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 앞에서

한 미용실 사장님의 삶을 들으며 노년을 다시 생각했다

by감격발전소

작년, 나는 시골마을에서 시내로 이사를 했다. 오랫동안 시골 동네 미용실을 다녔기에, 미용실에 가는 일은 별다른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내로 나오고 보니 가격 차이가 꽤 컸다. 집 앞 미용실보다 차를 몰고 예전 시골 미용실에 가는 편이 오히려 더 저렴할 정도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일부러 예전 미용실을 찾아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미용실 원장님마저 타지로 이사를 가버렸다. 할 수 없이 다른 시골 마을 미용실을 찾아 헤매다가, 길을 걷다 가장 일찍 문을 열고 마당을 쓸고 계시던 사장님의 미용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염색을 하러 왔다고 말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사장님은 나를 향해 “이분 커트만 빨리 해드리고 염색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먼저 온 사람은 나였기에 속으로는 살짝 심술이 났지만,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다.


시간이 좀 걸리려나 싶었지만 커트는 정말 금세 끝났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너무 금방 끝나서 놀라 “커트가 원래 이렇게 빨리 끝나나요?” 하고 물었더니, 사장님은 어르신들은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금세 지저분하다고 느껴져 못 견뎌 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미용실에 들르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윽고 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염색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는 염색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흰머리가 보여 속상해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과 할머니가 동시에 껄껄 웃으셨다.


“흰머리가 나서 속상해요? 우리는 먹고 돌아서면 또 생기는 게 흰머리예요. 이제는 그냥 일상이 됐지.”


나는 사실 이전 미용실에서 새치 염색이 잘되지 않은 것 같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는데, 두 분은 내가 흰머리 자체를 서러워한다고 이해하신 듯했다. 그 오해를 굳이 풀지 못하고, 나도 그저 따라 웃었다.


두 분은 “자기들도 절대 늙을 줄 모르고 살았다”며,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참 예쁘다고 했다. “내 젊은 시절엔 내가 그렇게 예쁜 줄 몰랐는데…” 하는 말도 덧붙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사장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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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장님은 스물여섯 즈음 미용실을 시작했고 지금은 예순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2녀 1남 중 장녀로 자란 그는, 아픈 어머니를 위해 원래 살던 시내 집을 떠나 어머니 집 근처 시골마을에 집을 짓고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집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다시 시내로 나오고 싶었지만 시골집은 쉽게 팔리지 않았고, 그렇게 십수 년째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 집에는 막내 남동생이 홀로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공부를 잘했던 그는 서울로 유학을 갔고, 가족들은 힘을 모아 그의 학업을 뒷바라지했다. 하지만 고시 공부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삼십대 중반에 모든 공부를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오랜 세월 공부만 하며 살아온 탓에, 동생에게는 생활력도 생계력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다. 사장님은 미용실 옆에 떡볶이 가게를 내주고 곁에서 돌보았지만 수익은 시원치 않았다. 지금은 자리를 옮겨 햄버거 가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매일 밤 10시면 동생의 가게에 들러 청소를 해준다고 했다. 혼자 사는 동생이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안쓰러워 반찬을 해다 주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동생은 그런 누나의 수고를 고마워하기보다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다. “이제는 내가 체력이 안 돼서 못 도와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콧방귀를 뀔 뿐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쪽이 자꾸 저릿해졌다.


얼마 전 김달님 작가의 《뜻밖의 우정》을 읽고 난 뒤부터, 나는 노년의 삶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노년을 그저 ‘늙음’으로 뭉뚱그릴 수 없다는 것, 그 안에도 각자의 기쁨과 후회, 체념과 애정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배웠다. 그래서 사장님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바카라의 말미에서 작가가 노년의 사람들에게 던졌던 질문을, 나도 그녀에게 건네보았다.


사장님은 좋아하시는 게 뭐예요?

한참 넋두리를 늘어놓던 그녀는 그 질문 앞에서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는 “이 나이 되면 딱히 뭘 좋아하고 그러는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카라 속에서 만난 노년의 삶은 결코 그렇게 납작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물었다.

“꼭 거창한 게 아니어도요. 이걸 할 때 활기가 돌고, 좀 웃음이 나는 것 같은 거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동네 문화센터 가서 춤추고 그런 게 좋더라.”


그 말이 나오자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곧이어 그는, 퇴근하고 밥 먹고, 잠깐 산바카라하고, 동생 가게 청소까지 다녀오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주 1~2회 정도면 그래도 다닐 만하지 않으세요?” 하고 되묻자, 그것조차 매주 이어가려면 생각보다 힘에 부친다고 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물었다.

“본인 시간을 자꾸 동생한테 쓰다 보면, 나중에 조금 허무해지지 않으세요?”


그녀는 한번씩은 동생 때문에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동생을 보고 있으면 너무 짠하고, 또 불쌍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는 쉽게 어떤 판단도 할 수가 없었다. 이십대부터 동생의 삶을 함께 짊어지기 시작해 예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가족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삶. 그것이 그녀가 스스로 택한 애정의 방식이라 해도, 자신의 삶을 우선에 두는 데 익숙한 내 세대의 눈으로 보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과 바카라임이 저토록 오래 한 사람의 삶을 붙들고 갈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었다.


염색약을 그릇에 짜 넣고 붓으로 천천히 개며, 그녀가 말했다.


“미용사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뿌리 염색하러 오는 손님에게 뿌리 부분만 딱 맞춰서 염색약 바르고 남은 건 다 버린대. 그래야 손님이 더 빨리 또 오니까. 그런데 나는 그게 안 돼. 손도 크고, 아까워서도 못 그러겠고… 그냥 남은 것도 최대한 더 발라드리게 돼.”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동생분한테 늘 베푸시는 마음이 몸에 배어서 손님한테도 그러신가 봐요.”


그러자 그녀는 “말을 참 예쁘게 한다”며 웃었다. 내가 “사장님이 좋으신 분이라 그렇죠” 하고 답하자, 그는 또 한 번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요즘 나는 《뜻밖의 우정》을 읽은 뒤로, 노년의 삶을 예전보다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날 작은 시골 미용실에서, 나는 또 한 번 바카라 속 문장을 떠올렸다.


삶은 글보다 크다.


나는 그녀의 삶을 다 알지 못한다. 그 복잡한 사정을, 오래된 바카라임감을, 미처 접지 못한 애틋함을 다 이해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삶은 내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다 써낼 수는 없지만, 나는 그녀의 삶을 마음 다해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가 동생의 가게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문화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가 마음껏 춤추는 날이 오기를 선명하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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