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유통 기한
시골에 다녀온 날이면, 찬거리가 냉장고에 넘쳤다. 온라인 게임을 다니며 아이들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해내야 했던 시절이라, 무는 부담스러운 찬거리였다. 무 윗부분에 잎이 몇 개 붙은 채로 베란다에 그저 두고만 있었다.
베란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아지가 무꽃을 뜯고 있었다. 강아지가 귀엽기도 했고, 이젠 무를 버려도 된다는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4월의 베란다에서 핀 무꽃.
몇 해 전에 먼저 퇴사한 지인이 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꽤 오래 이어진 인연이었다. 퇴사 소식을 듣고 만난 이후, 전화도 문자 메시지도 답이 없었다. 인연의 기한이 이렇게 다하는구나 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맺은 인연의 끈을 이어가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모임을 하면 반갑고, 대화도 유쾌했다. 헤어질 때는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으레 하는 말에 가까웠다.
어느 해 늦가을이었다. 굳이 따지면 알만한 사람들과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어색할 것은 없는 자리였다.
커피 볶는 향이 좋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밤이 깊어가고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대화 주제는 아이들 교육이라는 흔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엄마들의 진심으로,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들들을 무덤덤하게 대학에 보낸 나로서는, 딱히 낄 만한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의 마뜩하지 않은 얼굴과 마주쳤다. 휘발해도 좋을 가치를 들킨 느낌이었다.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밤늦었다는 핑계로 대화를 마무리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 바람이 낙엽과 먼지를 날리고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각자의 차가 주차된 곳을 향해 갔다.
나는 그 카페에 다시 가지 못했다.
그날 모임은 무꽃이었다.
무꽃이 피고 나면 바람이 들고 질겨진다. 달큰함은 꽃으로 옮겨가고, 맵고 쓴 맛만 남는다.
밑동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지 않은 나의 무심함이 무꽃을 피웠다. 하지만 냉장고에는 자리가 없었다. 무는 서둘러 반찬이 되었어야 했다.
나보다 먼저 퇴사한 지인은 인연의 유통 기한을 감지하고 있었다. 지인과 만났던 날, 나는 퇴사 이유에 공감해 줄 수 없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엄마를 보내 드릴 때 지인에게 느낀 서운함으로 격조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인과의 오랜 인연은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마음이 일렁이며 거품을 만들지만, 곧 가라앉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인연의 끝맺음을 알지 못했다.
서로 닿을 곳이 없는 인연은 꽃이 핀들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
꽃이니, 며칠 두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