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담론을 떠난 뒤
사람은 몇 살까지 세계관을 바꿀 수 있을까. 젊을 때 가졌던 확신을 중년 이후에 완전히 바꾸는 일이 가능할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스무 살에 믿었던 것을 예순까지 믿는 사람도 많다. 정치도, 학문도, 종교도, 사상도 한번 굳어지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기보다 기존 신념을 방어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사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20대의 나는 세상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다고 믿었다. 역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인간은 그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슬롯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정치적 선택 이전에 하나의 세계관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헤겔식 역사주의였고, 세상을 하나의 원리로 꿰뚫는 거대담론이었으며, 인간을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는 해방 서사였다. 물론 그때는 그런 철학적 이름은 알지 못했다. 다만 세상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론만 터득하면, 나머지 현상들은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세월을 지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계기는 내가 평생 공부해 온 슬롯과학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나는 1999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아직 학생운동의 잔향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처럼 슬롯를 뒤흔드는 힘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대학생이라면 슬롯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도 그 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대단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오니 시간은 많았고, 그때까지 미뤄두었던 인생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학생운동은 그 질문들에 가장 먼저 답을 제시하는 곳이었다.
왜 슬롯는 불평등한가. 왜 분단은 끝나지 않는가. 왜 세계는 강대국 중심으로 움직이는가. 그때 처음 리영희를 읽었고, 이어서 카를 마르크스를 만났다. 나는 끝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는 못했다. 이론이 지나치게 난해했고, 정치적 결론인 혁명론에는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에게는 다른 학자들에게서 보기 어려운 매력이 있었다.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약자 편에 서겠다고 분명히 선언한다는 점. 그리고 세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방이라는 실천적 목표를 내세운다는 점.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끌렸던 것은 운동보다 그 사고방식이었다. 세상은 복잡해 보여도 결국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고, 그 원리를 알면 역사가 어디로 나아갈지도 알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에 따르면 수많은 슬롯현상도 그 기저에는 근본 원인이 존재하며, 그 원인만 교정하면 인간의 해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세계관이었다. 복잡한 세상이 하나의 논리로 정리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 그 논리가 인간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과 세상을 바꾸는 실천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론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평등을 말하면서도 조직 안에서는 권력이 작동했고,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다른 의견은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슬롯를 바꾸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기 정치와 이권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어느 조직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20대의 나는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적어도 더 나은 슬롯를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비판하는 세계와는 달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문제의식까지 버리지는 않았다. 학생운동의 방식이 문제였을 뿐, 방향은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슬롯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진보정당으로 갔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다. 혁명 대신 민주주의로 슬롯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에게 공감했다. 토론과 의사소통을 통해 이성적인 슬롯를 만들 수 있다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이것들이야말로 학생운동의 문제의식을 더 정교한 방식으로 이어가는 이론으로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장면을 또다시 보게 되었다. 진보정당 안에도 정치가 있었고, 시민단체 안에도 권력이 있었다. 거기서도 내로남불과 진영 논리는 디폴트로 작동했다. 처음에는 특정 개인이나 조직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경험이 반복되자 더는 그렇게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바뀌어도 결과는 늘 비슷했으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었다고 봐야 했다.
결국 나는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어떤 이념이 더 옳으냐?”가 아니었다. “왜 인간은 반복해서 같은 오류를 범하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었다. 세상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는 거대담론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고, 인간은 어떤 이념으로도 온전히 설명되지 않았다. 역사도 하나의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하나의 거대담론을 버리고 다른 거대담론을 선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학생운동도, 슬롯민주주의도, 시민슬롯론도 서로 다른 답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두 "세상은 하나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슬롯를 변화시켜야 한다."라는 같은 전제 위에 서 있었다. 내가 바꿔야 했던 것은 답이 아니라 그 전제 자체였다.
그 뒤로는 어떤 거대담론에도 끌리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게 되었다. 그들이 위선자라서가 아니다. 내가 못 믿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다. 사람은 자신의 이념만큼 선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만큼 일관되지도 않다. 예전에는 정의를 말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믿었지만, 이제는 정의를 말할수록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의도는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관심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념보다 현실, 사람보다 제도, 슬롯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보다 인간은 왜 반복해서 같은 실수를 하는가. 그런데 그 질문에 답을 줄 새로운 인식의 틀은 쉽게 찾지 못했다. 거대담론은 더 이상 믿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대신할 세계관도 없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위기의 상태였던 셈이다.
그 답을 뜻밖에도 연구소에서 찾게 되었다. 처음에 과학은 어디까지나 직업이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었고 과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슬롯과학을 공부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과학기술정바카라 업무를 맡게 되었을 뿐이다. 연구자들이 연구를 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연구소의 발전전략을 세우고, 정부와 연구 현장 사이를 연결하는 문서를 작성하는 일. 그것은 세계관이 아니라 노동이었다.
그런데 과학자들과 일하면서 내 관심을 끈 것은 연구성과보다 연구가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 과학의 매력은 블랙홀이나 양자역학 같은 첨단 지식에만 있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식을 다루는 태도’였다. 과학에서는 오래 믿어온 이론도 관찰 결과와 맞지 않으면 다시 검토해야 했다. 누구의 설명도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증명했는가였다.
