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쓸모없는 연구에 세금을 써야 할까

by배대웅

덕후의 나라에서는 과학도 덕후처럼 한다. 일본이 그렇다. 대다수의 사람은 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에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다. 정작 본인은 신이 나 있다. 남들이 “그걸 해서 뭐 하게?”라고 물으면 대답은 대개 비슷하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요”


이화학연구소(RIKEN)의 과학자들도 그랬다. 2004년 이들은 가속기를 이용해 아연 원자핵을 비스무트 원자핵에 충돌시키고 있었다. 목표는 원자번호 113번. 그때까지 세상에 없던 원소를 새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아연에는 양성자가 30개, 비스무트에는 83개가 있다. 둘을 합치면 113개다. 계산은 한 줄이면 끝난다. 다만 실험은 10년이 넘게 걸렸다. 두 원자핵은 어지간해서는 합쳐지지 않았고, 어쩌다 합쳐져도 금세 쪼개져버렸다.


그래서 무식하게 많이 부딪치게 했다. 약 400조 번. 그중 성공한 것은 단 세 번이었다.


첫 번째 얻은 원자는 2004년, 두 번째는 2005년이었다. 세 번째 원자가 나타난 것은 무려 7년 뒤인 2012년이었다. 로또라면 진작 손절했을 확률이다. 과학자들은 그걸 10년 가까이 했다.


그렇게 힘들게 얻었으니 대단한 데 쓰였을 것 같다. 그런데 아무 데도 못 썼다. 113번 원소는 너무 불안정해서 만들어지자마자 붕괴한다. 반도체에도 못 넣고, 신약에도 못 쓰고, 발전소를 돌릴 수도 없다. 다른 나라에 팔 수도 없다.


그러니까 이런 결론이다. "10년 넘게 실험해서 원자 세 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세 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참으로 기초과학다운 이야기다.


원자는 사라졌지만 이름은 남았다. 일본은 자국명인 니혼(にほん)을 따서 이 원소에 니호늄(Nihoni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기율표의 118개 원소 가운데 아시아에서 발견된 것은 니호늄이 유일하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도 남았다. 인류는 원자번호 113번까지 원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됐다. 그 과정에서 초중원소를 합성할 수 있는 과학자와 가속기, 실험기술도 남았다. 수백조 번의 충돌에서 의미 있는 신호 하나를 골라내는 노하우도 생겼다. 그런 연구를 10년 넘게 계속할 수 있는 연구소도 남았다.


결국 일본은 원자 세 개보다 훨씬 큰 것을 얻었다.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제 현실을 보자. 가속기는 전기를 먹고 연구자는 월급을 받는다. 이런 연구를 하려면 누군가는 엄청난 돈을 내야 한다.


기업이라면 쉽지 않다. 만약 연구개발 회의에서 누군가 이렇게 발표한다고 해보자. “현재 7년째 성과는 없습니다. 성공하더라도 예상 매출은 0원입니다. 그래도 계속하겠습니다” 아마 발표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슬라이드는 조직통폐합안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기업이 이상한 게 아니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한다. 어디에 쓸지 확실하고 시장도 크다면 기업이 훨씬 잘한다.


그래서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초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실험이 어려워서만이 아니다. 실패를 기다리는 일이 더 어렵다. 니호늄의 두 번째 원자와 세 번째 원자 사이에 있었던 7년의 실패가 그랬다.


국가가 기초과학에 돈을 쓴다는 것은 그 시간을 사는 일이다.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데 가속기를 돌리고, 연구자를 고용하고, 오늘 실패한 실험을 내일 다시 하게 만드는 일이다.


니호늄 하나를 만들었다고 덕질이 끝날 리도 없었다. 연구진의 눈길은 곧바로 주기율표의 다음 빈칸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119번 원소였다. 그 실험에 필요한 장비를 확충하는 데 다시 수십억 엔의 예산을 신청했다. 400조 번 해서 세 개 만들었는데 그 짓을 또 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합리성만 따지면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인류가 아는 세계는 이런 사람들이 조금씩 넓혀왔다. 주기율표의 끝에 빈칸이 있으면 굳이 거기까지 가서 채워보려는 사람들 말이다.


세금으로 연구를 지원할 때 우리는 자주 묻는다. “그래서 그걸 어디에 쓰나요?” 당연한 질문이다. 국민이 낸 돈이니까.


하지만 지식에는 당장 쓸 데가 없어도 알아낼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원자는 어디까지 무거워질 수 있는지, 원자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붕괴하는지, 자연은 우리가 아는 법칙으로 어디까지 설명되는지. 누군가는 그 경계를 한 칸씩 밀고 나가야 우리가 아는 세계도 넓어진다.


어느 나라가 그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다. 오랫동안 선진국이라 불린 나라들은 경제력만 앞섰던 것이 아니다. 대학과 연구소를 만들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지식을 배우고 쓰게 했다. 돈이 많다는 것과 지식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후자가 훨씬 더 어렵다.


니호늄도 그렇다. 원자 세 개는 일본에 돈을 전혀 벌어다 주지 못했다. 대신 전 세계의 주기율표에 일본이 발견한 지식 하나를 남겼다. 전 세계 학생들이 화학을 배울 때 113번에는 Nihonium, Nh라고 적혀 있다.


이런 연구에 세금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는 당장 쓸모 있는 기술만 사는 곳이 아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을 알아낼 시간에도 돈을 쓰는 곳이다. 그중 대부분은 실패할 것이고, 일부는 성공해도 당장 쓸 데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남들이 만든 지식을 잘 가져다 써도 부유한 나라는 될 수 있다. 남들이 가져다 쓸 지식을 만드는 데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니호늄은 일본이 어느 쪽에 서고 싶은지를 보여준 원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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