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바카라을 기다리는 일

by배대웅

예전에는 내 바카라이 나오는 게 제일 좋았다. 출판사에서 표지를 보내오고, 인쇄가 끝났다는 연락이 오고, 서점에 깔렸다는 사진을 받으면 괜히 들떴다. 작가라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요즘은 남의 바카라이 나오는 것도 꽤 좋다. 정확히는 함께 글쓰기 세미나를 했던 분들의 바카라이다.


작년부터 시작한 글쓰기 세미나가 벌써 4기까지 왔다. 함께한 분들도 스무 명을 훌쩍 넘겼다. 그리고 세미나 이후에 출간한 분도, 신춘문예에 등단한 분도, 공모전에 합격한 분도 계속 나오고 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원래 잘 쓰던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오히려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내가 더 긴장했다. 초보자를 생각하고 준비했던 발제문을 전면 수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글쓰기 귀신들 앞에서 대충 준비했다가는 내가 퇴고를 당할 것 같았다.


그러니 그분들의 성취를 내 공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나도 양심이 있다. 괜히 생색냈다가는 바로 들통날 테니까.


그래도 등단과 출간 소식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이쯤 되니 세미나와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졌다.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상관관계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인과관계로 여기고 있다. 이걸 정신승리라고 한다면, 님 말이 맞음.


사실 세미나에서 한 이야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왜 한 편의 글에는 하나의 메시지만 담아야 하는가. 문장은 얼마나 더 줄일 수 있는가. 독자가 다음 문장을 읽고 싶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진부한 표현을 피하려면 어떻게 읽고 생각해야 하는가. 초고보다 왜 퇴고가 더 중요한가. 한마디로 다 알지만 잘 안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글쓰기에서 어려운 건 대단한 깨우침을 얻는 일이 아니다. 이미 머리로 아는 원칙을 몸으로 익히는 일이야말로 어렵다. 한 가지 이야기만 해야 한다면서 자꾸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고, 간결하게 쓰겠다면서 문장을 부풀리고, 퇴고가 중요하다면서 남의 지적은 듣지 않는다. 아는 것과 쓰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먼 거리가 있다.


세미나에서 한 일도 그 거리를 단번에 줄이는 비법의 전수가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자꾸 길을 잃는 지점을 함께 확인하고, 글쓰기의 기준을 몇 번이고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을 뿐이다. 잘 쓰는 사람에게도 기본은 필요하다. 기본을 몰라서가 아니라, 잘 알수록 슬쩍 건너뛰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을 함께 보낸 분들의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 결과에 내 지분이 몇 퍼센트인지는 계산할 수 없다. 아마 소수점 아래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0이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이것도 정신승리라고 한다면, 반박은 하지 않겠다.


오래전 학원강사를 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 일은 다시 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말을 안 들었고, 학부모들의 시선은 관심보다 감시에 가까웠다. 원장은 늘 강의평가와 등록률을 들여다봤고, 강사들끼리는 은근한 경쟁이 끊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칠판 앞에 서 있었지만, 정작 수업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더 피곤했다.


그래도 딱 한 가지는 좋았다.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좋은 학교에 합격하는 것. 그 시절 입시에서는 수능과 내신 성적이 부족해도 논술에서 역전승을 거두는 경우가 꽤 있었다. 특히 수업에서 다뤘던 논제가 그대로 나왔거나, 내가 알려준 서술 전략으로 좋은 점수를 받는 아이들을 보면, 내가 합격한 것도 아닌데 뿌듯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좋아했던 건 합격증보다 누군가 나아지는 장면을 보는 일이었던 것 같다.


온라인카지노를 하면서 늘 아쉬웠던 것도 비슷했다. 글은 혼자 쓰지만, 좋은 작가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글의 원칙은 바카라에서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원칙을 자기 글에 적용하고 몸에 익히는 일을 혼자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함께 고민하는 토론이 필요하다.


온라인카지노를 하다 보면 은근 경쟁이 느껴진다. 물론 경쟁은 작가를 더 부지런하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대상이 글이 아니라 라이킷이나 구독자 수가 되면 역효과만 난다. 글을 고민하는 일보다, 관계를 관리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카지노 작가들은 글은 참 열심히 쓴다. 그런데 글 자체는 의외로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무엇이 좋은 글인지, 어떤 문장이 오래 살아남는지, 한 편의 글은 왜 무너지는지, 묻고 답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좋은 작가도 더 많이 나온다. 나는 온라인카지노가 글을 전시하는 플랫폼인 것만큼, 작가가 자라는 공동체였으면 좋겠다.


작년에 세미나 후기를 쓰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는 바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바람이다. 다만 이제는 그 바람이 틀린 방향은 아니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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