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에 들어간 날

스승의 시간

by정언

운현궁 뜰을 거닐었다. 빛바랜 당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스승의 서체를 현판에 남긴 주인장의 마음이 읽힌다. 미술관에서 세한도를 보고는 알 수 없는 감동을 품고 있었다. 운현궁에서 추사체 현판을 보는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세한도의 가치는 그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긴 두루마리에 적힌 시문이 전하는 정신과 감응이 있었다. 스승의 그림을 북경으로 가져가 문인들에게 찬문을 받은 이상적.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벗들과 함께 스승의 그림을 다시 펼쳐 본 김준학의 마음이 떠오른다.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퇴사하고 선생님을 찾아뵈려던 중이었다. 제자가 먼저 안부를 여쭈었어야 했다. 선생님은 퇴사 후 시간을 어찌 보내는지 궁금해 연락했다고 하셨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중학교 1학년부터였다. 병설 여고로 입학할 때, 선생님도 같이 자리를 옮기셨다. 꼬박 6년, 내 어린 시절을 지켜준 선생님. 한 번도 담임 선생님이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 삶의 어느 지점이든 선생님의 목소리가 있었다.


선생님은 해직 교사였다. 탄원서와 그 아래 빼곡한 졸업생들의 연명서가 기억난다. 탄원서에 이름을 올린 제자들, 선생님은 돌아설 수 없었다.

선생님이 처한 상황이 어떨지 몰랐다. 정의감만 있으면 세상을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추운 계절이었다.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은 오히려 웃으셨다.

때로는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나는 예전처럼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세상살이가 말하는 것처럼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였다.


선생님이 복직을 하시고 학교로 찾아뵌 적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중년의 제자가 찾아온 일을 낯설게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그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분이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동료들이 대접해 주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셨다. 그리고 시간을 앞당겨 퇴직하셨다.


선생님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이 떠오른다. 교육 현실을 다룬 영화를 함께 보다가 주무시기도 했다. 아픈 시간을 지나시던 선생님이었다.

해직 후 나에게 함석헌 묘에 함께 가자고 하신 적이 있다. 군사 작전 지역을 지나 도착한 묘역에서, 선생님은 한참을 앉아 계셨다. 추운 계절을 보내시던 선생님이었다.


세한도를 다시 생각한다. 추사는 시문이 있어 추운 계절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추사는 시문이 있어 돌아서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탄원서에 서명한 제자들 명부 원본을 달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서랍 속에 있을 그 명부가 가슴을 헤집는다.


부끄러움을 지닌 채 살아도 되는 것이 삶이다.

나의 스승에게 진작 말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