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온라인카지노 작가의 글에 긴 댓글들을 달았다.
먼저 부탁을 받은 일이었다. 글을 읽고 느낀 점을 편하게 말해달라고 했다. 읽어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했다. 문제는 그 이야기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것이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필요 이상으로 길었다. 몇 군데를 덜어내고 컷 전환을 빠르게 하면 메시지가 훨씬 잘 살아날 것 같았다.
그렇게 썼다. 어느 대목은 줄이고, 어느 장면에서는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면 좋겠다고 꽤 구체적으로 적었다. 작가는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글을 고쳤다.
여기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 플랫폼의 이상적인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 아래 의외의 댓글이 하나 달렸다.
“적어도 온라인카지노에서는 작가들끼리 동등하다 생각해왔는데 허허… 첨삭지도라니 좀 허허… 이게 맞나 싶네요”
순간 내가 온라인카지노의 작가 윤리라도 위반한 줄 알았다. 글쓴이가 먼저 의견을 부탁했고, 나는 내 생각을 말했고, 글쓴이는 그 의견에 동의해서 자기 글을 고쳤다. 요청받지 않은 평가를 들이민 것도 아니고, 싫다는 사람의 글을 붙잡고 가르치려 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제3자가 문제를 삼았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작가들은 동등하다”라는 말이었다. 작가가 동등하다는 것과 서로의 글을 비평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나는 바카라을 쓸 때마다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낸다. 그러면 편집자는 내 글에 손을 댄다. 아주 많이 댄다.
“여기는 너무 깁니다.”
“앞에서 한 이야기와 겹칩니다.”
“이 사례는 빼는 게 좋겠습니다.”
“독자가 여기까지 따라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장 몇 개를 고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문단을 통째로 들어내고 순서를 바꾸고 몇 페이지를 다시 쓰기도 한다. 이번에 준비하는 글쓰기 바카라은 아예 95% 진도율에서 엎어버렸다.
그렇다고 나는 편집자에게 묻지 않는다. “작가와 편집자는 동등한데 왜 제 글을 첨삭지도하시죠?”
편집자가 내 상사라서 원고를 고치는 게 아니다. 나보다 위대한 작가라서도 아니다. 내가 쓴 글을 다른 눈으로 읽으니 내가 보지 못한 문제가 보이는 것이다. 그 의견이 맞으면 고치고 아니면 그대로 둔다. 최종 판단은 작가가 한다.
편집자는 원래 그런 일을 하는 직업이니 경우가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독자는 어떤가.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훈 같은 대가도 신간을 내면 인터넷 서점과 독서 커뮤니티에 온갖 감상평이 올라온다. 찬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신작은 실망스럽다거나, 전작보다 힘이 빠졌다거나, 어느 대목이 지루하다는 평가도 흔하다. 그 독자들이 자신을 하루키나 김훈보다 높은 작가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대한 서열과 글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 동등한 사람끼리도 서로의 글에 대해 얼마든지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오늘 내가 당신의 글에서 문제를 발견할 수도 있고, 내일 당신이 내 글에서 허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평가했느냐가 아니라 그 의견에 타당한 근거가 있느냐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가 늘어진다”고 하면 당신은 그 말을 검토하면 된다. 맞으면 고치고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비평을 위계로 받아들이면 무엇을 지적했는지보다 누가 지적했는지가 중요해진다. “그 말이 맞는가?”보다 “당신이 뭔데?”가 먼저 나온다. 글 이야기가 갑자기 서열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쓰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나도 분위기를 잘 몰랐다. 다른 작가의 글을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가끔 댓글로 의견을 남겼다. 글이 별로라거나 논리가 엉터리라는 식은 아니었다. 이 문장은 조금 부자연스러운데 바꾸면 어떻겠느냐, 앞뒤 연결이 어색한 것 같다는 정도였다.
반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지적 때문에 구독이 끊긴 적도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온라인카지노에서는 이러면 안 되는구나.
그래서 안 했다.
대신 오래 알고 지낸 작가들과는 종종 긴 댓글을 주고받았다. 글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내가 쓴 댓글에 다시 반론이 달리기도 했다. 서로 상대가 글을 제대로 읽었다는 걸 알고, 공격하려는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까.
그런 관계에서 나누는 비평은 꽤 즐겁다. 혼자 썼다면 보지 못했을 문제를 발견하기도 하고, 댓글을 주고받다가 처음 쓴 글보다 생각이 더 진전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내가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글쓴이가 부탁했고, 나는 시간을 들여 읽었고, 글쓴이는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당사자끼리 합의하는 것으로도 부족한 모양이다. 구경하는 사람의 허락까지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 뒤에는 한 가지를 더 알게 됐다. 비평을 부탁한 사람조차 남의 도움을 받아 쉽게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자바카라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피드백을 받는 게 왜 쉽게 가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바카라을 쓸 때마다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 쉽게 쓰는 셈이다. 좋은 피드백은 글쓰기의 노동을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는 못 본 문제를 보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물러난다고 해서 그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부탁을 받고 시간을 들여 글을 읽어준 사람까지,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그런 도움마저 눈치를 봐야 한다면 비평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실제로 온라인카지노에서 댓글은 글에 대한 토론보다 관계를 확인하는 언어로 기능할 때가 많다.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물론 나도 이런 댓글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나 역시 비슷한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다만 온라인카지노의 댓글란을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글의 수준은 천차만별인데 평가는 놀랄 만큼 비슷하다. 좋은 글도 좋은 글이고, 평범한 글도 좋은 글이고,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는 글도 좋은 글이다.
칭찬은 안전하다. 근거가 없어도 된다. 상대가 기분 나빠할 일도 없다. 내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는 데도 도움이 된다.
비평은 정반대다. 우선 제대로 읽어야 한다. 왜 문제인지 설명해야 한다. 표현도 조심해야 한다. 가능하면 대안까지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작가와의 관계가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잘못하면 구독자가 사라지고, 이제는 옆에서 보던 사람까지 나설 수 있다.
그러니 대부분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두루뭉술하게 좋은 글 잘 읽었다고 칭찬하고 만다. 나도 그렇게 되었다.
결국 온라인카지노에는 칭찬이 넘치지만 비평은 귀해졌다. 비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굳이 할 이유가 없어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좋았습니다”라고 말해주는 독자도 물론 고맙다. 그런 응원이 글을 계속 쓰게 한다.
하지만 열 문단을 읽고 “여기서부터 조금 늘어지는데요”라고 말해주는 독자는 훨씬 만나기 어렵다. 어디서부터 늘어지는지 생각하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줄의 지적 뒤에는 꽤 많은 독서가 있다.
좋은 비평은 작가에게 꽤 큰 행운이다. 그런데 그걸 누리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상대가 내 글을 제대로 읽어줄 것이라는 믿음, 지적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의견이 달라도 관계까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이번 일을 겪으며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됐다. 비평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고 믿는 것.
온라인카지노에서 비평이 사치인 이유는 비평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비평을 주고받을 관계가 귀해서다. 당사자들이 어렵게 그런 관계를 만들었는데도 제3자가 문제 삼는다. 급기야 당사자까지 자기 선택을 반성한다면 비평은 더 비싼 사치가 된다.
그러니 안전하게 가는 편이 낫다. 온라인카지노에서 가장 안전한 댓글은 여전히 “잘 읽고 갑니다”일 것이다. 서로 기분 좋고 관계도 상하지 않는다.
글만 어제와 같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