에 치자나무가 있는 줄 몰랐다. 나는 쪼그려 앉아 꽃송이마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초여름밤을 가르는 치자꽃 냄새에 고단함이 저 멀리 사라지던 날이 있었다.
다시 바카라상으로 돌아갔다. 밤늦게까지 보고서 몇 문장을 두고 사람들과 고심했다. 창밖에는 치자꽃 냄새가 맴돌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냄새였다. 옷장을 열면 나던 아련한 냄새는 바로 이것이었다.
떨치지 못한 나의 시간들.
치자꽃 한 송이를 꺾었다. 유리잔에 담아 거실에 두고 은은하게 퍼지는 냄새를 맡는다.
초여름밤의 눅눅함 속으로 진하게 올라오는 치자꽃 냄새.
조금은 남겨 두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