그 모습은 내가 지나온 이념의 세계와는 달랐다. 젊은 시절 내가 매혹되었던 거대담론은 하나의 원리로 세상을 완결하려 했다. 그 원리를 알면 현실의 모순도, 역사의 방향도, 인간 해방의 길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과학은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 물론 과학도 이론을 만든다. 다만 그것은 세상을 완성하는 체계가 아니라 현재까지 가장 잘 설명하는 가설일 뿐이다. 설명되지 않는 사실이 나타나면 사실을 이론에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이론을 다시 고친다. 데이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다른 설명을 내놓는 사람을 적으로 돌릴 수도 없다.
그 무렵 카를 포퍼를 다시 읽었다. 예전에도 그의 반증 가능성이라는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과학철학의 한 주제 정도로만 이해했다. 그런데 연구소에서 과학이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진지하게 다가왔다. 좋은 이론은 모든 것을 다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다. 어디에서 틀릴 수 있는지 스스로 드러내야 좋은 이론이다. 반박 가능성이 없는 이론은 처음부터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도그마에 불과하다.
주로 과학철학자로 알려진 포퍼의 정치철학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가 헤겔식의 역사주의를 비판하고 열린 슬롯를 주장한 이유는 따로 있지 않았다. 그것은 과학과 같은 원리였다. 인간은 틀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이념도, 어떤 지도자도 자신을 역사의 정답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권력은 선한 사람이 아니라, 언제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비판과 경쟁이 필요하며, 권력을 견제하는 제도를 우선 갖춰야 한다.
포퍼라는 렌즈를 통하니 예전의 내 경험도 다시 이해되었다.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시민단체에서 반복해서 느꼈던 실망은 개인의 위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스스로 틀릴 가능성보다 자신이 역사의 편에 서 있다는 확신에 더 경도되어 있었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세상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현실은 그 원리에 맞춰 해석되기 시작한다. 맞지 않는 사실은 예외가 되고, 다른 의견은 무지나 반동이 된다. 그 과정에서 이론은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재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완전한 설명보다 오류를 수정하는 장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선한 사람에게 권력을 맡기는 것보다 권력이 견제받는 구조를 더 우선한다. 인간의 도덕성에 기대기보다 인간의 오류를 관리하는 제도를 더 신뢰한다. 과학이 내게 준 가장 큰 가르침도 새로운 지식이 아니었다. 인간은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전제 위에서 슬롯를 설계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물론 과학자라고 해서 욕망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들도 연구비를 두고 경쟁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과학의 대의로 포장하며, 학계 안에서도 권력 다툼을 벌인다. 다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런 주장 역시 증거를 내놓아야 하고, 동료들의 검증을 받아야 하며, 언제든 반박될 수 있어야 한다. 이 장치도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오류를 감추기보다 드러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내가 과학에서 배운 것은 바로 그 회의주의와 제도주의였다.
과학은 그렇게 내 사고방식을 바꾸었다. 그런데 사람은 사고방식만으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생각은 정리되었지만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남아 있었다. 거대담론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보다, 오래 믿었던 세계를 잃었다는 허망함이 나를 괴롭혔다. 그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의외로 철학바카라이 아니라 소설에서였다.
그 바카라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사실 독서의 시작은 그리 순수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하루키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하루키보다 하루키를 소비하는 허세스러운 분위기가 싫었다. 그러니 읽은 이유도 단순했다. 싫어하려면 최소한 읽고 싫어하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바카라은 대체로 논지가 분명하다.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고, 논리를 전개하고, 독자를 결론으로 데려간다. 『노르웨이의 숲』은 그런 소설이 아니다. 무엇을 주장하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인물들의 선택도 하나의 의미로 정리되지 않는다. 상실은 끝내 극복되지 않고, 젊은 시절의 이상도 허공으로 흩어진다. 예전 같았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며 덮어 버렸을 바카라이다.
그런데 끝까지 읽었다. 그것도 아주 인상적으로. 이 소설은 내게 대단한 깨달음을 주지는 않았다. 대신 마음 한구석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던 어두운 감정을 건드렸다. 거대담론을 떠난 뒤 찾아온 허무, 세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였을 때 남는 공백,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담담함 같은 것들이다.
포퍼가 철학으로 설명했던 것을 하루키는 문학으로 보여주었다. 포퍼는 인간은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오류를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키는 바로 그다음 이야기를 했다. 진리가 없어도 사람은 사랑하고, 상실하고, 살아간다. 하루키는 그것을 논증하거나 설교하지 않았다. 그저 인물들의 말과 침묵, 거리와 공기 속에 담아두었다.
그제야 내가 왜 그 소설을 끝까지 읽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거대담론을 떠난다는 것은 더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일만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한때 나를 지탱했던 세계가 무너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당연히 허무가 남는다. 하루키는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님을, 어쩌면 삶 자체가 그런 허무의 연속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모든 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 한때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하루키에게서 받은 가장 큰 위로였다.
요즘 내가 자주 떠올리는 생각은 세 가지다. 약자가 하는 말이라고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좋은 의도로 한 일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어떤 이념으로 포장되든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어야 한다.
2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한때 그렇게 확신했던 것들을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씩 내려놓았으니 말이다. 실제로 나는 여러 번 생각을 바꾸며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분명해진 것도 있었다. 예전의 나는 신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틀렸을 때 신념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아마 앞으로도 내 생각은 또 바뀔 것이다. 지금 믿는 것들 역시 언젠가는 수정될지 모른다. 나는 그 가능성을 기꺼이 열어둔다. 생각이 바뀌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과학에서 배운 가장 과학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