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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애(2024), <순수의 시대>

by배대웅

온라인카지노를 하면서 쓰기도 많이 썼지만 읽기도 많이 읽었다. 대부분은 읽고 지나갔으나 기억에 깊이 남은 글들도 있다. 그중 딱 한 편만 꼽아야 한다면 단연 이 글이다. 온라인카지노 메인에 걸린 적은 없고, 온라인카지노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도 아니며, 출판사 픽이 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처음 읽었던 순간은 물론 지금까지도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바로 신정애 작가님의 <순수의 시대>다.


아마 많은 분이 신정애 작가님을 알 것이다. 글쓰기 귀신들이 모인 온라인카지노에서도 시선의 섬세함과 문장의 독창성에서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1황이다. 다만 대부분은 아리 시리즈로 작가님을 기억하실 것 같다. 이 글은 아리 시리즈를 연재하기 전에, 그러니까 작가님이 온라인카지노에서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에 쓰신 글이다.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작가님이 남편분과 연애하던 시절의 회상이다. 경북 청송의 학교로 첫 발령을 받은 여교사와 서울 종로에서 근무하던 회사원. 그리고 그 먼 거리를 이어주던 꽃편지. 카톡도, DM도, 읽씹도 없던 시절이다. 들꽃을 따서 편지지에 붙이고 그 위에 마음을 눌러 담아 보내던 1987년의 계절들. 이 설정만으로도 독자를 지금과 전혀 다른 감각의 세계로 데려간다.


이야기는 한 편의 연애소설처럼 읽힌다. 나는 문학과 거리가 먼 인간이고 연애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글이 그려내는 시간과 공간의 감각은 아련하게 다가온다. 청송의 맑은 공기와 종로의 복잡한 거리. 꽃향기 가득한 편지지와 우체통 앞에서의 기다림. 그 이미지들이 흑백영화 필름처럼 느리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그 위로는 학창 시절 문학 교과서의 장면들도 겹쳐진다. <소나기> 속 소년과 소녀가 비를 피해 뛰어가던 여름 냄새 같은 것. 혹은 <즐거운 편지>의 첫 문장 “내 그대를 생각함은”이 품은 기다림 같은 것. 배경음악으로는 예민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가 어울릴 듯하다. 약간은 촌스럽지만, 그래서 더 순수한 감정. 이 모든 것이 합일하면서 지금 시대에는 재현하기 어려운 무구한 서정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글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렇게 순수하게 쌓아 올린 감정의 결정체를 결혼 후 남편분이 “몽땅 잃어버렸다”라는 점이다. 아 이 참사를 대체 어쩔…(털썩) 나도 한 사람의 남편이지만 상상만 해도 두려워진다. 이건 사흘 밤낮으로 등짝 스매싱을 쳐맞아도 할 말이 없는 재난급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이해가 간다. 결혼이란 원래 그런 현실의 영역이니까. 연애 시절에는 세계를 뒤흔들 것처럼 소중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이삿짐 어딘가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이 글이 과거의 회상을 넘어 좋은 에세이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순수만으로 삶이 완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생활감이 마지막에 툭 들어오면서 오히려 여운을 더 짙게 만든다.


내가 온라인카지노 역대 최고로 꼽는 이 글을 내 온라인카지노에도 소개해 본다. 마치 오래 좋아하던 가수의 숨겨진 명곡을 꺼내놓는 기분이다. 나만 알던 곡이 남들에게도 알려지는 게 가수의 팬으로서 반길 일만은 아니다. 좋은 것은 원래 혼자 간직하고 싶은 법이니까. 그럼에도 이 글은 혼자만 품고 있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인생 어딘가에 남아 있던 오래된 계절 하나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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