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산 카세트테이프가 신해철 2집 <Myself>였다. 지금은 ‘마왕’이라는 별명의 카리스마 넘치는 아티스트로 기억되지만, 그 시절 그의 포지션은 놀랍게도 ‘아이돌’이었다. 곱상한 외모에 명문대 타이틀, 1988년 대학가요제를 초토화시킨 <그대에게>의 히트까지. 기획사들이 그를 어떻게든 청춘스타로 굴리려 했던 건 너무나 당연한 자본주의적 선택이었다.
그런데 2집 <Myself>는 그 하이틴 스타 노선에서 꽤 벗어나 있었다. 일단 본인이 앨범 전체의 작사, 작곡, 편곡, 연주까지 도맡았다. 막 도입되던 미디(MIDI)라는 컴퓨터 음악을 활용한 덕분이었다. 물론 미디를 시도한 뮤지션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곡 몇 개에 효과음처럼 쓰던 시절에, 신해철은 아예 컴퓨터를 정식 밴드 멤버로 채용해 버렸다. 지금도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최초의 '미디 원맨 밴드' 작품으로 회자된다.
우선 타이틀곡 <재즈카페>부터 범상치 않았다. 뽕발라드와 트로트가 차트를 양분하던 그 시절에 펑크(funk) 리듬을 메인에 깔았고, 가사에서는 도시인의 권태를 시크하게 묘사했다.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는 무려 니체와 고흐를 소환해 10대들의 중2병을 실존적 고민으로 포장했다. <50년 후의 내 모습>이나 <다시 비가 내리네>에서는 당시 가요계의 시간보다 몇 년쯤 앞서 달리는 듯한 감각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대중성을 놓친 것도 아니다. 이미 검증된 히트곡 <그대에게>를 미디 버전으로 편곡해서 실었고,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같은 소녀 취향 발라드도 빼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와 작법이 어우러진, 당시로서는 꽤 특이한 명반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평단은 물개박수를 쳤고, 대중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12살 코흘리개였던 나 역시 그 그물망에 속절없이 걸려들었다. 이 테이프 하나 때문에 신해철의 골수팬이 되고, 음악 감상을 평생의 취미로 갖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Myself>에서 보여준 이 기막힌 줄타기는 이후의 커리어를 관통하는 철학이 된다. 신해철은 신스팝, 테크노,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록처럼 가요계에서 비주류 취급받던 장르를 평생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음악은 원래 어려우니 대중이 몰라주는 게 당연하다" 같은 정신승리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더 많은 사람이 듣게 만들려고 했고, 기어이 대중의 멱살을 쥐고 차트 정상으로 끌고 갔다. 이렇게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하려는 그 변태적인(?) 음악적 야심을 펼치려면, 대중의 지지라는 든든한 빽이 필요하다는 걸 꿰뚫어 본 것이다.
"한 손에는 악보를, 다른 한 손에는 계산기를 들어라."
후배들에게 남겼다는 이 뼈 때리는 조언이야말로 뮤지션 신해철의 본질이다. 원래 작가주의와 대중노선은 서로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신해철은 그 둘을 억지로 같은 팀으로 묶어 버렸다. 그 지독하게 전략적인 태도가 그를 뻔한 록스타가 아닌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나는 작가로서 정확히 이 경로를 따르고 싶다. 어느덧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쓴 지도 6년이 되어간다. 그사이 두 권의 바카라을 내놓았고, 이제 세 번째와 네 번째 바카라 출간을 앞둔 신진 작가가 되었다. 내 글이 좋다고 칭찬해주는 독자들도 생겼다.
