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사라지면 정말 끝나던 시절

김성호(1989), <김성호의 회상>

by배대웅

초등학교 6학년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 안 가는 주말이라 집에서 내내 라디오를 들었다. 아마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였을 것이다. 가수가 게스트로 나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그날 소개된 곡이 김성호가 부른 <김성호의 회상>이었다.


사실 그 가수가 누구였는지, DJ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노래 제목과 소개하는 말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마치 단편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었어요."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 비유가 참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 것 같다. ‘단편영화’라는 말이 이 노래의 작동 방식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노래나 좋은 글은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장면을 남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슬픔을 직접 설명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독자가 스스로 슬픔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조지프 퓰리처도 강조했다. "그림 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에 머물 것이다." 독자의 머릿속에 장면을 남길 수 있다면 그 문장은 오래 살아남는다.


<김성호의 회상>에도 그런 장면이 있다.


"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


이 문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낯설어진다. 우리는 지금 '사진'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완전히 바뀐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진은 구기거나 찢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수많은 픽셀로 쪼개져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어딘가에 저장되는 데이터에 가깝다. 누구도 사진을 찢지 않는다. 삭제 버튼을 누를 뿐이다.


그래서 '찢어진 사진'은 이제는 사어(死語)처럼 느껴진다. 사진이 종이였고, 마음먹으면 찢어 버릴 수 있었고, 그렇게 사라진 사진은 다시 볼 수 없었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말 같다.


지금은 반대다. 헤어진 사람을 잊는 것보다 다시 보는 일이 더 쉽다. 사진을 모두 지워도 네트워크 어딘가에는 남아 있고, 마음만 먹으면 SNS로 그 사람의 근황을 확인할 수도 있다. 관계는 끝났는데 흔적은 끝나지 않는 시대다.


그래서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라는 문장은 지금 들으면 조금 극단적으로 다가온다. 남아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찾아갈 수도 없고, 우연히 마주칠 수도 없고, 잊고 살다가 문득 발견할 수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사진 앞의 '찢어진'이라는 수식어다. 만약 그냥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였다면 이 가사가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진이 없는 것과 찢어진 사진조차 없는 것은 다르다. 찢어진 사진은 원래 남아 있을 법한 물건이다. 차마 버리지 못해 서랍 한구석에 밀어 넣어 두었을 것 같은, 모서리가 해지고 반쯤 찢겨도 끝내 버려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 흔적이다. 이 곡은 그 흔적마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


발표 당시 이 곡은 대단한 히트곡이 아니었다. 앨범을 샀던 기억조차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래 남은 이유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다른 노래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릴 때는 그저 쓸쓸한 이별 노래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잊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 보고 싶지만 사진 한 장 남질 않은 사람의 이야기.


지금 귀에 들어오는 것은 조금 다르다. 예전에는 노래 속 인물의 감정이 들렸다면, 이제는 그 감정이 놓여 있던 시절이 들린다. 사진이 종이였고, 추억이 물건이었고, 한 번 사라진 것은 정말로 사라지던 시절.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두 개의 상실이 겹쳐진다. 하나는 노래 속 화자가 잃어버린 사람,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잃어버릴 수 있었던 시간.


마치 단편영화 같다는 그 가수의 말은 정확했다. 좋은 영화는 줄거리가 아니라 장면을 남긴다. 내게 <김성호의 회상>이 남긴 마지막 장면도 결국 하나다. 보고픈 마음은 한이 없지만,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은 사람.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
그녀는 조그만 손을 흔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의 눈을 보았지.

하지만 붙잡을 수는 없었어.
지금은 후회를 하고 있지만.
멀어져 가는 뒷모습 보면서
두려움도 느꼈지.
나는 가슴 아팠어.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
이제는 혼자라고 느낄 때.
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
내 맘도 편하지는 않았어.
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
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한두 번 원망도 했었지만
좋은 사람이었어.

하지만 꼭 그렇진 않아.
너무 내 맘을 아프게 했지.
서로 말없이 걷기도 했지만
좋은 기억이었어.
너무 아쉬웠었어.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
이제는 혼자라고 느낄 때.
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
내 맘도 편하지는 않았어.
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
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
이제는 혼자라고 느낄 때.
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
내 맘도 편하지는 않았어.
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
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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