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해지는 날엔, 어르신들의 시를 펼쳐 읽습니다

흑백 같던 세상이 오색찬란한 컬러로 바뀌는 순간들

by감격발전소

이유 없이 마음이 납작해지거나 가난해지는 날이면 나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의 특별한 시를 읽는다.


한글을 모르고 살다가 문해교실을 통해 뒤늦게 배움의 기쁨을 찾은 어르신들의 글이다. 8여 년 전, 회사에서 교육 부서에 근무할 당시 우연히 접하게 된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은 내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문해교실은 여러 사정으로 학령기를 놓친 성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곳이다. 한글을 익힌 어르신들은 그 서툰 글자로 자신의 삶을 시로 써 내려가고, 그 결과물은 매년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을 통해 세상밖으로 나온다.


처음엔 그저 담당자로서 의무감에 찾았던 전시회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과장님과 함께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한참을 울고 말았다. 온통 흑백 같던 세상이 한글을 배우며 오색찬란한 컬러로 바뀌어가는 그 눈부신 이야기들에 마음을 온전히 빼앗겼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시에는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글을 가르쳐주는 학당이야말로 자신에게는 '안과'나 다름없다며 세상을 맑게 보게 되었다는 시, 공부 잘하는 오빠들과 달리 밥 잘 짓는다는 칭찬만 듣던 어린 시절의 한을 풀어낸 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비로소 세상 밖으로 목소리를 내며 "나 한글 배우고 있소!"라고 외쳐보는 시까지.


어떤 분은 뒤늦게 한글을 익혀 춘향전을 읽다가, 혼례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영감 생각에 가슴 저려했고, 또 어떤 분은 손주에게 그림바카라을 읽어주고 싶어 그토록 한글을 배우고 싶어 했다. 손주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글자 하나하나를 익히는 그 마음이라니.


서툴지만 진심 어린 글귀들은 때로는 짠하고, 때로는 애틋하며, 또 너무나 귀엽기만 하다.


내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싶다.


<절로 뽑힌 대못>


가난했던 어린 시절.
옆집 또래 친구가
“니는 학교 안 댕기나?” 하고 물었다.
그 한마디가 내 어린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젊은 시절, 방직공장에 다녔다.
어느 날 작업 반장이
“한글 몰라요?” 하고 물었다.

그 한마디가 내 젊은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모진 세상 풍파를 힘겹게 이겨내고
예순을 훌쩍 넘어
딸의 손에 이끌려 한글반에 왔다.


한글을 읽고 쓰고, 구구단을 외운다.
수업하는 날이 기다려지고 배움이 즐겁다.
그 언제인지

나도 모르게
내 가슴 속 대못이 저절로 뽑히고
마음은 두둥실, 희망으로 설렌다.


이 시는 읽을 때마다 가슴 저렸다가, 살며시 도닥여지는 기분이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귀여운 시 한편도 연이어 소개해 본다.


<사랑의 의처증>

허리가 아픈 며느리 집에

양산에서 부산까지 매일 출퇴근
늦을까 봐 허둥지둥
숙제를 못 해 마음이 심란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선생님이 주신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읽고
나 혼자 깔깔깔


힘든 것도, 고달픈 것도
공부를 하면 모두 다 사라져~


남편이 피곤해 보이니 쉬라 하여도
학교는 절대로 빠지지 않고 등교.

“자기야! 선생님이 남자라서 안 빠지고 갑니까?”


허허허 어이가 없네요


남편이 나 몰래 수업시간에 와서
창문 너머 빼꼼빼꼼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응원할게요
자기야 사랑합니다.




얼마 전 회사 로비에서 열린 어르신들의 특별전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 감동을 마주했다. 바쁜 일상을 뒤로한 채 오늘도 숙제가 담긴 가방을 울러메고 문해교실로 간다는 어르신의 힘찬 문장을 읽으며, 나는 오늘 하루도 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는다.


어르신들의 삐뚤삐뚤한 글씨가 내 등을 따뜻하게 토닥여준 덕분인지 글을 읽다보면 납작하게 눌려 있던 내 마음도 조금씩 다시 부풀어 오른다.


시집을 덮고 속으로 나직하게 외쳐본다.

'자, 오늘도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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