이곳 온라인카지노에는 바카라의 초고 외에도 글쓰기의 철학과 방법에 대한 글도 종종 올린다. 주된 논지는 늘 비슷하다. "오직 글쓰기만이 본질이며, 그 외의 포장이나 전략은 부차적이다." 감사하게도 동료 작가님들이 이런 태도를 좋게 봐주시는 듯하다. 나도 말로만 주장을 늘어놓지 않고, 실제로 엮어내는 문장들 속에 그 본질을 구현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쓴 글만 보면, 마치 성공 같은 건 초월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구독자 수보다 글, 출간보다 글, 브랜딩보다 글, 계속 이런 이야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우선순위의 기둥만 분명히 세웠을 뿐, 내 안의 욕망 스위치까지 꺼버린 건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성공하면 좋겠다. 온라인카지노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려댔으면 좋겠고, 내 바카라이 대형 서점 매대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쌓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성공해서 발언권을 쥐고, 작가로서 내 이야기를 세상에 더 널리 퍼뜨리고 싶다. 사람들이 내 철학에 귀 기울이고, 내 문장에 밑줄을 치게 만들고 싶다. 작가에게 독자란 곧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영광스러운 자본이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조건이 하나 붙는다. 성공은 하되, '내 방식대로' 해야 한다.
사실 나도 독자를 끌어모으는 흥행 공식쯤은 눈치껏 알고 있다. 권위 있는 이름을 빌려와 삶의 피로를 토닥이는 위로. 넓은 여백과 가벼운 일상어를 앞세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라는 안도감을 건네는 긍정. 복잡한 사유의 맥락은 잘라내고 당장 아는 척하기 좋은 지식들만 추려낸 요약. 혹은 가장 뜨거운 트렌드 키워드에 올라타서 대중의 조급함을 부추기는 처방. 그런 바카라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한다. 대중의 짧아진 호흡에 맞춰 텍스트를 쪼개고, 어려운 질문보다는 명확한 해답을 앞세우며,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보다 만족시키는 것. 그게 서점 매대를 장악하는 강력한 전략임을 나 역시 모르지 않는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성공하고 싶다. 앞으로도 내가 가장 오래 쓸 주제는 과학과 글쓰기일 것이다. 얼핏 보면 전혀 상관없는 분야 같다. 그러나 내게는 둘 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확장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닮아있다.
과학은 인간이 어떻게 무지를 밀어내고 어려움을 극복해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은 과학을 통해 천연두를 몰아냈고, 왕과 귀족의 권위보다 증거와 합리성을 앞세우는 슬롯를 만들었으며, 빈곤에서 벗어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로 진입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과학을 편리한 기술 정도로 인식한다. 나는 그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인간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다. 과학자와 연구소, 국가와 기술, 실패와 도전의 역사를 통해 과학이야말로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글쓰기를 단순한 표현 기술로 생각하지 않는다. 문장을 쓰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글쓰기가 사람의 생각 자체를 어떻게 바꾸는가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세상을 읽는 방식이 달라진다. 남들이 지나치는 장면에서 질문을 발견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글쓰기가 취미나 자기계발을 넘어, 한 사람의 세계를 넓히는 행위라고 믿는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런 글을 쓸 것이다. 당장 써먹을 팁보다는 오래 붙들고 씨름할 질문. 세상을 쉽게 설명하는 답보다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관점. 쉽지는 않겠지만 도전해보고 싶다. 신해철이 모두가 발라드를 부를 때 신스팝과 헤비메탈을 들고 나왔듯, 나는 과학사, 연구소, 슬롯학, 글쓰기 같은 소재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주제의식은 묵직하게 가져가되, 문장은 친근하고 경쾌하게 풀어낼 것이다. 독자의 멱살을 부드럽게 잡고 사유의 바다로 끌고 가는 힘 있는 리듬감도 중요하다. 진지한 문맥 사이에서 피식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위트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핵심을 찌르는 통찰로 확실하게 마무리할 것이다. 내 철학과 개성을 조금도 낮추지 않은 채 대중을 매혹시키는 것. 비주류의 깊이를 주류의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내가 작가로서 달성하고 싶은 목표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낡은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던 그 충격적이면서도 세련된 음악을 아직 기억한다. 그 앨범은 나에게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처음 보여주었다. 그 당연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진리가 한 소년의 세계를 바꾸었다. 이제는 내 글도 누군가에게 그런 확신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성공은 하고 싶다. 아주 많이. 하지만 성공을 위해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로 최대한 많은 독자를 설득할 것이다. 한 손에는 원고를, 다른 한 손에는 계산기를 든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